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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해 Jan 11. 2024

저는 연애 프로 과몰입러입니다

<환승연애>, <하트시그널>, <솔로지옥> 그리고 <나는 솔로>까지


일반인 연애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다. 인기가 그만하면 식을 때도 됐는데 매번 새로운 형태의 예능이 탄생하고 새 시즌이 나온다. <하트시그널>을 시작으로 <환승연애>, <솔로지옥>, 그리고 <나는 솔로>까지 일반인 연애 프로그램이 판친다.


제목도 이리 자극적일 수가 없다. 연애에서 금기시되고 죄악시되는 ‘환승’과 ‘잠수 이별’. ‘환승’이라는 단어를 가져와 헤어진 연인들이 다른 상대를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솔로 ‘지옥’은 또 어떤가. 평소에 연애지상주의를 외치며 솔로들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처사들에 마음속 몰래 울분을 토하고 있는 나였다. 이토록 연애 프로그램은 제목부터 솔로는 불행하고 커플이 되어야 행복하다는 주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 이런 제목을 들었을 때 반감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프로그램 제목이 대놓고 ‘환승 연애’, ‘솔로 지옥’이라니. 말세다 말세.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이 모든 연애 프로그램들을 돌아가면서 섭렵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연애 프로에 처음 ‘치인’ 것은 ‘하트시그널’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다. 연애 프로그램 중 그나마 제목과 콘셉트가 덜 자극적이다. 하트시그널은 약간의 풋풋하고 설레는 일반인 청춘 남녀들의 로맨스를 중심에 두고 있다. 우연히 할머니네 집에서 잠이 안 와 혼자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던 중 하트 시그널 3을 발견했다. 평소 연애 프로그램 이야기만 나오면 오글 거리는 것, 약간 좀 그런(?) 특정 사람들이 보는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어 잠시 리모콘을 가만히 놔둔 것일 뿐인데, 이후로 하트시그널 3과 레전드라는 하트시그널 2까지 정주행 하게 된다.


하트시그널 폐인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애 프로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이별 위기에 있는 커플들이 모여 상대를 바꿔 데이트를 하는 ‘체인지데이즈’ 단체 미팅을 하는 듯한 일본의 ‘테라스 하우스’, 한 중년 인도 여성이 인도 청춘남녀를 연결시켜 주는 ‘중매를 부탁해’까지 모조리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모두 도파민 파티였다.




제목이 제일 자극적인 ‘환승연애’에는 손 안 대야지 했는데 이별 경험까지 있는 오래된 커플인 한 친구가 자기 남자친구가 그 프로그램을 꼭 보라고 했다면서 티빙을 처음으로 결제했다는 게시물을 보았다. 음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무언가가 있나 보구나. 그 이후 티빙만 보면 환승연애가 저절로 떠올랐다. 환승연애 환승연애 환승연애. 음 궁금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환승연애 업로드하는 날짜만 기다리는 이번에는 환승연애 과몰입러가 됐다. 환승연애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쉽게 헤어진 연인들은 재결합을 하며 더욱 돈독해졌다. 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못한 커플들은 서로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면서 그간의 오해를 풀고 진정으로 상대의 행복을 응원하는 아름다운 이별을 보여주었다. 또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아예 새로운 예쁜 커플들이 탄생하며 새로운 출발과 시작을 알라기도 했다.


환승연애는 연애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었다. 아름다웠던 시작부터, 그 과정, 권태기, 갈등, 이별, 이별 이후까지. 나는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 울고 웃는 일을 반복했다. 자극적인 제목과 설정치고는 너무 아름다운 만남과 헤어짐의 서사들이 생겼다. 오히려 연인들에데게 정말 꼭 필요한, 중요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솔로지옥>은 진짜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저렇게 몰상식한 제목을 프로그램 제목으로 들고 니올 수 있지. 아무리 화제성과 시청률을 위해서라고 해도 도를 넘었다 정말. 저건 보고 싶지 않아. 절대 안 봐야지. 결심이 무색하게도 마음이 약해지고 무력한 어느 날, 나는 손에 대면 안되는 마약을 댄 것처럼 솔로지옥을 틀게 된다. ‘어머나 솔로는 지옥도에 있고 커플은 천국도를 보내다니’ 보면서도 혀를 끌끌 찼다. 정말 점점 자극의 강도가 세지구나. 어쩌면 좋을까. 한 번 손 대면 멈출 수 없는 마약처럼 나는 결국 솔로지옥을 정주행하고 다음 시즌은 아무런 죄책감없이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그 다음 시즌은 더 신나게 챙겨 보았다. 솔로지옥의 세계관은 무력한 나를 점령해버린 것이다.




예쁘고 풋풋한 청춘 남녀들의 사랑에서 멈출 생각이었다. <나는 솔로>까지는 갈 생각은 정말 추호도 없었다. 하도 말이 많길래 우연히 채널을 넘기다 몇 번 봤는데 B급도 아닌 C급 감성에, 출연자들에게 일부러 시키는 우스꽝스러운 연출에 불쾌감이 올라왔다. 그런데 또 나는 ‘치이고’ 만다. 이번에는 다른 느낌으로. 너무나 강력한 매운맛이었던 16기를 보고 나는 솔로에 매력에 빠져버렸다. 이건 연애사라기보다 인간사를 총 망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터넷상에서도 나는 솔로 16기는 연일 화제였다.




연애 프로는 나에게 과다한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나의 전 애인이 새로운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 것을 목격하고 괴로워한다. ‘지옥도’와 ‘천국도’를 나누어 커플 매칭에 실패한 사람은 지옥도에 커플 매칭을 성공한 사람은 천국도로 보내버린다. 연출진들은 사랑을 위해 싸움을 시키고 온갖 갈등이 범벅되고 감정 소모가 극대화되는 상황을 일부러 세팅한다. 자극적인 설정에 나의 눈은 화면에서 떼지 못하고 나의 뇌는 정신 차리지 못하고 뜀박질한다.


또 연애 프로를 보는 재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는 인간 군상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 상황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할 텐데 저 사람을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는구나. 배우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하고 반면교사로 삼기도 한다. 내가 그 프로의 출연자 중 한 사람이 되어 잔뜩 이입할 때도 많다. 저 사람은 나 같네, 나도 저 사람이 좋은데. 출연자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같이 울고 웃다 하고 있는 자신과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런데 연애 프로를 아무리 많이 본다고 해도 내 연애가 느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적용하지 못하고 그저 방구석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연애 프로를 보는 가장 큰 이유이자 인기 있는 이유는 연애의 대한 환상 혹은 갈망을 충족시켜서이다. 아마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현실에서 말고 온라인 상으로 연애를 대리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애인과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는, 감정 소모가 가득한 힘든 현실의 데이트보다 연애 프로 하나만 켜면 연애가 주는 설렘, 기쁨, 행복을 더 많이 접하고 느낄 수 있기에 말이다. 로맨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테다.


연애하기 어려운 시대다. 당장 내 몫 하나를 챙기고 내 몸 하나는 건사하기도 벅차고 힘겹다. 마음에 드는 이성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상대를 보는 마음의 여유는 사라지고 그 기준은 점점 까다로워지기만 한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도 ‘오랜만에 설렘을 느끼게 해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잘나면 잘난대로 못나면 못난대로 연애하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이 달콤한 도파민을 끊기 어렵겠지만 언젠가 연애 프로가 시시해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의 연애가 너무 행복하고 감미로워서 더는 연애 프로를 빌려 그 감정을 만족시키지 않도록, 남들의 연애를 구경하는 일이 이제는 시간 낭비라고 여겨지도록.



그래도 당분간은 계속 챙겨볼 것 같다. 이제 <솔로지옥 3>가 끝나고 <환승연애 3>가 시작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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