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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Oct 14. 2024

책들의 시간 106. 유 원

# 백온유 장편소설_창비_제13회 청소년 문학상

  재미있게 잘 읽은 소설책이다. 며칠, 소설 아닌 수필만 읽어서인지, 소설이 읽고 싶었다. 소설을 선택할 땐 고민이 많다. 보통은 익숙한 작가의 책을 선택하곤 한다. 그리고 주변 선생님들이 재미있었다고 추천해 준 책을 읽기도 한다. 이번 책은 지난번 독서 모임에서 친한 국어 선생님께서 추천해 준 책이다. 백온유 작가님의 책 ‘경우 없는 세계’를 읽으면서 ‘유원’이 참 재미있다고 말해 주셔서, 그 기억에 선택한 책이었다. 읽기를 참 잘했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늘 생각한다. 때로는 내 삶과 비슷한 어떤 상황을 만나고 그 상황을 겪는 주인공의 마음에 감정 이입하여 한참을 생각하다가 위로를 받는 경험이 있기도 하고, 전혀 인지하지 못하던 상황을 소설에서 만나 당황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내가 아는 세상은 참 좁구나, 그런 마음이 든다. 그때 소설은 내 세계를 아주 조금 넓혀준다. 

  나는 타인에 대한 이해는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믿는 편이다. 매번 마주하게 되는, 나를 둘러싼 상황 속에서 나는 잘못된 판단을 할 때가 많으며, 내 경험으로 재단하는 경우도 많고,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순간도 많다. 그건 내 경험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소설이 나에겐 그랬다. 읽고, 한참을 생각하고, 이런 상황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으며 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고민했고, 그리고 결국은 사람으로 인한 위로와 치유, 구원에 대하여 생각했다.      

1. 마땅한 죄책감


  “얘, 너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안 돼. 너는.”

  나는 얼어붙었다.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깨우친 것처럼. 나는 그 길로 도망쳤다. 집으로 뛰어 들어왔지만 쿵쾅거리는 심장이 잦아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그 눈빛과 목소리가 아침에도 저녁에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꿈속에서도 맴돌았다. 할아버지는 그 말 외에 덧붙인 것도 없었다. 그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나를 옭아맸다. 

  그 눈빛 안에, 네가 다른 애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라려고 하면 될 것 같냐는 말이 숨어 있다고 느꼈다. 

  그 할아버지 때문이라기엔 뭐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조심성이 많은 아이로 컸다. 이를테면 뜨거운 국을 들 때, 국을 손등에 엎질렀을 때의 내가 느낄 화끈거리는 통증을 생생하게 상상한 후, 절대로 국그릇을 엎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아이가 되었다. 실수를 별로 하지 않아서 실수를 하면 엄마가 정말? 네가? 하고 묻는 아이가 되었다. (106쪽)


  ‘마땅한 죄책감’. 제목에 계속 생각이 머물렀다.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마땅히 느껴야 하는 죄책감이란, 어감에서부터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다는 구속의 의미가 더 강하다. 더 이상 죄책감에서 벗어나 웃을 수도 없는 삶. 주인공 원이가 겪는 삶이었다. 

  원이는 불이 난 집에서 언니의 희생과 길을 지나던 아저씨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어린 원이는 그렇게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배려와 기대를 받으며 살아왔다. 사람들은 원이가 언니의 죽음으로 살아났으니 ‘잘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잘 살아야 한다’는 의미, 원이는 다른 애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라나면 안 된다고 느꼈다. 그 이후 원이는 친구도 잘 만나지 않고, 언제나 성실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아이로 자랐다. 항상 죄책감을 느끼는 아이로, 그렇게 자랐다. 자신을 살려 준 언니와 아저씨를 마음속으로 미워하면서.      


  죄책감의 문제는 미안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처럼 번진다는 데에 있다. 자괴감, 자책감, 우울감,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 가게 했다. 그런 내가 너무 무거워서 휘청거릴 때마다 수현은 나를 부축해 주었다.(247쪽)


  죄책감은 언제까지 느껴야 하는 걸까?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기 위해 더 이상 행복해하면 안 되는 것일까? 누구에게 언제까지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일까? 끝이 과연 있는 것일까? 나를 살리고 죽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전에 살아났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삶. 어린 원이가 감당하기엔 참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다.      


  원이의 부모님도 마땅한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원이를 살려준 아저씨.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원이를 받느라 다리를 절게 된 아저씨. 그 사람은 해마다 때마다 원이네를 찾아왔으며, 술도 마시지 않은 맨 정신에서 자신의 희생을 강조했고, 돈을 받아 가며 원이네에게 희생의 대가를 요구했다. 벗어나기 참 힘든 관계이다.      


2. 구원과 치유


  “아빠가…… 해로운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야.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아빠의 행동에 이유를 찾아 주게 되거든. 아빠도 아빠다운 아빠의 사랑의 제대로 못 받고 자라서 그런 거라고, 혹은 한 번도 여유를 갖고 살아 보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살면서 누군가를 도와 본 게 처음이라, 은인이 되어 본 것도 처음이고 그런 식의 대접을 받아 본 적도 처음이라 거기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아빠를 가련한 사람으로 만들거든.”(229쪽)


  원이를 살려준 사람, 수현의 아빠. 분명 본능적으로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원이를 받은 것이었지만, 원래 수현의 아빠는 가족을 돌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족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었기에 타인을 위한 희생 이후의 삶은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를 위한 허세의 삶이었다. 수현은 아빠의 비겁함과 위선을 견디고 살아왔으며, 오히려 아빠가 사라지고 엄마와 이혼을 하고 난 이후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자신의 아빠가 살려 준 아이와 친구가 된 수현. 자신을 살려준, 그러나 자신의 가족에게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아저씨의 딸과 친구가 된 원이. 두 아이의 시간이 이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수현은 아버지가 해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으며, 원이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 친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고. 그러나 소설은 사람이 사람을 구원하는 이야기라고. 충분히 공감이 갔다. 온전한 구원은 아니더라도, 결국 치유를 이끌어내는 시간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이 소설을 통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미워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 놓인 두 사람. 그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 서로의 죄책감을 벗어나게 도와준다.     

 

3. 정리     


  “근데 살인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도 종종 있잖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영화에서는 시거를 사이코 킬러라고 부르는데 나는 시거 같은 사람은…… 그냥 돌멩이 같은 거라고 생각해.”

  “돌멩이?”

  “교회 주차장에 깔려 있는 자갈 같은 거 말이야. 뾰족뾰족하고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것들. 그냥 그런 상태인 거야.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났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상태인 거야. 거기에 내가 넘어져서 긁히고 베여도 화를 내는 게 무의미한 거야. 내가 돌멩이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무의미한 거고, 돌멩이가 내 감정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인 거야.”(270쪽)


  또 하나 소설을 읽으면서 공감한 부분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 없다는 것. 그래. 그런 방법은 없다. 그냥 돌멩이로 여기는 것. 돌멩이가 내 감정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 것. 충분히 공감했다.           


  제1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책이다. ‘작위적이고 더럽고 운 나쁜 일’로 인한 언니의 죽음, 오랜 시간 죄책감에 언니를 미워하는 아이, 그리고 친구를 통한 마음의 회복. 내가 생각할 수 없었던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성장. 아무리 우리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고 해도 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이 있다. 모르고 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마음에 작은 상처를 낸다. 그리고 들여다보게 한다. 죄책감을 견디는 어린아이의 삶과 어른들의 잘못된 시선과 행동에 대하여.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살아가면서 죄책감을 느낀 순간이 있습니까? 그 죄책감으로 인해 자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자신의 삶에 구원과 치유가 되어준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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