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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무디 Jun 13. 2022

글씨 연습

내가 좋아하는 나를 만드는 일



최근에 글씨 연습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힘없이 대충 날려쓰는 버릇이 만든 글씨가 자꾸 눈에 밟힌지는 꽤 됐다. 글씨는 그 사람을 담는다는데, 내 글씨를 보면 분명 내가 원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특히 내가 느끼기에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닌’ 그 표현이 제일 마음에 거슬렸다. 엄청 반듯이 잘 쓴 글씨는 아니더라도, 글이 한눈에 잘 보이게 쓴 깔끔한 글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째 언니는 글씨체가 정말 예쁘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도 곧잘 그리고 글씨도 예쁘게 참 잘 썼다. 비교대상이 바로 옆에 있으니 당연 내 글씨체가 그리 예쁘지 않다는 것 정도는 너무 잘 알고 살아왔다. 그래도 어렸을 땐 한낱 글씨체가 뭐 대수냐 싶었다. 나는 다른 것을 잘하니 상관없다는 식의 긍정이 가득했던 꼬맹이였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나서부턴 어른답게 반듯이 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한낱 글씨체일 뿐인데, 글씨에서 정말 그 사람이 보이는 것만 같고, 심지어 글씨가 예쁘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임에도 절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 내 호감을 사로잡기도 했다.


살면서 해야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앉아서 글씨 연습을 한다는 것엔 도통 시간이 나지 않았다. 더구나 메모나 편지 형식의 글 마저도 핸드폰을 사용하므로 펜을 잡는 상황은 자연스럽게 이뤄지지도 않기에. 굳이 시간을 내어야만 하는 방법뿐이었다.

악필인 사람도 켈리그라피를 한다는 말들에 이끌려 구경도 많이 가봤지만 내가 원하는 건 켈리그라피가 아닌 반듯하고 깔끔한 필기체였다. 글자를 쓰기 시작하고 난 뒤부터 20년을 넘도록 이 글씨체로 살아온 나에겐, 필기체보다는 차라리 켈리그라피를 연습하는 것이 더 쉬울 일이지만 말이다.


장기간 여행에 와서 나는 이 소중하고 풍요로운 자유시간을 어떻게 하면 온전히 나를 위해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동안 미뤄왔던 자기 계발을 하기해도 좋고 어떤 취미를 만들기에도 더없이 좋은 시간이라 느꼈다. 그런 취지로 6월이 시작됨과 동시에 글씨 연습을 시작했다.


천천히 천천히 또박또박 아무 말이라도 괜찮으니 글로 옮기며, 글씨를  쓰는 방법과 같은 영상도 찾아보았다. 영상을 따라 자세를 반듯이 고쳐 앉고     천천히 쓰기를 시작했다. 조금만 써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팔과 어깨가 저려왔다. 학창 시절 일명 ‘깜지 불리는 것도 수많이 해왔던 나인데, 글씨   썼다고 팔이 이리도 저린 것이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깊은 반성이 되기도 했다.  엄마 아빠와 선생님이 하셨던 ‘반듯이 앉아서 써야지라는 말씀이 돌고 돌아 이제야  귀에 들려왔다. 조그만 애가 뭐가 그렇게 바빠 글씨를 이리 대충 흘려 썼을까 하며, 급기야 어린 나를 데려와 앉혀놓고 직접 혼을 내겠다는 작정으로 기억   시간을 찾아 헤집기도 여러  했다.


그렇게 벌써 2주째 글씨 연습을 하고 있다. 몇 시간 힘들게 연습하는 건 아니고 15분 남짓으로 조금씩 쓰기로 했다. 많이 안 써도 한 자 한 자 똑바로 쓰는 게 더 도움이 된다. 팔이 지치면 더 안 써지기 때문이다. 아직 내가 원하는 필기체가 나오기까지는 갈길이 멀지만 훨씬 나아진 모습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명필이 된 듯하다.


글씨 연습을 하며 나를 돌아보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쓰인 글씨체를 보면 내 성격이나 감정들이 담겨있음이 느껴진다. ㄱ, ㄴ, ㄷ 써가며 나는 왜 이 글자를 이렇게 쓸까 생각도 해본다. 마치 혼자 수업을 하듯 고민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꽤 재미도 있다.


이 글씨 연습이 내게 부여하는 의미는, 스스로 더 나은 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 더 좋은 사람, 더 예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가는 것. 그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는 이미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 되어있다.


누구나 이런 글씨체와 같이 스스로 개선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되었으면 하는, 이루고 싶은 나 자신의 모습을 만드는 일. 운동이나 그림, 요리나 노래 등과 같이 분야는 다양할 것이다. 그 하나를 콕 집어, 하루 중 많은 시간이 아니더라도 조금씩 노력해보면 참 좋을 것 같다.


단 15분 만에 나는 이미 명필을 가진 사람의 마음이 된 것처럼, 그 시간이 주는 기쁨으로 오늘이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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