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목에서
가장 넓은 길_양광모
살다 보면 /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 원망하지 말고 기다려라.
눈에 덮였다고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 어둠에 묻혔다고 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묵묵히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우다 보면 / 새벽과 함께 / 길이 나타날 거이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여름과 가을이 한꺼번에 소거되듯이 지나버렸다. 들이 텅 비어 버렸고, 나의 가을걷이도 막바지에 다 달았다. 지나간 시간에 못 담아낸 일이 남은 시간에 몰아져 있어서 나는 늘 생각이 많았다. 한쪽을 막으면 한쪽이 터지는 일상에서 입동도 지나면서 농사는 된 체로 끝낼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다는 게 일말의 위안이 되었다. 다만 손아귀에 남겨진 계산서에는 득실면에서 얄짤없는 계산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계절이 어서 지나서 무엇 하나라도 마무리가 있다는데서 다행이었다.
2025년이 6주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는 내 여정에서 어떤 형상으로 기억될는지, 남은 일 더미 사이에서 그 귀추가 결정될 것이다. 남은 한 해가 6주지만 회계처리를 감안하면 정작 남은 일 수로는 24일도 못 될 것이다.
일 더미가 머릿속을 온통 지배한 터라 글로 남길 만한 내 삶의 어느 날들이 모두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 같았다. 그저 짓눌리는 압박감에 감정은 다져지고 궁리만 늘어갔다.
그 와중에서도 나를 찾아온 사람들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해 언젠가는 호의로 무장한 어느 할머니가 마지막에는 단수 높은 사기꾼으로 판별되면서 사람의 인상에 대해서 새삼 남다른 감정을 느낀 바 있었는데, 올해도 그 호의 못지않은 호의를 가장한 사람들이 더러 나를 찾았다. 예방주사를 적절하게 맞은 바 있어 그 호의들 앞에서 주춤거리고 머뭇거리게 되었다.
살아보면 결국 호의가 내는 길이 없었다는 걸 감안하고 표면 아래 이면에 숨겨진 의도에 대해 고민해 보지만 결국 나는 싫은 소리 한번 내뱉지 못하고 침묵하기 일쑤였다. 차라리 내 속을 끓이는 게 마음 편했다.
하루 하루에 매몰되면서, 왜 사는지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다 쳇바퀴를 이탈하여 지금 고생을 감당하고 있었는데 가깝고 먼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 살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이 되어 있었다.
각자의 삶이 설명 대상이 될 수 없었고, 보이고 드러나는 대로 이해될 뿐이지만 나로서도 내가 왜 이렇게 고단하게 살아가는지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다만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후회를 덜 남기기 위해 나의 삶을 내 생각대로 꾸리자고 한 것뿐이었다.
일두들에 오르내리면서 저 하늘의 풍광을 보면서 그저 혼자서 감탄하고 좋아했다. 쫓기듯 쫓아다녔지만 일부러 저 길을 돌아다닐 만큼 시시때때로 변하는 저 풍광에 매료되어 있었다.
결과의 성패를 떠나서 일두들에 오를 수 있는 일상이 있다는 것 만으로 나는 다른 모든 고단함을 털어낼 수 있었다. 다만 소박하다면 소박하게 일을 벌였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깨달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었고, 기차는 출발역을 떠나버린 셈이었다.
술을 덜 먹고 잔 밤에 깨어 굳은 생각들 사이로 애써 풀어낸 내 일상의 실마리가 온통 한탄에 그쳐 민망하고 송구스럽다. 어떻게 나만 고단 할 수 있을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 선자리에서 신음하고 앓고 살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저 나 역시 그 고단한 사람 중 하나이며, 내 삶이 온통 잡초 밭의 도라지였는데 깨고 난 밤에 할 말이 내가 살아낸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하루에 하루씩. 선자리마다 모두 건안하시기를.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