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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해 Jan 11. 2024

작년에 만난 남자들

사랑이란 알쏭달쏭


작년에 세 명의 남자를 만났다. 한 명의 남자와는 짧은 연애를 했고, 한 명의 남자에게는 고백을 거절했으며, 마지막 한 명의 남자는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첫 번째 남자 A와는 소개팅으로 만났다. 주선자는 과거 함께 일하던 언니였다. 설날쯤 언니는 오랜만에 잘 지내냐는 연락이 와서는 ‘소개받지 않을래?’라고 물었다. 한창 자취방 이사를 준비하고 있던 분주한 시기라 이사 후 다시 연락 주겠다고 답했다. 꽃피는 봄날 4월이 됐다. 이사와 짐 정리는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이제 한창 독립출판으로 바쁘던 시기였다. 바쁜 것 뒤에 또 바쁜 것이 오는구나. 마음은 출간은 한 뒤 소개를 받고 싶었으나 이전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또다시 미루면 불발될 것 같았다. 고민하다 언니에게 연락을 했고 그를 처음 만났다.


그의 첫인상은 소년과 어른의 중간 느낌이었다. 나이는 동갑이었는데 무척 동안인 탓에 동생 같기도 했다. 첫 대화에 여러 공통점이 많았다. 효율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성향,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것, 중국이란 나라와 연관이 있는 것 등. 나는 성향이 나와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만 가치관이나 취향은 나와 같은 사람을 볼 때 급속도로 호감이 생겼다. 소개팅 첫 만남에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여태 딱 1번뿐이었다. 그때도 같은 주선자 언니가 소개해준 사람인데 이번에도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적극적이었다. 그에 대한 마음이 아리송한 나도, 자신도 모르게 ‘어라?’하며 끌려가면서 그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만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서로 오해를 해서 틀어질 뻔도 있었고, 감정적으로 그에게 마음은 커져가고 있는데 자꾸만 어딘가 불편하고 부딪히는 부분도 많았다. 그때마다 올라갔던 감정이 주춤했다. 그를 만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불도저 같았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에게 구애를 했고 ‘만나보고 별로면 헤어지면 되잖아’라는 말을 남겼다.


우여곡절 끝에 사귀기로 해서도 많이 싸웠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서로 표현이 서툴다 보니 오해가 쌓였다. 그는 자기감정에 너무 충실한 남자였다. 나는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인데 그는 단순하고 확실한 사람이었다. 내 입장으론 그는 도무지 상대를 배려하고 생각할 줄을 몰랐다. 아직 그가 정신적으로는 어리다는 증거였다. 그의 입장에선 아마 난 너무 복잡하고 예민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해하고 상처만 받는 날이 늘어갔다. 결국 그는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없이 이별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만남도 빠르고 이별도 빠르구나. 그의 통보에 슬프면서도 화가 났다. 그를 만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에게 마음을 열어가던 중이었던 나는 한 마디 상의도, 눈치도 없이 헤어지자고 말하는 그 앞에서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해댔다. 그런 내게 그도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지금 생각하면 화를 내도 모자를 마당에 사과를 한 행동이 약간 후회가 되지만, 한편으론 추하게 이별하진 않아서 그게 마지막 모습은 아니라 다행일 수도.



이별 후 다른 남자를 만나도 그를 만나러 가는 순간만큼 설레지 않는다. 이토록 설렘을 주는 이가 드물다니. 그와 더 잘 했어야 하는데. 설레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그중 나와 맞는 사람 찾기는 더더 어렵다. 적당히 설레고 적당히 잘 맞아서 서로 맞춰가고 싶습니다만….









하지만 A를 만나면서 다시는 그와 비슷한 유형의 남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무조건 MBTI F인 사람을 만날 거야. 나의 감정을 세심히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 사소하고 자잘한 일상과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즈음 7월, 두 번째 남자가 찾아왔다.


B는 일터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그의 첫인상에 호감을 느꼈는데 대화를 해보니 웃기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나처럼 생계유지에 대한 일을 따로 하고 예술을 준비하며 꿈꾸고 있었다. 우린 동질감에 급속도로 친밀함을 느꼈다.


한편 B는 정말 A와 정반대 되는 사람이었다. B는 섬세 감정의 끝판왕이었다. A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이라 이런저런 일상을 공유할 줄 알고, 내 짧은 말에도 이해와 공감은 넘쳐나는 그에게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꼈다. 일단 대화가 되는 사람이었다. 가치관이 비슷했고 감정적으로 통하는 결이 비슷했다.


하지만 그는 좀 과했다.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자꾸만 캐내고 질문하였으며, 표현력도 뛰어나고 할 말도 많은 그는 뚱뚱한 카톡을 계속 연달아 보내댔다. 부담스러웠고 가끔 숨이 막혔다. 그의 섬세하고 자상한 면에 마음이 흔들렸으나 그와 연락하면서 점차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이 애인이기보다 친구에 가까운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됐다. 차츰 눈치를 보며 그와의 연락 빈도를 줄여갔다.


그는 많이 답답했는지 어느 날 일터 내 사물함에 편지를 놓고 갔다. 편지를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그가 준 것이라는 걸 알았다. 편지 봉투는 터질 듯 매우 두툼했다. 글씨로 빼곡히 꽉 찬 다여섯장의 편지지에는 그의 풍성하고 풍부한 상상력과 감정이 담겨 있었다. 편지를 보면 늘 흔들렸다. 가장 솔직하고 내 안 깊숙이 있는 감정을 끌어왔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고백하는 그의 말들이 좋았다. 새침한 내 표정도 좋고, 신나서 떠드는 표정도 좋고, 왁 하고 웃는 모습도 좋다고 했다.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이렇게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는 그와 하는 연애는 행복할 것도 같았다. 적어도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겠지, 하나부터 열까지 놓치지 않고 나를 챙겨줄 거야. 나는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연애를 할 수 있게 될까? 하지만 내 상상력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친구로서 좋은 사람이었지 내게 남자로서 느껴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단호하게 펜을 들고 내가 할 말을 적어 나갔다.


그는 내 편지를 보고 한 번 더 만나고 싶어 했다. 나 또한 그에 대한 좋은 감정이 남아 있었기에 그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어떨지 모르겠는 심정도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내 집 앞 카페에 와 있다며 나오라고 했다. 나도 그를 좋아했다면 갑자기 찾아온 이 상황이 로맨틱하게 느껴졌을 테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서 그 상황이 불편했다. 차라리 미리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았다면 나는 기꺼이 그를 한 번 더 만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의향이 있었다. 결국 나는 그를 만나러 가지 않았고 그와의 인연은 마무리되었다.










시간이 지나 가을이 됐다. 10월에 열린 북페어에 내 책을 팔러 갔다. 책은 팔리지 않았고 의기소침한 채로 시간만 흘러갔다. 오후 4시쯤 되었을까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책을 팔기 위함이었다. 그때 혼자 온 남자가 보였다. 얼굴이 새하얗고 머리가 약간 긴 장발의 남자였다. 말 걸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외모였으나 어쩌다 그가 걸렸다. C는 내쪽으로 와서 조용히 내 말을 들으며 책을 구경하다 갔다. 가까이 보니 잘 생긴듯해 심장이 콩닥 뛰었다. 그는 아직 둘러보지 못한 다른 부스를 한 번 둘러보고 오겠다고 했다.


20여 분 뒤 다시 그가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총알처럼 그에게 튀어나가 말을 걸었다. 평소 그리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었던지라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 민망했다. 그만큼 사실 난 책 팔기에 절박했다. 그는 결국 내 영업에 책을 구매했다. 그가 책을 뒤적하더니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었다. 간혹 책을 구매하지 않아도 인스타그램만 물어보고 가는 손님들도 있었다. 내가 궁금하고 관심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책을 안 팔아도 기분이 좋았다. 그에게 책날개 앞표지에 쓰여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가 언제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할까 궁금했다.


며칠 뒤 그가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했다. 바로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맞팔을 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게시물이 4개밖에 없었고 글을 읽어보니 음악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오호 더 매력적이구만. 북페어에 대한 감상을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렸더니 그에게 DM이 왔다. 얼씨구나 좋다구나. 신나게 답장을 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는 더 확장되어 성격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었고 우리가 정반대의 MBTI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와의 대화는 재밌었고 첫인상도 호감이었기 때문에 한 번 만나고 싶었다. 나는 언제 한 번 보고 이야기 나눠도 재밌겠네요,라는 말을 던졌고 그도 언제 한 번 보자는 말을 했다. 결국 우리는 매일 같이 DM을 하다 한 달 뒤쯤 첫 만남을 가졌다.



그와의 만남은 내게 충격이었다. 메시지 상으로 주고받던 그 적절한 거리감에서 온 적당한 예의, 다정함, 스마트함이 한 번에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4살 어렸고(나이는 크게 상관없었지만) 대화의 90퍼센트는 그의 독백이고 나는 그가 무안해지지 않게 추임새만 넣는 수준이었다. 이야기가 재밌으면 그냥 말이 많은 사람이구나 했을 텐데 자신이 손절당한 이야기, 친구들과 해외 여행 가서 환전을 적게 한 친구들 두고 혼자 밥 먹은 이야기, 자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타인에게 상처 주었던 이야기, 겉으론 멀쩡한 것 같지만 네가 제일 미친놈이라고 했다는 자기 친구의 말을 필터 없이 전해 들었다.


기대와 설렘을 가득 안고 이 날을 기다려온 내가 너무 한심할 정도였다. 외모도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기가 빨렸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도망치듯 술집을 빠져나와 그가 애프터도 잡지 못하게끔 재빠르게 헤어졌다.


이후 그와의 만남을 기대하지도 않으니 더는 연락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몇 주 가까이 연락을 하면서 그 메시지 상의 사람과 정이 들었다. 그 사람은 정말 나이스했는데. 도무지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질 않았다. 그간 설레고 기대했던 마음에 아쉬움만 잔뜩이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친구는 나에게 너무 벽치지 말라고 했다. 그가 다시 연락을 왔을 땐 원래 내가 알던 다시 나이스한 사람으로 돌아간 뒤였다. 그래서 조금 더 연락을 이어 나가보기로 했다. 메시지 상으론 좋으니 속는 셈 치고 연락만 해보지 뭐…


우리는 만난 지 몇주가 자나서야 DM에서 카톡으로 옮겨갔고, 두 번째 그리고 해가 넘어가며 세 번째 만남까지 가졌다. 만나면서 점점 그가 말하는 지분이 줄어들고 나도 입을 떼기(?) 시작했다. 그는 냉철한 이성주의자임에도 나에게는 다정하고 친절했다. 그의 섬세한 배려에 넘어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조금씩 현실 세계에서 메시지 상의 그 모습이 보였다. 술집에서 화장실 갈 때마다 밖에 나와 나를 기다려주고, 오들오들 떠는 내게 자신의 패딩을 벗어주고 목도리를 집에서 가져와 둘러주었다.


많은 남자를 만나면서 이렇게까지 다정하고 섬세하게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똑똑하고 눈치가 빨랐다(그런 그가 첫 만남에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되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과 나의 성향과 생각들을 빠르게 파악하고 행동했다. 맞춤형 남자처럼 대했다. 전화보다 문자를 더 좋아하는 내게 문자 메시지에 열심히 답장해주었고, 나의 일과와 일상을 물어봐주었으며, 속도가 느린 내게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천천히 다가와주었다.


그와 사귀지도 않으면서, 헤어지면 그가 너무 잘해줘서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렇게까지 내 마음을 알고 다 맞춰주고 편하게 대해준다고? 이런 남자가 또 있을까? 그는 통찰력이 무서울 정도로 좋아서 말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성향인지 알았다. 그와 만나고나니 A와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더 느껴졌다. 만약 A를 만나지 않고 그를 만났더라면 이토록 감격스럽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가끔 그와 대화하다 흠칫 놀랄 때도 많다. 그는 내가 상처받는 유형의 특성 또한 아주 많이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앞에서는 조심하고 매우 신경 쓰지만 그의 원래 모습이 간혹 가다 보일 때면 난감하다. 그래서 온전히 마음을 다 주기 어렵고 호감이 주춤하기도 한다. 나는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해도 되는 걸까?











작년에 만난 세 남자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음악을 하고 했다는 것이다. A는 대학교 시절 음악 동아리를 만들어 친구들과 노래 작업을 했다. 내가 그에게 귀촌하고 싶다고 하자 ‘나는 너만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다’며 ‘시골에서 살게 되면 작업실 하나를 구해 그곳에서 음악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B도 음악에 미쳐 있는 사람이었다. 20대에 각종 공연을 다니며 음악을 했고 지금도 보컬 레슨을 받으며 악마에 영혼을 팔아서라도 음악을 잘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최종 꿈은 음악가이다. 예고를 나온 C 또한 음악을 하기 위해 상경해 오전에는 알바를 하며 오후에는 개인 작업을 한다. 주말에는 레슨을 받으러 다닌다. 그의 최종 꿈도 음악인이다. 나중엔 한가로운 곳에서 낚시를 하며 음악하는 꿈을 꾼다고 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어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다들 약간 이상할 수도 있는 독특한 사람들이라는 것. 왜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 나를 좋아하는 건지, 그들 눈에 띄는 건지 모르겠다. 아마 혹시 내가 비슷한 사람이라서? 그들은 적어도 일종의 또라이들이었다.


A는 학창 시절 개그맨이 되고 싶을 정도로 자신이 우스꽝스럽고 망가지는 걸 좋아했다. 그 때문에 내가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의 행동을 자제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B 또한 그의 눈을 보면 가끔 광기가 돈다. 그에게는 무엇인가 열렬한 집착 같은 게 느껴진다. 음악을 향한 그의 사랑에서도 그렇고 그의 어마어마한 카톡 양에서도 그렇다. C에 대해서는 앞에서 다 말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특이한 사람만 꼬일까? 아니면 인간이란 다 특이한 구석을, 즉 별종의 개성을 다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걸까? 그러기엔 무던했던 남자들도 떠오른다. 나는 그들에게 금세 흥미가 식었다. 이제 보니 나는 다소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들에게 한편으로 흥미를 느끼고 계속 관심이 가는구나. (솔로지옥의 이관희가 떠올랐다. 내가 만약 그 프로에 나갔더라면 이관희 더비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나를 쫓아온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을 쫓아간 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올해엔 정말 연애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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