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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무디 Feb 16. 2024

현명한 아내 착한 며느리 밝은 엄마


두 달째 시댁에서 지낸다.


전셋집에 곰팡이 등의 하자가 생기며 몸도 마음도 불편할 즈음,

때마침 아기가 기관지염에 아토피까지 생겨버렸다.

원래의 나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엄마로서의 나는 앞뒤 보지 않고 무작정 시댁으로 들어갔다.

염치도, 불편함도 이것저것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기관지, 아토피.


아기 낳기 전, 내가 제일 걱정하던 부분이었다.

어쩜 이 두 가지가 한 번에 찾아올 줄이야.


회사 출근만으로도 바쁜 남편을 대신해

1주일 동안 매일같이 아기 짐을 옮겨왔다.

때는 1월, 하필 제일 추운 한겨울에 코감기 몸살 달고서

아기가 낮잠을 잘 때마다 한가득씩 아기 짐을 끌어왔다.

나는 주변이 정리되지 않으면 판단이 흐려지고 텐션도 낮아지는 편이다.

할 일이 많으면 꼭 적어서 하나씩 해결하는 타입이라

주변이 어수선하면 마음도 머릿속도 혼란스럽다.


집은 한동안 엉망이었다.

주방도, 거실도, 방도.


아기 짐은 옮겨왔지만 정리할 시간은 없다.

원래 있던 짐을 치우고 그 자리에 다시 우리 짐을

놓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어머님과 나는 하루종일 아기 한 명 보기에도

전신이 덜덜 떨렸다.

첫째 아이에다가 늘 옆에 누가 있어줬던 우리 아기는

갈수록 점점 더 품을 찾고,

한 명이 무언가를 하면 한 명은 로봇처럼 아기 옆에 붙어있어야 했다.


하루하루가 정말 정신없이 흘러갔다.

내 상황에 집중하고 쓸데없는 기대나 욕심을 비웠다. 그런 쪽은 들여다볼 여유도 없기에.

오직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늘 부족하기만 한 내 모습에 속상하고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참거나 무시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불편해도 적응하며 지내는 나는 원래 그러니 괜찮다기보단 참는 게 많다.

참고 참다가 꽤 괜찮아질 때쯤 친구 한 명 만나

허심탄회 털어놓고 지나간다.

아기 낳고는 더 그런 사람이 됐다.


시댁에 지내는 게 불편하지 않다.

불편하기 전에 몸이 이미 힘들기 때문에

가장 1순위로 육아만 신경 쓰는 나는

오히려 죄송한 부분이 훨씬 많다.

불편한 건 쌓여있는 짐들 뿐,

이것도 그냥 무시하고서 하루는 잘도 간다.


사실 좀 외로울 때가 많다. 척하는 건 아니지만 참는다는 건 분명 무거운 감정이다.


척하는 게 이니라 말하고 나니 아니네,

 나는 완벽한 척쟁이였다.


아이한테 보여내고 싶지 않은 내 어두운 부분들을 가리려 애쓰고, 괜찮은 척, 차분한 척. 밝은 척.


그럼에도 나는 강해야 한다.

엄마는 강하니까.

나에겐 나만 바라보는 아기가 있으니까.


다 쏟아냈으니 다시 한번 육아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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