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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해 Nov 24. 2022

편견의 껍질

육체 노동의 기쁨과 슬픔



실업 급여가 끝나고 돈을 벌어야 할 시점이 왔다.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으므로. 아직 한 두 달 뒤의 여행 일정이 남아 있었기에 고정적인 일은 구할 수 없었다. 대학 동기 S는 자신이 쓰리잡으로 하고 있는 일 중 하나인 호텔 알바를 제안했다. 많이 들어는 봤지만 이십 대 초반에도 해본 적 없는 호텔 알바.



나는 아르바이트 하나를 구하더라도 이건 이래서 안 돼, 저건 저래서 안 돼 하며 엄청 조건이 까다로워 구하는데도 한참 걸리는 타입이다. 생각이 많아 늘 행동이 더딘데, 이번엔 친구 찬스를 이용해 이리저리 재지 않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원하는 날짜와 요일을 골라 할 수 있다는 말에.



S는 그릇을 정리하고 식기를 세척하는 일이라고 했다. 어떤 일인지 잘 상상은 가지 않지만, 기획 업무로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흔히 머리를 써야 하는 회사를 다닐 때 종종 박스를 접는 등의 단순 노동을 하고 싶다는 말을 동료들과 우스갯소리로 자주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거만했던 것도 같다. (지금도 육체노동 반, 정신노동 절반 이렇게 균형 있게 일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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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소개로 처음 가자마자 여사님들은 땡땡이의 친구냐며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바로 발 끝까지 오는 방수 앞치마(생선 장수들이 입는 것과 비슷하게 생겼다)를 입히고 빨간색 고무장화와 고무장갑을 착용하라고 했다.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기 위해 두건까지 두르고 나니 내 모습이 영 우스웠다.



일정에 따라 매주 달랐지만 많이 가면 일주일에 네 번도 가고, 적게 가면 한 번도 갔다. 이 일을 시작한 뒤 한 달이 넘어서도 내 겉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현대판 하녀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내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얼굴인지 나라는 존재와 개성이 비닐 앞치마와 빨간색 고무장화와 장갑, 그리고 두건 속에 가려지고 사라졌다.



호텔 알바라고 상상하면 흔히 떠오르는 서빙과 주문을 담당하는 사람들(서비스팀)과는 달리 내가 속한 기물팀에는 젊은 사람이 없다. 대다수 50대 이상인 여사님들과 간혹 아저씨들이 계셨다. 그래서 더 눈에 띄었다. 깔끔하게 머리를 올리고 유니폼을 차려입은 서비스팀 옆에 서면 괜스레 주눅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 내게 나이를 물어보면 더 흠칫했다. 스물아홉 살에 카페 알바도 아닌 설거지를 하는 상상을 해본 적 없어서였다.



복장에서부터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일은 생각보다 열악하고 강도 높았다. 지인 찬스로 온 나는 소장님의 배려로 그나마 쉽다는 그릇 정리를 주로 배치해주셨다. 식기 세척이라는 말에 속았지만 기물팀이 기본적으로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설거지를 하는 일이었다. 먹다 남은 음식물이 담긴 접시, 도시락통 혹은 셰프들이 쓴 각종 조리 도구들을 가져오고 또 전쟁같이 한바탕 처리하고 깨끗한 식기를 올려 보내면 다시 설거지 거리들이 내려온다. 대부분 무겁고 큰 그것들을 씻고 옮기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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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광경을 마주했을 때 드는 심경은 내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나는 고고하게 취재하고 글을 쓰고 책이나 만드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직접적으로 마음속에서 외치진 않았지만 대략 이런 마음이었을 것. 그리고 두 번째로는 연세가 지긋한 많은 분들이 이렇게 힘들게 일한다고? 나는 노년에 절대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그래도 건강하니까 일을 하는구나. 건강하지 못하면 이런 일조차 못하겠지.



근데 이런 일의 정의는 뭘까. 전문성이 없는 일. 허드레 일. 궂은일. 하고 싶지 않은 일. 정도가 되겠다. 학생 시절 사회 교과서인지 도덕 교과서에서 배운,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명제를 머릿속에 가지고 있지만 귀천을 따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다수 몸이 고된 일을 싫어한다. 쉽게 돈을 벌거나 전문성이 있는 일은 원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가치가 낮게 평가된다. 최저임금 이상을 받기가 어렵고, 직업적 자부심이랄 게 없거나 적다. 그러한 가치로 사회는 직업의 귀함과 천함을 판단하고 있었다. 귀천이 없다는 말은 나 같이 도덕적 결벽에 시달리는 순 착한 척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이야기였다.



이분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젊었을 때 열심히 혹은 성실히 살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버렸다. 그래서 나이 들어서 지금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제어할 수 없는 편견. 나의 미래는 절대 그렇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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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곧잘 이렇게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은 그 이유가 있어, 열심히 살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거야, 나는 사람들의 이런 생각을 싫어하며 반대한다. 왜 이런 일반화를 시키는 걸까. 그런데 내가 그분들을 보며 한 생각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어디선가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그들 중 몇몇은 나에게 자식 이야기를 했다. 반대로 어떤 분들은 아마 나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자식은 어디에서 일하는데 우리야 늙은이니까 여기서 일하지만 젊은 사람이 안타깝군….









우리는 삶의 다양성과 현실적 상상력에 참 취약하다. 부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 현실에 그럭저럭 어느 정도 안주하며 가난하게 혹은 부유하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느라, 간병하느라, 도움을 받을 집안 배경이 없어, 여러 불운이 겹쳐, 회생하기 어렵거나 더 높은 꿈을 꾸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수 존재한다.



이분들의 삶을 그렇게 가까이서 멀리서도 보지 않았지만, 어떤 아저씨는 은퇴하고 골프 치러 다니면서 이 일을 한다. 한 때 공무원 생활로 연금도 나온다. 한 여사님은 이 일이 자신에게 너무 소중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열심히 키워놓고 집에만 있다가 우울증에 걸렸는데 일을 한 뒤 사라졌다고. 여사님께 죄송하지만 경단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익숙한 레퍼토리(?)이다. 그 정도로 일이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



많은 여사님의 핸드폰 배경화면에는 손자, 손녀 사진이 있다. 그들의 경제적 배경을 알지 못한다. 어려운 사람도 있고 그럭저럭 여유로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궂은일을 나가는데 자식이 반대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느 누군가에게 일은 보람이고 자부심이다. 60, 70살이 되어서도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고 다달이 200만 원대의 월급을 받아 자식에게 용돈도 주고 손자 손녀들의 장난감도 사준다.



건강이 재산이라고, 노년이 되어서도 이 정도의 강도 높은 일을 소화할 수 있는 그들의 체력이 부럽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 이 일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을 테니. 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우러러보는 마음. 여전히 상충하는 마음은 해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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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젊은 사람인 나를 궁금해한다. 매일 같이 출근하는 여사님이 일을 하는 도중에, 내게 글을 쓴다며, 하고 말을 건넸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 뭐하는지도 모르면 쓰나. 여사님은 왜 글을 쓰냐고 물었다.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 쓴다고 말했다.



여사님은 시를 좋아하신다고 하셨다. 나에게 왜 시를 쓰냐고 물었다. 나는 시가 어렵다고 시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시를 읽으시다니 대단하시다고 말했다. 여사님은 시는 한 번 읽으면 잘 모르는데 두세 번 곱씹으면 그 의미가 콕 와닿는다고 했다. 그게 너무 좋다며, 가족끼리 서점을 가면 다들 각자 관심 분야로 흩어진다는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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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다는 그 여사님은 자주 하루 12시간도 일하신다. 그 여사님을 보면 힘들어도 앞에서 힘들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내 나이보다 두 배나 많은 분이 군소리 없이 하고 가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픈 곳이 있다면 아프다고 말하고 힘들다고 한다. 그러니 여사님이 말했다. “우린 기계야”.



식기 세척기가 있는데도 우리는 꼼꼼히 기물을 다 씻은 후에 기계에 넣는다. 기계적으로 그 일을 반복한다.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야 덜 괴로울 거 같기도 해요”



나는 인간인데 왜 기계가 하는 일을 하고 있지,라고 생각하면 괴로울 테니까. 나는 그냥 기계라고 생각하면서 그 일을 마치고 인간적인 삶으로 돌아간다. 설거지하는 일만 기계적인 일일까, 분업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대부분 기계가 하는 일을 담당하거나 회사를 위해 기계적으로 일한다. ​



나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손마디가 아프다. 엄마를 닮아 얇고 긴 나의 손가락도 마디마디가 굵어지고 있다. 못 생겨지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보면 퍽 속상하다. 회사 다닐 때도 손목 터널 증후군이 있는 동료와 달리 나는 멀쩡했는데 본업이 아닌 곳에서 내 육체가 소진되고 있다는 사실도 그렇고.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몸이 아파가면서 일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일을 멈출 수 없다. 노동은 소속감, 관계, 자본, 나라는 사람의 필요성을 가져다준다. 설거지를 하며 깨달은 점은 그릇 정리와 달리 생각보다 보람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대량의 지저분한 식기를 다 같이 속전속결 합을 맞춰 해치우고 나면 뿌듯하다. 신기한 노릇이다.



노동을 신성시 여기고 싶진 않다. 기본적으로 노동을 하면 삶의 여유가 없다. 육체와 정신의 피로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 이 글을 보는 소수의 누군가는 경제적 여유를 일찍이 얻어 은퇴의 시간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늘 일을 하고 싶어한다.





​​​​지금은 그만두셨지만, 내가 이곳에서 일했을 때 가장 좋아했던 여사님이 있다. 그 여사님은 꽤나 호쾌해 함께 일하는 날은 시간이 언제 가는지 생각지 않고 즐겁게 일했다. 호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식권이 나오는데, 그분은 나를 데리고 한 끼에 만원이나 하는 밥을 밖에서 사주기도 했다. 쓰지 않아도 되는 무려 2시간 치의 노동비를 지불한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며 그분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여사님은 내게 무슨 일을 했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묻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여사님을 그렇게 대했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애정과 관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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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래는 우아하게 차나 한 잔 따라놓고 글이나 쓰고 있는 삶이면 좋겠다,라고 막연히 상상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쓰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내 오랜 소망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고 난 뒤, 어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온전히 하루를 글로 채울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설거지하고 남는 시간에 노동 끝에 시를 음미하고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이랄까, 그런 마음이 조금 생겼다. 내 삶의 생기와 활력을 주는 그 무엇이 확실히 있다면 그 삶은 분명 괜찮을 거라는 확신 같은 것.


​​더불어 욕심을 더 낸다면 직업이, 내 나이가, 성별이 나를 규정하지 않는 삶을 꿈꾼다. 그것을 탈피해 한 단계 도약해 나는 나로서 존재하기를 꿈꾼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도 그렇게 시선이 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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