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어파크, 알렉산더플랏츠, 눈물의 궁전(Tränenpalast)
코로나 시기 이전에 베를린에서 처음 1년간 어학 생활을 했었다. 그때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았으며, 거리에 문화나 학술행사도 많아 따로 여행을 다니거나 독일어를 굳이 원어민 처럼 잘하지 않아도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 당시를 회상해본다면 베를린은 조금은 지저분하고 번잡하고 어수선하지만 나름대로의 멋이 있는 힙한 대도시라는 인상을 남겨줬었다. 대부분의 고풍스럽고 중후한 매력을 가진 오래된 건물들은 기한을 알 수 없이 공사 중이기만 하고, 공공시설과 같은 지하철에서 갑작스럽게 열리는 맥주 파티나 누군가를 위한 생일파티들이 예고 없이 이루어졌고, 그것에 분위기를 맞춰주는 건 승객의 자유에 맡긴 채 본인들끼리 눈치 보지 않고 도시의 일부를 마음대로 사용하며 즐기는 문화가 자유로워 보여서 신선하고 좋았었다. 그리고 그런 광경과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길가에서 들리는 언어는 독일어보다 영어, 아랍어, 터키어의 지분이 많아 의도치 않게 독일어를 배우러 와서 아랍어까지 배우게 되었으며(...) 유명 관광지나 건축물들 사이에서 열리는 연주회들도, 지하철에서 칸마다 하는 깜짝 공연들도, 길고 얇은 칼로 첼로를 연주하는 기이한 공연들도, 그 당시엔 일상이 되어버려서 당연했던 것들이 지금은 조금은 대단하게 느껴진다.
줄라숭(Zulassung)을 받고, 다른 도시로 이사하고 내 생활을 이어가느라 그동안 바쁘게 살면서 그 때의 추억들을 잊어버린채로 살고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난 3월에 다시 베를린에 다녀올 기회가 생겼다.
베를린으로 새벽기차를 타고 떠났었다. 그렇게 4시간 동안 취침을 하고 예약해둔 숙소로 가서 레젭션(Rezeption)에 짐을 두고 먼저 밥을 먹으러 나왔다.
첫 여행 장소는 마우어 파크로 정했다. 벼룩시장을 가기 위해서이다. 기억상 4시이면 문을 닫았고,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었기에 먼저 들려보고 싶었다. 코로나 시기 이전에는 항상 토요일마다 벼룩시장(Flohmarkt)이 여기에서 크게 열렸었는데, 열리던 장소에는 추모비 같은 것들만이 세워져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벼룩시장은 일요일에 열린다고 들었다.
5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나, 5년이 채 지나지도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거리에서 힙한 음악을 크게 틀며 보드나 산책을 하거나, 끼리끼리 어울려 이야기하며 노는 문화는 바뀌지 않은 듯하다.
마우어 파크에 있는 실내 운동장(Friedrich Ludwig Jahn Sportpark)을 지나서 왼쪽으로 꺾어 쭉 올라가면 우리가 들렸던 음식점 the birld berlin 이 나온다. 독일의 수제 햄버거는 정말 가릴 것 없이 다 맛있지만, 특히 이곳은 내용물을 푸짐하게 올려줘서 더 좋아한다. 토마토 주스에서 신선한 케첩 맛이 나는 걸 제외한다면 모두 맛있다. 제일 메인에 있는 Da birldhouse라는 버거도 패티를 두 장이나 깔아줘서 흡-족 하다. 그리고 패티의 굽기, 버거에 따라서는 들어가는 재료나 치즈 종류까지 모두 선택이 가능하다. 나는 이번에는 여행 온 거이니, 비싼 버거로 시켰다(Da Woiks. 14.50€). 스테이크도 파는데, 나는 아직 스테이크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다음에 또 온다면 또다시 수제버거를 시킬 듯싶다.
예전에는 방문자들 사진도 같이 찍거나 싸인도 벽에 붙여놨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다 사라져서 조금은 아쉽다.
마우어 파크 입구 쪽에서 걸어 나가면 U Bahn–Bernauer Straße(베어나우어 스트라세) 가 나온다. 이쪽 길에 예쁜 카페나 동독 서독 콘셉트 카페도 있다. 중국 국수 요리를 좋아한다면 the tree를 쳐서 가봐도 좋다. 마라향이 살짝 들어간 샐러드 누들요리들이 맛있다. 지하철역 바로 옆인 Factory Berlin Mitte라는 곳도 볼만하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가본 적은 없다. 마우어 파크에 이어진 역사적인 장소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볼거리라고 한다. 베를린은 다른 독일 도시들과는 다르게 도시 내부가 동서로 분열되었던 도시라 냉전시기의 역사적인 장소나 볼거리들이 참 많다.
마우어 파크와 반대 방향으로 Bernauer Straße 쪽으로 쭉 가면 자연사박물관이 나온다. 아주 많이 걸어야 한다. 근데 걸어가는 그 길이 참 예쁘니 산책 겸 걸어갈만하다. 만약 여행 일정이 일주일 이상이라면 베를린에 꼭 걸어봐야 할 예쁜 길들이 미테(Mitte) 쪽에 많다. 근처 바인마이스터스트라세(Weinmeisterstraße)에도 멋들어진 샵들이나 맛있는 아시안 음식점들이 많아 거리를 걸어 다니기에도 좋고 쇼핑하기에도 좋다. 쇼핑센터는 베를린 동물원역(Bahnhof zoologischer Garten) 쪽에도 많다. 거기엔 카데베(KaDeWe)라는 큰 명품 쇼핑센터도 있다. 슈타트미테역(Stadtmitte)나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 쪽에도 유명 브랜드들이 입점된 백화점이 많다. 다만 바인 마이스터 쪽에는 백화점은 없지만 조금 조용하고 정돈되고 럭셔리한 거리를 걸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자연사 박물관은 이 시기에 코로나 때문에 미리 온라인 사전예약을 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단기로 베를린으로 온 우리는 여러 날동안 입장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입구 컷을 당하고 첫째 날 그 길로 바로 S Bahn 프리드리히 스트라세(Friedrich straße)로 갔다. 만약 자연사 박물관을 포함한 박물관들을 사전 예약해야 하는지 홈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하고 가길 바란다.
예전에는 여기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나 강연들이 많았었는데 요즘도 계속 하고있을지는 의문이다.
허탕을 치고 샤리테 의대 건물을 지나 우리는 프리드리히 스트라세 역으로 향했다. 프리드리히는 Friedrich라고 쓰면 독일의 명문가 성씨가 되고, Friedlich라고 쓰면 평화를 뜻하는 Frieden에서 파생된 평화로운, 타협적인 이란 형용사가 된다. 이 거리의 프리드리히는 Friedrich이고 형용사 변화도 없으니 명문가 성씨에서 따온 것이 맞다. 하지만 독일이 동서로 나누어지게 되자, 더더욱 서로 타협할 수 없이 긴장된 모습을 현장에서 생생히 보며 그대로 담고 지냈던 도시는 베를린이었었고, 이 시기를 담은 박물관이 바로 이곳 가까이에 있다. 그 박물관을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눈물의 궁전 (Tränenpalast)이다. 이곳은 분단 시절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서로 편지로 주고받았는지, 어떤 물건을 주고받으며 어떤 물건은 허용되고 안 되었는지, 여권은 어땠는지 무엇을 서류로 들고 다녀야 했는지부터 분단 해제시(Mauerfall)의 모습과 프로파간다들, 그당시 정치인들의 간담회나 언론 등등을 재현하고 담아놨다. 추가로 그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는 분들과의 인터뷰 영상들도 있고, 영어로도 듣는 것도 가능하다. 무료로 입장 가능하지만 겉옷과 짐들은 모두 건물 내부의 관리인이 있는 곳에다가 맡기고 입장해야 한다. 동전은 필수. 물론 물건 받을 때는 동전 그대로 다시 받는다. 동전이 없더라도 관리인 분이 플라스틱 열쇠를 비상용으로 주실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이곳은 벌써 3번째 방문하는데, 언제나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이화여대 ECC 건물 비슷하게 생긴 곳을 찾으면 된다. 입구에 크게 Tränenpalast라고 쓰여있다.
프리드리히스트라세는 중앙역 바로 옆이다. 중심지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여기는 첫 베를린 관광객에게는 산만하고 붐빌 수 있을 것이다. 가끔 경찰이 진압하기도 하고 피곤해 보이는 노숙자들도 보이며 시위도 여기에서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 Berlin)까지 이어서 하는 경우들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조금 더 가면 박물관과 미술관이 굉장히 많이 모여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유명한 베를린 돔도 있다. 슈프레 강이 인접해있고, 오픈된 거리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거나 누군가 버스킹을 하고 있다. 큰 광장처럼 중앙이 비어있지만, 사람들이 많아 휑해 보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우아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둘 째날에 박물관을 가기 위해 이곳에 다시 낮에 방문했다.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알렉산더플랏츠(Alexanderplatz)가 나온다. 이 역에서 하케셔마켓(Hackescher Markt)과 그 부근까지 벽돌로 이어진 아치형 다리 모양 상가들이 쭉 늘어져있다. 다들 맛집들이니 아무 데나 먼저 한 번 방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곳도 쇼핑가이다. 먼저 역 이름과 비슷한 알렉사(Alexa)라는 대형 쇼핑센터와 갤러리아백화점이 있다. 그리고 전자기기를 파는 자툰(Saturn)과 유니클로도 있다.
알렉산더플라츠로 나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세계시간(Weltzeituhr)이라는 철조 구조물이다. 여기는 베를리너(베를린에 거주하거나 베를린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전형적인 만남의 장소이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이 휴대폰을 보며 이 앞에서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밤이나 가끔 낮에는 악기 연주 공연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독일을 포함한 몇몇 주변의 유럽 국가나 도시에서는 12월달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베를린에도 방방곡곡 여러 지역에 열리는데, 알렉산더플랏츠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베를린에서, 아니 아마 독일에서 제일 클 것이다. 함부르크, 뮌헨 등등 다른 대도시나 소도시들의 크리스마스 마켓도 다녀왔지만 기억상 코로나 시기 이전에는 여기가 압도적으로 다양하고 규모도 컸었다. 그만큼 여기는 베를린에서 사람들에게 의미있고 중요한 지역이라는 뜻이겠다.
서울에는 남산타워, 도쿄에는 도쿄타워, 파리엔 에펠탑, 베를린에는 무엇이 있을까. 텔레비전타워(Fernsehturm)이다.
이번에는 베를린에 어학연수가 아닌 관광 온 기념으로 텔레비젼탑(Fernsehturm) 꼭대기층에 올라갔었다.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입장료는 9€였던 걸로 기억하지만 학생 할인을 받아 4€로 들어갈 수 있었다. 티켓을 받으면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통해 단번에 꼭대기층까지 올라갔다. 0층에서 꼭대기층까지 가는 데에 중간층은 없었다. 동그란 모양의 구조가 베를린의 전경을 관측할 수 있도록 제작된 모양이다. 정말 멀리 있는 길가에 몇 명이 걷고 있는지, 그리고 잘못하면 불 켜진 창가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테리어는 어떤지까지 훤히 보인다. 베를리너들은 긴장해야 한다...
관측하면서 무엇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설명서가 유리문을 따라서 이어져있다. 이 설명서를 참고해 다음에 어디갈지 또 플랜을 숙소로 가서 이어서 짰다.
기억상 여기서 복층 계단으로 올라가면 레스토랑이 있다고 하는데 맛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전경을 보면서 식사를 하며 고급지게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텔레비전탑 아래에 계단에서 힙하게 옷 입은 청년들이 케이팝을 틀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 온노래가 아마 태연의 노래였을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어를 못 듣다 보니 오랜만에 만난 한국 노래와 자동으로 이해되는 가사에 흠칫 놀랐었다. 내가 어학 했을 당시에만 해도 이 정도로 케이팝이 인기 있진 않았는데, 아이돌들의 영향력은 국가 이미지나 인지도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