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앤솔러지_김초엽 외_자이언트북스
앤솔러지. 사전을 찾아보니 주제나 시대 등 한 가지 기준에 따라 시나 단편소설들을 선정해 한 권으로 묶은 것이라고 했다. 제목이 좋았다. 놀이터는 24시. 왠지 밤새도록 책과 함께 놀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기준이 놀이터가 된다고 하니, 은근 기대가 되었다. 작가 7명의 단편소설 작품으로 엮인 책이다. 다 읽고 나서는 한참 생각했다. 제목을 ‘놀이터는 24시’ 이렇게 붙였을까?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러면서도 내내 붙잡는 질문, 누군가에 있어 놀이터는 어떤 곳일까?
1. 유희, 충만한 마음
유희도 평생 대여섯 번은 그런 영감을 받아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유희는 아무 문제도 고민하고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감정은 그렇게 실용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현세의 감각이 아니었다. 먹고사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천상의 사정이 분명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배제하고 나자 유희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충만함이었다. 정신의 고양, 자기 확신, 완성되어 있다는 굳은 믿음. 개발이 중단된 심해 도시 건설 프로젝트의 재개를 위한 실사 현장에서 얻은 것치고는 조금 뜬금없는 깨달음이었다. 돈오에 듣도라니.
당황스러웠지만 유희는 이 특별한 감각을 되도록 길게 이어 가기로 마음먹었다. 유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깨달음의 순간은 일상에 금방 침식되고 휘발된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우선 일상을 차단해야 했다. 세상이 자신에게 부여한 직업이라는 역할에 너무 깊이 몰입하지 않도록 한발 물러서야 했다. 어쩌면 규칙적으로 먹고 자는 것조차 잠시 뒤로 미뤄야 할지 모른다. 수행자들이 고행과 금식을 하게 되는 이유가 그것이 아닐까, 단 며칠만이라도 (40쪽)
“내가 깨운 거구나, 미안”
마사로가 또 사과했다. 유희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이 로봇은 어떻게 매번 정확하게 알아보는 걸까? 나도 이런 건 처음 겪는데.
그러고는 몽롱한 목소리로 물었다.
“뭘 보고 있었던 거야?”
“마음의 끝에 닿은 인간이 빛을 내는 광경이라고 해야 하나.”(66쪽)
- 배명훈, 수요 곡선의 수호자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다. 주인공의 이름, 유희. 그리고 주인공이 만난 소비 로봇 마사로. 읽으면서 ‘소비는 놀이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소비를 통해 충족되는 마음에 대하여도 생각했다. 이 소설은 유희가 처음 느끼는 감정을 붙잡는 데에서 시작된다. 문득 느끼는 희열, 주인공 유희는 그 희열이 사랑과 비슷하다고 느꼈지만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종교에 귀의했을 때 느끼는 영감과 비슷하다고 여기지만 그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실용적이지 않은 감정, 먹고사는 일과는 상관없는 그런 감정, 유희는 그것을 정신의 고양, 자기 확신, 완성되어 있다는 굳은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그 깨달음을 붙잡고 싶어 한다.
소설의 전체 내용은 유희가 휴가 중 소비 로봇을 발견하고, 소비 로봇이 만들어내는 수요 곡선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참 재미있었지만, 나는 유희가 느꼈던 ‘충만함’ 그 마음이 계속 궁금했다. 마사로가 유희의 모습을 보고 한 말처럼, ‘마음의 끝에 닿은 인간이 빛을 내는 광경.’ 그 말의 의미가 궁금했다. 나는 과연 그런 순간을 맞이했던 적이 있었던가? 세상이 자신에게 부여한 직업이라는 역할에 너무 깊이 몰입하지 않도록 한발 물러섰던 순간은 있었던가? 깨달음이 휘발되지 않도록 마음의 충만함을 간직하고자 노력했던 순간은 있었던가? 결국 유희를 통한 기쁨, 충만함이 있었던가?
방학이다. 방학 계획을 세우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일상의 유지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침이면 열심히 걷고, 일상을 유지하며 학교 일도 하루에 적어도 한 시간씩은 하자고 그리 마음먹었더랬다. 웬걸. 방학한 지 삼일 만에 내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늘 새벽 4시 50분 즈음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아침저녁으로 걷고 그랬던 내가 게으름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몸 하나 꼼짝하지 않고 뒹굴거리기 일쑤였고, 삼시 세끼를 차려 먹는 게 귀찮아 배달 음식을 먹는 날이 많았다.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 나는 충만함을 느끼는 순간이 오히려 계획한 어떤 것들을 완전히 해 낼 때라는 것. 촘촘한 계획표는 아니어도 느슨한 일상에 해야 할 일들을 다 해내었을 때 기쁨을 느낀다는 것.
또 한 번 깨달았다. 나의 즐거움은 규칙적인 일상의 유지라는 것을.
방학이다. 그래, 계획표에 아침 명상을 넣어야겠다. 마음의 끝에 닿은 인간이 내는 빛을 나는 잘 모르지만, 규칙적 일상을 위해 아침 명상을 방학 계획표에 넣어야겠다.
2. 사라지고 싶은 마음
두 사건으로 인해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사라지는 일이야말로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는 것. 특히 부모가 생존하거나 자식이 있는 사람의 증발일수록 그렇다. 부모는 좀처럼 자식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식이 있다면, 특히 엄마가 증발을 선택했다면 본인이 참지 못하고 자식을 보러 가느라 다른 사람 눈에 띄기 마련이다.
증발은 쉽게 선택해서는 안된다. 충동적으로 감행해도 안된다. 여행하듯 낯선 곳으로 며칠 잠적하거나 짐을 꾸려 가출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증발은 익숙한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제껏의 삶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102쪽)
편혜영 작가님의 단편 ‘우리가 가는 곳’은 주요 사건과는 달리 따뜻함이 물씬 풍겨오는 내용이다. 그래서 참 좋았다. 사라짐을 결심하는 사람들. 가끔 ‘그것이 알고 싶다’라든지 시사 고발 프로그램, 또는 기이한 어떤 현상을 다루는 매체에서 종종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가 있다. 그걸 볼 때마다 혹여 납치와 같은 범죄는 아닌지, 자발적 실종인지. 궁금하면서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가능한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가 가는 곳’의 주요 내용이 그런 사라짐을 다루고 있다. 사라지는 것밖엔 방법이 없는 간절한 사람들. 그것이 경제적 이유일 수도 있으며, 가정불화일 수도 있으며 그 원인은 제각각 다르다.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지만, 나도 사라지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결혼 후 첫 싸움. 엄마 생각에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남편과는 정말 살기 싫고, 스스로에게 수치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때. 사라지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내가 아닌 양 살고 싶었다. 다행히 죽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었나 보다. 그냥 지금의 내가 싫었던 마음이 더 컸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다른 나이기를 바랐던 마음.
집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어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나는 나름대로 남편과의 관계에서 내 살길을 찾았던 것 같다. 결국.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체득한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은 조금 덤덤하다.
책을 읽으면서 익숙한 어떤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싶은 그 마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때로는 가족에게 받는 상처가 더 크며, 철저한 타인이 되어서라도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결국 살고 싶은 마음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 그래서 소설 속 여자가 떠나는 여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따뜻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여자의 삶에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3. 정리
여름엔 소설이다. 여행을 가면서 소설책을 잔뜩 빌렸다. 다 읽을 수 있을까? 완전 게으름에 빠져 책도 읽지 않고 뒹굴거리고 있지만 그래도 여름엔 소설이다. 소설이 주는 재미가 나에겐 놀이터이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책을 읽었다면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은 무엇이며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봅시다.
2) 사라지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는지, 그 시기를 어떻게 견뎌왔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