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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Apr 22. 2024

책들의 시간 82. 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장편 소설_다산책방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다. 제목이 좋아서, 제목에서 연상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손에 들었던 책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주 살짝 후회를 했다. 유난히 읽고 싶지 않은 분야의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그 종류가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이다.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점도 그 생각에 영향을 미쳤으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주인공이 선생님일 경우, 읽고 싶지 않은 거부감이 더 크다. 직업적 영향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부정적 선생님이 주인공일 경우 내 일이 아님에도 내 일인 듯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 그걸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지켜야 할 세계’는 1963년생 국어 선생님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선생님이 날을 세우면서까지 지키고 싶어 하는 세계, 그리고 싸움을 통해서 지켜나간 그 세계를 읽으면서 공감은 했지만, 끝끝내 마음 가운데 불편함이 가시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1. 나의 야간학교


  수업하는 자신의 눈빛이 어떤지 윤옥은 알았다. 수업에서 느꼈던 감흥을 되살리며 욕실 거울 앞에서 지난 수업 일부를 반복해 말해보기도 했다. 수업은 밥 같은 것이었으나 가끔은 기대하지 않았던 성찬을 마주하게 되는 날도 있었다. 그런 수업은 만드는 게 아니라 만나는 것이었다. 그런 수업을 마주한 날이면 윤옥은 온종일 행복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것 같았다. 수업 시간 동안 학생들과 함께 하나의 곡을 완성시킨 것 같았다. 가끔은 지휘봉을 내던지고 학생들 사이에 묻혀 오보에나 하모니카, 일렉트로닉 기타를 연주했다. 윤옥은 손뼉을 치면 웃었고 학생들과 농담을 주고받았고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학생들의 말도 너그러이 받아주었다. 그런 일에 나이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28쪽)


  ‘지켜야 할 세계’는 한 선생님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학교의 부당함에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전교조에 가입하고 야간학교 선생님으로 활동하다가, 인간의 추악한 어떤 면들에 실망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생을 마감하는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과 같은 관리자 선생님이 아니라 퇴직을 하기 전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교단에 서 있는 그런 선생님. 학교에서 정년퇴직뿐만 아니라 명예퇴직을 하는 선생님을 볼 때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단에서의 세월이 강산이 몇 번 바뀔 만한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그 세월을 가르치는 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충분히 알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 초등학교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여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였지만 막상 대학교에 와 보니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워낙 많았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나 소설가나 방송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볼 때면, 결국 처음 원했던 어떤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스무 살 그때에는 글 쓰는 삶은 나의 이야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 만났던 곳이 ‘야간학교’였다. 선배 언니의 권유로 야간학교 교사에 지원하게 되었고, 그것이 삶에 미친 영향이 정말 컸다.      

  내가 엄마뻘의 나이 많은 학생들에게 처음 불린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값이 너무 귀해 야간학교에서의 3년은 내 모든 청춘의 그림이었으며, 지금 나의 발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야간학교에서 참 부끄러운 모습들이 많았다. 학생들을 가르치기엔 경험이 폭이 너무 적었으며, 감정은 미숙했고, 청춘의 흔들림은 때때로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래서 너무 귀한 경험임에도 부끄러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그런 기억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소설에서 표현하고 있는 구절, 윤옥이 수업을 하고 난 다음 느끼는 그 감정, 나는 그 감정을 처음 대학교 1학년 2학기에 시작했던 야간학교에서 느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나이 많은 학생들, 중학교를 다니지 못해 배움의 한이 많았던 학생들의 열정은 어린 대학생을 선생님으로 만들어 주셨다. 얼마 전 야간학교 학생 중 한 분이 전화를 하셨다. 선생님, 이렇게 부르시면서. 

  그분은 야간학교를 통해 검정고시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대학교에 진학까지 하시어 이제는 어엿한 수필 작가로 등단까지 하신 분이다. 나는 참 부족한 선생님이었지만 야간학교는 27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나를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그 가치를 잊지 않게 해 준다. 

  윤옥이 만났던 수업,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그 수업,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 것 같다.      


2. 지켜야 할 나의 세계. 


  자기 아이를 맡아달라는 말이었다. 세상에 아픈 일 겪은 사람이 너뿐인 것 같으냐고, 다 털로 어서 일어서야 한다고, 윤옥은 말하고 싶었다. 스스로를 망쳐버린 수연에게 화가 났으나 자기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윤옥은 수연의 손에 잡힌 상현을 내려다보았다. 

  아이를 키운 적이 없는 윤옥의 눈에도 상현은 어딘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표정이 없는 얼굴로 상현은 검지를 빨았다. 놀이 기구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상현은 윤옥에게도, 엄마인 수연에게도 눈을 두지 않았다.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머리칼은 푸석했고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몸과 마음이 결핍된 아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176쪽)          

  힘들었던 기억은 1년 단위로 잊혔고 상현이 주는 소소한 기쁨은 해가 갈수록 윤옥을 알차게 채웠다. 잡념에 사로잡혀 자신을 구덩이에 밀어 넣는 시간도 한결 줄어들었다. 윤옥을 향한 신뢰와 사랑은 작고 단단한 바위 같았다. 온전히 자신만 얻을 수 있는 사랑이었다.(234쪽)


  주인공 윤옥에게 지켜야 하는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담임을 해야만 한다는 마음이었을까? 소설에서 보여주는 가장 큰 줄기는 교사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둘러싼 윤옥의 가정환경, 장애를 가진 동생을 사기꾼 교회 목사에게 보내고 난 뒤, 마음 밑바탕에 있던 죄책감. 그리고 한때는 믿었던 친구 정훈의 배신, 제자의 아이를 키우게 된 상황들, 많은 이야기가 소설 속에는 담겨 있다.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뇌성마비 아들 지호를 돌볼 수 없었던 윤옥의 엄마는 알면서도 아들을 교회 목사에게 보낸다. 하지만 나중에 윤옥이 그 목사의 집을 찾아갔을 때 지호는 그곳에 없었다. 윤옥이 나중에 날을 세우면서도 고등학교 문과반 2학년 담임이 되고 싶다고 말하며 지킨 자신의 세상에 몸이 불편한 시영을 학급 학생으로 데려가고 싶었던 이유가 지호 때문이었을 것 같았다. 윤옥이 학부모님들의 민원과 아이들의 불만 가운데에서도 지켜야 할 세상은 바른 교육관이었을 것이며, 학생이든, 입양한 아이든, 동생과 같은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여러 명의 지호이든 결국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내가 지켜야 할 세상은? 이리 거창하게 말을 하기엔 많이 부끄럽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참 늦된 사람이라서, 내 세상을, 나만의 가치관을,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아직도 발견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 가족이 있어 다행이고, 좋은 동료가 있어 참 감사하며, 반짝반짝 빛날 아이들의 삶이 있어 참 기대가 된다.      

3. 정리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심장 언저리가 들끓는 것 같았다. 부르릉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리는 것 같았다. 생의 의지가 아래로부터 올라왔고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언제고 삶을 마감할 때가 오겠으나 그때까지는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죽음이 찾아오면 그것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자신의 세계를 가꾸며 하루의 시간을 채우고 싶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친절하고 더 많이 행복하고 싶었다. 뜬금없이 운명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생각하며, 윤옥은 서서히 차오르는 적의를 느꼈다. (244쪽)


  지켜야 할 세상을 지켜 낸 윤옥, 생의 의지가 피어오를 때 그때 윤옥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윤옥의 죽음에서 거슬러 올라가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는 그때까지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구성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친절하고 더 많이 행복하고 싶었던 순간 떠오른 운명이라는 단어. 그러니 결국은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책은 정말 잘 읽힌다. 불편한 부분이 있었던 것은 내가 선생님이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존경할만한, 너무나도 좋은 선생님을 참 많이 만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결국 우린 불완전한 사람이구나, 그런 마음이다. 한때 ‘일 인분의 삶’이란 단어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학교라는 공간도 마찬가지여서, 결국은 제 몫을 해 내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회에서 교사에게 기대하는 바, 교사의 소명의식에 대한 믿음이 분명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교사란 그 책임감의 무게가 다른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나 하나 제대로 서 있자’라는 마음. 나는 그랬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학교 생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습니까? 어떤 선생님이셨으며, 기억에 오래 남은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지켜야 할 세계가 있습니까? 내가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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