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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 작가와 인디 뮤지션의 연애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by 안해


나는 독립출판 작가다. 두 권의 책을 만들었다.


첫 책은 기성출판물처럼 만들려고 애를 썼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책은 기성출판을 흉내내는 책이 아닌 독립출판임을 드러내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마이너한 감성에 빠져버렸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상에 맞춰 각색하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고 전달하고 독자를 만나는 일은 그야말로 짜릿했다. 그 흥분과 달콤함에 빠져 나는 독립출판 작가의 정체성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


첫 책을 준비하면서는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다. 기성출판을 할 능력이 되지 못해 꼭 독립출판을 하는 것 같았으므로. 독립출판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자체가 그랬기 때문에 나의 작업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만하고 편협 그 자체지만 그때의 나를 또 욕할 수는 없다.


독립출판에 대한 세상이 내게 새롭게 다가왔을 때, 그 정의를 다시 되새겨보았다. ‘독립’ 인디펜던트, ‘인디’라는 말은 자본의 구애를 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나간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디음악은 단순히 잔잔하고 서정적이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음악이 아닌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나의 개성을 드러내는 음악이었음을 나는 두 번째 독립 출판을 한 뒤에 아주 뒤늦게서야 알았다.


기성출판을 못해서 독립출판을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의 흐름과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묵묵히 내 이야기를 전하는 것. 내 개성을 표현하는 것. 그토록 자유로운 작업을 그토록 제한적으로 보고 있었다.


나의 (전)남자친구는 싱어송라이터다. 작사 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다. 돈을 받고 곡을 쓰는 게 아닌 자발적으로 돈을 들여서 곡을 만들고 앨범을 낸다. 출판사의 의뢰없이 혼자서 글을 쓰고 책 표지를 만들고 편집하고 인쇄 출판하는 나의 일과 매우 닮았다.


나는 그래서 그를 좋아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유사해서. 그 또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서 곡 작업에 매진했고, 나 또한 카페와 서점 아르바이트 후 글을 썼다. 하는 일이 비슷해서인지 삶의 방식도 닮아 있었다. 나의 일을 애써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아도 이해해줄 수 있는 이라서 그가 좋았다.



하지만 그를 점점 더 알아갈수록 나는 그의 작업에 불만이 쌓였다. 나도 책을 만들었고 그도 똑같이 곡을 만들었지만 그는 나의 책에 대해 아낌 없는 칭찬을 퍼붓는 반면, 나는 그의 곡에 대해 서슴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한 순간도 지적한 적 없었지만 나는 그의 왜 이렇게 잠을 많이 자는지, 작업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밥은 제때 먹지 않고 왜 이렇게 늦게 먹는지, 친구와 게임은 왜 그리 오래 하는지. 그는 항상 나보다 마음이 여유롭고 너그러웠다.


불안과 욕망을 원료 삼아 나아가는 나에게 그는 너무 걱정과 욕심이 없었다. 조금 더 정확한 방향으로 조준해서 그의 노력과 재능을 쏟아부었으면 좋겠는데 그는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안주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이었다. 나와의 연애에서도 그랬지만.


아직 프로는 아니었지만 열정만큼은 프로에 뒤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아직은 미진해도 뜨거운 열정만 있다면, 그 열정으로 하루하루 성설히 보낸다면 그가 유명한 사람이 되건 되지 않건 나 또한 그를 기쁜 마음으로 인정하고 후회 없이 그의 삶을 바라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음악에 미친 그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밤을 새며 곡을 쓰고,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앨범 작업 하나하나 디테일에 정성을 기하는.


하지만 그는 잔잔하고 미지근한 온도의 사람이었다. 부모에게 한 푼 받지 않고 자립하는 나와 부모의 지원을 배경으로 사는 그의 차이었을까. 그에겐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작업엔 치열함이 없었다. 열정과 사랑은 뽐내지 않아도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법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에게 실망하는 날이 늘어났다. 그의 가사는 글을 쓰는 내가 보기에 턱 없이 부족한 실력이었고 노래도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었다. 나는 그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 때문에 실망했지만 그는 내가 자신이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오해했다.


그는 성실하지 않기 보다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내가 곁에 있으면 더 잘 될 거 같고, 잘 살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처음엔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서 한 말도 맞지만, 그는 그 자체로 동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더 멋진 뮤지션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는 나 혼자만으로도 동력이 충분했다. 욕심과 욕망이 똘똘 뭉쳐 늘 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걸 향해 따라가고 해내는 일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무언가 되려는 욕심을 버린 것이, 나에겐 기성출판으로 넘어가서 살아남으려 하지 않고 독립출판 작가로 머무려는 행보였다. 유명해지고자, 돈을 잘 벌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를 보는 내가 괴로웠다. 그의 작업을 보며, 그가 하는 일을 보며 내가 더 애태우고 걱정하고 답답해했다.


그에게 실망을 하고 결국 한 마디 했다. 너에게 더이상 리스펙할 부분이 안 보인다고 (그래서 너를 좋아하기 힘들다고). 여자들의 이상형 목록에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존경할 만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 말 진짜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불쾌해하며 자기 나름대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길 듣고 보니 그의 사정도 이해가 갔다. 자괴감이 들었다. 그 자체로 인정해줄 수 있는 여자라면 괜찮지 않았을까. 이것 또한 나의 욕심인 것을. 나만큼 그를 끌어올리고 싶은 나의 욕망. 나와 그를 같은 수준, 혹은 나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리고 싶은 나의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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