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하지 못하는 사랑
그와 이별했다. 이번엔 내가 차였다.
나는 연애를 세 달을 넘긴 적이 없다. 1년도 아니고 6개월도 아니고 가장 길었던 게 3개월은 갔나?
보통 짧게 연애하는 사람들을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나 또한 그렇다.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에 나는 나의 연애 경력을 줄곧 자주 숨겨왔다. 부끄러웠다. 서른이 되도록 1년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니. 나는 내가 모태솔로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다. 유유상종이라고 내 주변엔 모태솔로나 연애를 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기도 하다.
나를 좋다고 하는 이성이 꽤 있었다. 스무살 이전, 학창시절에도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항상 나를 좋아하는 이성이 내가 마음에 든 적이 거의 없었다. 간혹 내가 호감이 있던 이성이 나에게 관심을 표하면 나는 갑자기 그가 부담스러워졌다. 이런 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그에게 관심과 호감이 있었던 게 분명한데 왜 난 그를 밀어내는 건지.
나는 일단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절대 눈이 가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야 사랑의 시작이 가능했다. 일주일, 이주일 만났던 남자들도 있다. 그 남자들이 바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의 연애는 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물론 그들도 호감은 있었기에 시작한 상대들이었다. 그런데 불타지 않고서는 손을 잡는 것도 부대꼈다. 나의 체력과 시간, 돈을 그들에게 쏟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성인이 되고나서 나를 꾸밀 수 있게 되고 나 또한 정신적으로 단단해지자, 내가 어느 정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성들이 나에게 대쉬해왔다. 그건 실로 놀랍고 벅찬 경험이었다. 이제 드디어 연애를 할 수 있게 된 건가? 하지만 늘 타이밍과 속도가 맞지 않았다. 한 때 내가 좋아했지만 마음이 식고 나서 뒤늦게 만난 사람들도 있었다. 혹은 그들이 먼저 좋아했지만 나는 부담스러워서 뒷걸음치다가 혼자 뒤늦게 사랑이 타오른 적도 있었다.
이렇게 적고보니 나는 누군가 급하게 내게 다가오면 멈칫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호감이 있던 사람이 내게 갑작스럽게 관심을 표하면 부담을 느끼고 도망친다. 참 이상한 습성이다. 오히려 내게 살짝은 무관심해서 나를 안달나게 만드는 사람에게 끌리고 더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어한다.
최근 사랑을 시작하고 이별을 고민하면서 연애 심리 상담 유튜브를 참 많이 찾아봤다. 평소에 유튜브 자체를 거의 보지 않는데 너무 답답하고 조언을 구할 데가 없어 손을 뻗었다.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유튜버부터 전문적인 심리 상담사나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까지 모두 살펴보았다. 전문성이 있는 이들이 말하는 것 중에 겹치는 내용이 있다. 그건 바로 ‘나쁜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고 요동치게 하는 사람에게 더 끌리는 이유에 관한 것이었다.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애착 유형’과 관련이 깊다. 연애라는 건 한 사람의 관계의 단면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행위라는 거다. 친구 관계일 수도 있고 부모와의 관계일 수도 있다. 우선 근본적인 건 부모와의 관계로 현재 나의 관계 유형과 패턴이 정해진다는 이야기다. 부모에게 일관되거나 안정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에게 안정이나 편안함을 느끼게하는 사람보다는 도리어 반대로 고통스러우면서도 불안정함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런 사랑의 방식이 자신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참 슬프다. 과거 어린 시절에도 안정적인 사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마음을 처량하게 만드는데, 그로인해 성인이 되고나서 현재까지도 그런 사랑에 계속 영향을 받고 행복하지 못한 현재와 미래로 연결된다니. 그래서 나는 이 애착 유형에 대한 이야기가 싫다.
이번 연애도 헤어짐에 여러 이유가 있고 결정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애착 유형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진 않다. 열렬한 사랑을 내게 보여줘서 시작한 사랑인데, 너무 뜨거운 그의 사랑으로 나는 불에 탈 것 같았다. 숨 쉴 여유와 공간이 필요했다. 너무 앞서가는 그를 따라가기가 벅찼다. 그래서 나는 지쳐갔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서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고 상처를 받아 그는 떠나갔다. 그런 생각도 든다. 건강한 그가 불건강한 나를 결국 견디지 못한 건 아닐까.
불안정 애착 유형이 안정 애착 유형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안정 애착 유형의 사람을 만나 사랑을 받는 거라고 한다. 내가 나로서 안정을 얻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꽤나 고통스럽다. 결국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건데, 그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과연 나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걸까. 운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이 모두가 다 거짓부렁이 같기도 하다. 부모의 사랑으로 나의 관계, 성격, 결함을 결정짓는 이 이론들이 말이다. 이것도 신기루와 환상, 신화는 아닐까. 정말 신봉할만한 이야기인 걸까. 프로이트의 말은 진실일까. 그럼에도 나는 행복하고 싶은 사람이기에 그의 이론을 일단 속는 셈치고 믿어보기로 한다. 나의 결함을 인지하고, 채워서 더 나아가고 싶다. 다른 사람, 다른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
짧은 만남과 헤어짐 가운데 내가 그래도 연애라고 꼽는 건 딱 세 번이다. 최근의 만남까지 포함하면 네 번. 사실 연애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한 기간이지만 어쨌든 그 기간만큼은 열정적으로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이니까 그들과 사랑은 아니더라도 연애를 했다고는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