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은 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일
2022.07.05
7월을 맞이하며 우리는 서핑을 잠시 뒤로한 채 3박 4일간 누사페니다 섬에 다녀왔다. 이제 내일이면 두 달여간의 여행도 끝이 나는데, 그간 오직 서핑으로 이뤄져 있던 한 달 동안 우린 여행과 일상의 사이에 놓여 있었고, 이 시점에서 누사페니다는 다시금 여행의 길목에 오르는 이들의 심정을 느껴보기 위한 최상의 선택지 이기도 했다. 워낙에 너무도 멋진 섬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덕에 그야말로 ‘안 가면 바보’가 되는 것도 같았고.
아무튼 다녀온 것에 아주 만족하며 웅장하고 경이로운 풍경에 맘껏 행복을 느꼈다만, 나는 아직 근육도 터무니없게 적은 데다 실력도 완전히 자리 잡은 상태가 아닌 ‘슈퍼 비기너’라는 사실을 잊었었던 것이 문제였다. 이쯤 실력이면 며칠 다녀와도 난 문제없이 잘 탈 것이라는, 조금 향상된 실력이 가져온 커다란 오만이 자리 잡았었던 것이다.
오늘, 나흘 만에 들어선 바다에서 나는 다시 내 분수를 알게 되었다. 근육이 조금 들어갔다 느꼈던 어깨엔 다시 말랑말랑한 살들 뿐, 패들링이 왜 이리 힘이 드는지. 툭하면 탁하고 번쩍 일어서 자세를 잡았던 그 느낌은 내 오감에서 희미해져 있었다. 누가 나를 누사페니다로 데려갔냐며 속상함과 우울함에 입술이 삐죽하고 나와버렸다. 멋있게 라이딩하는 모습을 꼭 담아서 가는 것이 목표인데, 그게 안될까 봐 속상함이 치밀었다.
누사페니다로 향하는 날 아침까지 서핑 강습을 받았었는데, 그날은 파도도 크지 않고 조류도 세지 않아서 라이딩을 얼마나 신나게 즐겼는지 모른다. 그때 강습 선생님이 말하시길 ‘파도 좋을 때 아예 다 타고 누사페니다를 가지. 파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 그러셨는데. 항상 얘기를 듣고도 직접 경험해봐야 그렇구나 하는 어리석음을 탓할 뿐이다. 환상의 섬 누사페니다에서 누렸던 행복의 시간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서핑만을 생각하면 마음이 한순간에 좋았다 나빴다 요동을 친다.
그럼에도 나는 늘처럼 마인드 컨트롤을 열심히 했다. ‘이 시간을 즐겨야 한다, 속상함은 내 몫이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서핑에 집중하자’ 등등 긍정의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써 웃어 보이는 얼굴과 그렇지 못한 울상진 마음을 쉴 새 없이 다독였다. 이제와 느끼지만 서핑을 하면서 ‘스스로 내 몸과 마음을 컨트롤하는 법’을 가장 많이 연습하고 있음을 알았다. 서핑을 하며 성격이 바뀌는 이들이 많다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서핑은 파도를 마주할 때마다 또한 나를 마주해야 하는 일임을.
두어 번의 파도를 허무하게 날려버리고, 거센 조류에 라인업으로 나가기까지 또 긴 시간을 투쟁하기를 반복하던 무렵, ‘힘들어 보이는데 한 번만 타고 나갈래?’라는 남편에 말에 정신을 번쩍 깨웠다. 오늘과 내일밖에 이 기회가 없는데 절대 그럴 순 없는 일. 다시 마음을 다잡고 파도를 탔다. 역시 운동은 몸이 기억한다고 했던가, 다시 전처럼 벌떡 일어서서 30초가량의 긴 라이딩을 즐겼다. 오늘은 이렇게 조류와 씨름하다가 패들링에 지쳐 끝나버릴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그렇게 세 번의 긴 라이딩을 즐기고 나왔다.
‘이 맛에 서핑하지’ 서퍼들이 하던 그 감칠맛 나는 말이 기어코 내입에서도 나오던 순간이었다. 내가 나를 맘껏 대견해할 수 있는, 스스로의 능력에 감격해 그 성취를 잔뜩 누려볼 수 있는 이 시간. 누구든 서핑이 왜 좋으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이유를 말해줄 것이다.
한 달의 시간이 길긴 길지, 바다에 늘 떠있던 다른 서핑스쿨의 사람들이 한바탕 바뀌어 모르는 얼굴들이 대다수였다. 사람 수도 전보다 훨씬 많아졌는데 놀랍게도 수강생들이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그들 중엔 엄마와 딸도 있고, 대부분이 여자들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서핑에 열의가 깊었다고? 그것도 이 힘든 걸 여자들이 더 많이 즐긴다니!’ 하며 이번에 처음으로 서핑을 접한 나에게 오늘의 풍경은 새롭고 놀라웠다. 내 생각보다 서핑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굳세고 용감한 여성들이 많다는 것에 말이다.
달콤 살벌했던 두 시간의 서핑이 끝나고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기분이 묘하게 이상해졌다. 후회 없이 했다고 안 그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바다 없이 어떻게 사냐며 한숨 섞인 한탄이 절로 나왔다. 옆에선 이미 많은 이들이 나와 같았기에 익숙하다는 듯 웃으시는 선생님은 마치 우리가 다시 올 것을 장담이라도 하시는 것처럼 나중을 기약하셨다.
이랬다 저랬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나도 나를 모르겠는 순간이 많지만, 그 와중에 그래도 확신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때론 그것 하나만으로 살아지게 된다. 발리에서 지내며 새로운 인간관계 속에서, 앞으로 그려나갈 미래에 대해서 갈팡질팡할 때면 서핑이 중심을 잡아주었던 것 같다. 삶에 목적이 흔들려도 오늘 하루에 진심이 담겼다면, 그것 하나로 잘 살아가는 것이다.
내일 한번 남은 서핑, 하루남은 발리. 아직 작별을 말하진 않기로 했다.
Eat, Sleep, Su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