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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ul 15. 2024

책들의 시간 94. 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한겨레출판


  ‘각각의 계절(권여선, 문학동네)’을 읽고 난 이후, 권여선 작가님의 책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북클럽 문학동네의 이달의 책이 ‘푸르른 틈새’였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아쉬움에 다시 권여선 작가님의 산문집을 손에 들었다. 


  제목, ‘오늘 뭐 먹지?’, 산문집이다. 음식에 대한 산문집.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최근 읽었던 ‘푸르른 틈새’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기도 했으며, 북클럽 문학동네의 독파 챌린지 질문 중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작가님의 소설 ‘푸르른 틈새’엔 식구들이 모여 만들어 먹는 음식들과 채식에 빠진 엄마가 만드는 음식, 주인공이 아빠를 떠올리며 만드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인지, 권여선 작가님의 산문집 ‘오늘 뭐 먹지?’를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어쩌면 의식의 흐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재밌게 잘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먼저 들었다. 김밥을 쓱싹쓱싹 싸서 먹는 사람, 요리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 식당에서 맛본 음식을 집에서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 문득 시어머니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머니께서 무쳐 주시는 나물을 한 대접을 먹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1. 단식 이후 부활의 음식


  첫 단식 이후로 나는 몇 년에 한 번씩은 단식을 한다. 단식을 하면서 내 속에 있는 오래된 서랍을 열어 이것저것 하나씩 꺼내 들여다본다. 내가 살아온 과거들을 차근차근 짚어보고, 지금 맺고 있는 관계들을 곰곰이 따져본다. 그러다 문득 달걀을 푼 라면이 먹고 싶어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행복한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면 그 꿈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젊은 날의 과오를 떠올리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내 곁을 떠난 사람들 생각에 슬퍼하기도 한다. 열무김치에 고추장 넣고 맵게 비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극히 사소한 이유로 화가가 되지 못한 것에 서운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따위가 소설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감정들이 쓸데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내 속에 웅크린 채 언젠가는 내가 한 번 뒤돌아 보아 주고 쓰다듬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고아처럼 어리고 상처 입은 감정들이다. 내가 그렇게 해준 뒤에야 그것들은 비로소 조용히 잠이 든다.(674쪽)


  작가가 이십 대 첫 단식을 한 이후 먹게 된 미음, 간장, 젓갈에 대한 이야기 부분에 담겨 있는 부분이다. 작가가 단식을 하게 된 계기도 공감이 많이 갔지만, 지금껏 몇 년에 한 번씩 단식을 하고 있다는 것도 참 존경스러웠다. 


  이 부분에 이렇게 마음이 간 것은 나도 단식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식을 한 적이 있다. 교수님을 따라 단식원에 들어갔고, 일주일 단식 후, 보식 삼일, 총 10일을 단식원에 있었다. 단식을 해야겠다고 준비하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교수님을 뵈러 갔다가 교수님의 권유에 얼떨결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단식원 생활에 금방 적응했고, 단식 기간 공책에 먹고 싶은 것을 빼곡하게 적었던 기억이 있다. 단식이 끝나는 날, 한의사 선생님께서 몸이 깨끗해져 임신하기 쉽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단식 이후 임신을 했다. 그래서인지 단식의 경험이 강렬하게 오래 남아있긴 했다.    

  


  나는 단식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가끔 단식을 하는 게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삶의 급류에 휩쓸려 가다 보면 갑자기 “중지!”를 외치고 싶은 순간이 있다. 휴가 때 사흘이나 나흘 정도, 아니, 주말에 하루나 이틀만이라도 시간을 내서 단식을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숲 속의 빈터처럼 고요한 신세계가 열릴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내가 단식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단식이 끝난 뒤에 꿀물처럼 다디단 미음 물을 먹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간장의 기막힌 간기에 매료되기 위해서, 죽과 젓갈의 새로운 조합을 맛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단식이 짧은 죽음이라면 단식 후에 먹는 죽과 젓갈은 단연코 부활의 음식이다. (75쪽)


  단식 후 바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작가가 미음에 간장을 넣어 먹었듯이, 맑은 된장국을 먹으며 3일 보식의 과정을 거친 후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작가에게 있어 단식 후에 먹는 죽과 젓갈이 부활의 음식이라면, 나에겐 무엇이었을까? 바로, 재첩국.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재첩국을 좋아한다거나 즐겨 먹는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단식과 보식을 끝내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길, 섬진강 주변 어디쯤에서 먹었던 재첩국, 뽀얀 국물에서 나오는 시원함, 그리고 짭짤한 어떤 맛들, 한식의 반찬들. 그때 먹었던 밥이 얼마나 맛있었던지, 정말 부활의 음식이었다. 그 이후 식욕이 폭발적으로 늘었으니까.   

   

  작가가 단식이 삶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나도 단식이 필요하다고 여길 때가 많다. 가끔은 간헐적 단식이라고 소개된 방법대로 16시간 정도를 단식하긴 하지만, 대학생 때 그때 이후로는 여태껏 단식을 해 본 적이 없다. 세상엔 맛있는 것이 너무 많고, 요즘의 나는 하루에 5끼를 먹으면 좋겠단 생각에 삼시 세 끼란 말조차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하니까.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단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처럼 다디단 미음 물의 유혹이 아니더라도, 나는 지금 아주 조금 멈춰야 할 것 같은 삶의 속도 가운데 있다. 지나친 식탐과 마음의 짐으로부터.           


2. 시간과 함께하는 음식


  아무튼 사정이 이러하니 어머니는 어떻게든 마른오징어를 늘려 먹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 마른오징어를 불려 튀기는 조리법이 등장했다. 반죽을 씌우니 양이 늘어나고 기름에 튀기니 느끼해서 많이 먹을 수 없다는 데 착안한 것이었다. 양을 떠나 우리 가족은 그 맛에 열광했다.(219쪽)


  마른오징어 튀김. 

  책을 읽으면서, 마른오징어 튀김을 아는 사람이 있구나, 그런 마음에 조금 신기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파는 오징어튀김은 다 두께가 정말 두꺼운 생오징어 튀김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릴 때 먹었던 그 마른오징어 튀김은 우리 집에서만 만드는 거였나, 그런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읽고 마른오징어 튀김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니 괜스레 재미있었다.     

 

  나에게 ‘마른오징어 튀김’은 제사상 음식 중 하나였다. 지금은 할머니와 아버지 기제사를 제외하고는 친정에서도 제사를 잘 지내지 않지만 어린 시절 제사가 있을 때면 오전부터 분주했다. 각종 전과 나물, 생선찜, 과일 등 바구니는 음식들로 넘쳐났으며, 엄마와 나는 계속 전을 부치고, 튀김을 만들곤 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튀김은 쥐포 튀김이었지, 오징어 튀김은 아니었다. 엄마는 오징어 튀김과 쥐포 튀김을 늘 항상 같이 하셨다. 오징어 튀김은 쥐포 튀김에 비해 질기고 잘 씹히지도 않으며 맛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오징어 튀김은 맛이 없으니, 쥐포 튀김만 하자고 말씀드렸다.

  “마른오징어 튀김은 아빠가 좋아하던 거야.”

  엄마의 그 말씀에, 나는 마른오징어 튀김을 하지 말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빠는 내가 12살 때 돌아가셨다. 엄마가 오징어 튀김을 하는 건 아빠 제삿날에 아빠를 위한 음식이었기에. 나에게 이제 오징어 튀김은 시간과 함께 하는 음식이다. 아빠가 좋아하셨단 기억도 없지만 ‘아,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그런 음식.     


3. 정리


  ‘음식 산문집’이라고 쓰고 ‘안주 산문집’이라 읽는다는 이 책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내가 잘 먹지 못하는 음식에 대한 소개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였고, 음식에 대한 작가의 경험과 이야기가 참 좋아 메모지를 많이 붙여 놓기도 했다. 책을 다 읽은 날은 집에 퇴근하면서 만두를 포장해서 가족들과 함께 먹었으며,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들이 사무치게 생각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요리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살림엔 젬병이라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 길지만, 시간은 조금씩 사람을 바꿔놓는 법이라, 요즘 나는 집에서 간단하게 뭔가를 만들어 먹는 것에 소소한 재미를 붙이고 있다. 견과류를 빻아 쌈장에 섞어 상추쌈을 먹는 것, 양배추에 마늘이나 참치를 넣어 잔뜩 볶아 먹는 것, 요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조금씩 뭔가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늙었지만 이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은 도대체 뭘까? 


  ‘오늘 뭐 먹지?’에 대한 고민, 먹고 싶은 무언가를 떠올리는 마음, 나의 여름은 그렇게 먹고 싶은 것을 잔뜩 떠올리는 것으로 그리 맞이해야겠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누구와 함께, 언제 먹었던 음식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시간과 함께하는 음식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나는 음식이라든가, 스스로에게 시간의 개념을 부여할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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