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여선 장편소설_문학동네_북클럽 이달책
‘북클럽 문학동네’를 통해 읽게 된 책이다. 그전에 권여선 작가님의 ‘각각의 계절’을 읽었기에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을 읽고 처음 느낀 감정이 ‘부끄러움’이었으며,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청춘의 어떤 장면들이 떠올랐기 때문에 쉽사리 글을 쓰지 못했다. 분명 많은 이야기들이 내 마음속에서 샘솟았지만 그때를 떠올린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푸르른 틈새’는 권여선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이다. 1996년에 나왔다고 하니, 거의 28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소설 속 내용은 삶을 다루고 있기에, 지금 읽어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잘 전달되며,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내가 특히 부끄러움을 느낀 것도 97학번, 대학 시절 딱 한 번 참여했던 노동운동의 기억, 사랑에 갈망했던 청춘의 낯 뜨거운 치부, 그런 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지만, ‘푸르른 틈새’의 제목처럼 그 시절에도 빛의 기억들이 있기에, 푸른 청춘의 이야기가 있기에 용기를 내어 본다. 글을 통해 내 대학 시절을 되돌아볼 용기.
1. 감격벽
사람이 눈빛에 어떤 감정을 담을 수 있고 상대방이 눈빛을 통해 그 감정을 읽을 수 있다면 전경과 나는 그 순간 진정 눈빛으로 교감했던 것이다. 전경을 바라볼 때의 내 눈빛에는, 비록 불타는 적의를 담으려고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실제의 내 눈빛에는 애원과 공포가 담겨 있었을 것이고, 전경은 그것을 제대로 읽었던 것이다. (133쪽)
지고한 것에 대해 복종하고 헌신하는 태도를 톨스토이는 감격벽이라고 불렀다. 누구에게나 감격벽으로 충만한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감격하기 쉬운 습벽은 아마도 고결한 이기주의와 맹목적인 이타주의의 결합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감격벽을 가진 사람은 결코 비열해질 수 없고, 실리적인 문제에 어둡거나 적어도 그런 체해야 하며, 증오와 애정의 선이 분명한 대신 그 근거는 박약하기 짝이 없고, 세상이 이편과 저편으로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다. 지고한 가치에 스스로를 비추어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 습벽은 냉철한 실용주의의 대척점에 있기도 하다. 나도 한때 감격벽에 사로잡힌 젊은이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감격벽, 그 나르시시즘적인 욕망을 극복하는 길이 무엇인지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179쪽)
처음 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 설렘을 잊지 못한다. 우선 집을 떠나왔다는 사실,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는 것,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들어온다는 것, 모든 상황에서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명확하게 ‘어른’의 정의를 지금도 내리지 못하지만, 어린 시절, 막연히 어른이란 청소년에게 금기된 어떤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것, 독립하여 내 마음대로 들어가고 싶은 시간에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선택의 순간에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대학생이 되었다는 감격에 취해 나는 흥청망청 지냈다.
새내기들을 위한 공연에 풍물은 빠질 수 없었고, 선배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북을 쳤으며, 노래패 선배들의 ‘임을 위한 행진곡’은 가슴에 쿵쾅거려 온 마음을 전율하게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사랑 이야기나 읽고,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에 웃고 떠들던 내게, 사회를 향한 시선은 두렵고 떨리지만 감격적이 일이었다. 나도 풍물패에 들어야겠다 마음먹었다. ‘장구’를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장구를 배우고 싶다고 선배들에게 말씀드렸다.
“야, 너는 덩치가 있어서 장구 말고 북 쳐라. 힘도 세 보이니 북 치기 딱 좋겠다.”
그래서 북을 쳤다. 학교 가로등 아래, 소주 한 병 놓고, 선배랑 둘이서 마주 보며 북을 쳤다. 나는 그 감성마저도 참 좋아했다. 늦은 밤 학교에 울리는 둥둥 북소리가 참 좋았다.
어느 날 선배가 노동자를 위한 거리 투쟁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나서 길놀이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노래패와 함께, 사회를 바꾸기 위해 운동권이 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를 배워야 한다고도 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어느새 나는 운동권이 되어 있었고, 나의 정체성과는 별개로 거리 투쟁에 투입되었다.
책 속 주인공 ‘미옥’은 맨 정신으로는 시위에 참여하지 못해 늘 술을 먹고 참여하며, 전경에 의해 가죽 장갑으로 뺨을 맞았을 땐 그 부끄러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휴학을 하고 집으로 내려온다. 불타는 적의가 아닌 애원과 공포의 눈빛, 시위에 참여하는 미옥이 가지고 있던 마음. 참여해야 한다는 당위성보다는 감격벽, 그리고 무서움.
나는 시내에서 열리는 시위에서 도망쳤다. 참여하는 흉내만 내고는 그냥 돌아왔다. 무서웠고, 내가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사실 잘 몰랐다. 그리고는 북도 더 이상 치지 않았고,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물론 도망치기 전까지 농활에도 참여했으며, ‘다현사’도 열심히 읽었고, 몸짓패를 따라 율동도 열심히 했으며, 노동가도 열심히 불렀었다. 다만 오래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다. 용기 없는 삶이었고, 정치에 전혀 관심 없는 삶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시선이 확장되기를 바랄 때가 있다. 세상에 대한 관심사가 더 넓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수업 시간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글을 읽기도 한다. 대학 시절, 내가 멋모르고 감격했던 어떤 장면들, 결국 그때 나는 도망쳤지만, 지금은 도망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목소리를 내게 되고 변화의 물꼬를 트는 일에 발을 디딜 결심을 할 때 나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구나, 그리 느낀다.
2. 허기 혹은 질투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단발머리를 나풀대며 교정을 활보하던 신입생 시절, 대학은 연애의 궁전처럼 보였다. 성에 대한 각양각색의 입장들이 난무했다. 그때 나의 입장이란 애정에 기갈 들린 계집애의 약삭빠름이었다. 누군가 내게 어떤 마음을 건네면 나는 그것을 허겁지겁 ‘사랑’, 차라리 ‘오묘한 호감’의 목록표에 기입했다. (중략)
나는 모든 우연을 필연화했다. 내가 채집한 어떤 정보도 새로운 사랑이 다가오는 징조였다. 나는 이런 표시와 저런 표시의 차이를 몰랐고 이렇게든 저렇게든 호감으로 치장한 이미지, 나를 인정해 준다는 것이 명백하게 조합되어 나타나는 그 이미지를 향해 질주했다. (57쪽)
그러는 동안 나는 머뭇거렸다. 나는 여성적인 유혹에 마음이 끌렸다. 일견 내숭과 사치라고 비난받기도 하는, 노미혜가 가지고 있는 여성스러움의 신비를 나는 동경했다. 미혜는 여성적인 매력을 맘껏 발산하여 그 여성스러움으로 남자에게 접근하고 남자를 매료시키고 남자로부터 횡설수설하는 고백의 말을 이끌어내고 싶다는, 내게 있어서 꽤 유서 깊은 꿈을 환기시켰다. 미혜의 향기로운 분위기는 나를 치장하고 싶게 했고 우아하고 비싼 자리에 마음이 끌리게 했고 높은 웃음소리와 수다가 꽃피는 자리, 수다와 웃음을 호위하는 게 임무인 아첨쟁이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자리에 있고 싶게 했다. (80쪽)
어찌 이리 스무 살의 내 마음을 잘 표현했을까? 너무 정확하게 마음을 간파당한 기분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금은 사라진 어떤 욕망이지만, 나에게도 저런 마음이 있었다. 아첨쟁이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그 자리에 내가 있고 싶은 마음. 하지만 단 한 번도 나에게 그런 자리는 주어지지 않았고, 그때는 자존감에 많은 상처를 입었었다. 뚱뚱하고 못난 애, 그게 나이구나, 그런 마음으로 움츠러들던 시절들.
여고 시절, 선생님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대학 가면 살 빠진다”와 “대학 가서 연애하라.”였다. 정말 대학만 가면 살이 빠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오히려, 잦은 술자리와 야식, 늦은 수면과 불규칙한 생활로 살은 더 많이 쪘으며, 연애는 나의 노력으로 가능한 영역이 아니었다. 아직 나는, 연애란 인연과 우연, 그리고 하늘의 점지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걸 잘 알지 못하던 스무 살. 스스로도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던 시절, 나는 작은 친절에도 사랑을 대입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해했고, 늘 상처받았으며, 종내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았다.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화장을 잘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그런 마음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잘못된 표출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운명 같은 일이며, 감사한 일인지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스펙트럼도 아주 넓고 다양하다는 생각도 들고, 좋은 친구들은 사랑의 자리를 메워주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드니 이해되고 인정되며, 무엇보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발전하여, 지극히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딸에게서 들었다. 요새 아이들 사이에서는 마이크로 바람, 미세 바람이라는 것이 있다고. 관계의 폭을 촘촘하게 만들어 썸의 단계마저도 세분화하여 구분하는 요즘. 작은 행동마저도 모두 다 ‘사랑’과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걸러서 본다면, 참, 삶이 여유가 없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 단순한 친절을 사랑으로 오해해 벌어지는 많은 사건 앞에서 겁이 나기도 했다. 더 못 믿을 것이 관계가 되어버린 요즘, 딸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인연에 풍성한 사랑을 경험하기를 바라게 된다.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의 한 시절을 아주 재미있게 보내길 바란다.
3. 정리
푸르른 틈새, 제목의 의미는 뭘까? 푸르름이 상징하는 어떤 희망이 느껴졌다. 틈새를 비집고 비친 푸른빛. 결국 청춘의 시기는 그렇게 많은 좌절과 시련 속에서도 결국은 지나게 되는 어떤 시간이라는 것. 지나고 나니, 괜찮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
나의 청춘도 참 많이 부끄러웠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절대 이십 대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이 참 좋다. 이렇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안다.
북클럽 문학동네를 통해 줌 토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실제 권여선 작가님이 나오셔서 이 책을 쓰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때 작가님도 청춘이었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또 다른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첫 장편이었던 이 소설의 인물과 처지가 비슷한 내용들이 있어 상상하는 마음도 커졌다. 재밌게 잘 읽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자신의 대학시절, 가장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질투를 느꼈던 어떤 대상이 있는지,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