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먹을수록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진다던데, 난 아직도 나이를 덜 먹었거나 제대로 먹지 않은 것 같다. 그와 헤어지고 한 달 뒤쯤이었을까 갑자기 고백을 받았다. 서점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스태프님에게서였다.
그는 정말 전 남자 친구와 정반대 성향이었다. 나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궁금해했고 걱정하고 챙겨주었다. 내가 정말 전남친에게서 바랐던 F의 모습. 반면 전남친은 항상 뭐 먹었는지 밥은 제때 잘 챙겨 먹었는지 그런 사소한(?)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각도 많거나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그때 기분과 상황에 충실한 사람. 그래서 매력적이지만 그래서 가끔 은 당황스러웠던, 즉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고백남은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남자친구로서는 너무나 훌륭했다. 내 말을 다 기억해 주고 내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표현에 서투른 내가 1을 말해도 열을 알고 이해해주었다. 다정하다는 수식어가 적절할까. 아니 어쩌면 남자친구가 아니라 친구로도 훌륭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그의 고백을 거절했다. 설레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수더분한 친구 같았다. 처음엔 호기심에 기반한 호감이 있었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이성적 호감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전남친과 헤어지고 나서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을 만나기로 그렇게 자신과 약속을 해놓고서 결국 그간과 다르지 않은 전철을 밟았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 그에게 거절의 의사를 밟히면서 내심 아쉬웠다.
전 연애까지 봤을 때 끌리는 사람의 유형은 비슷했다. 흔히 B형 남자로 상징되는 남자다운 사람들. 할 말은 해야 하고 생각이 그렇게 많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 하트시그널4로 보자면 ‘지원’ 같은 성격의 사람.
사람은 자신과 다른 유형의 사람과 끌린다고 하는데 정말 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그의 박력 있는 모습에 설렜지만 그의 성급한 성격 때문에 헤어졌다. 그의 섬세하고 다정한 모습은 좋았지만 너무 과도한 질문 세례와 묻지 않은 수다스러운 긴 이야기에 힘을 빼앗겼다. 두 사람을 상대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지친다’였다. 나와 달라서 끌렸지만 달라서 괴롭다. 중간은 도대체 어디인가 말이다.
전남친은 만날 때 최선을 다하고 헤어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라고 했다. 반면 나는 후회와 미련이 그득그득한 성향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정말 좋아서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그가 나를 떠났기 때문에 지독하게 그리워한다. 그는 내게 아쉬움을 남기는 사람이다. 그를 잊은 것 같다가도 하루에 몇 번씩 그를 떠올리는 나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정도 생각했으면 그만 질척거릴 때도 됐잖아.
이젠 포기했다. 나는 그게 안되는 성격인가보다. 그에 대한 감정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리워하기로 했다. 대신 다음 연애에서는 절대 후회를 남기지 않게 지독하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오늘의 상황과 오늘의 기분에 충실하겠다고.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절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 그처럼. 감정이 남는 건 정말이지 피로하고 소모적인 일이다.
다시 돌아와, 사람의 취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람도 동물인지라 습성은 무시 못한다. 나의 습성은 초식남보다 육식남에 끌린다. 그 육식남은 나와 마찰을 자주 일으키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매력에 저항하지 못한다. 육식남을 사랑하는 저주에 걸렸다. 하지만 또 완전한 저주는 아니다. 인간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통해 더 성장하고 나아지니까. 부부는 대개 그런 존재들이다.
나도 누군가와 평생의 연을 맺을 수 있을까. 평생 한 사람을 견딜 수 있을까. 나의 내적 성숙이 이루어지고 나를 견딜 누군가가 나타나길 비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