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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해 Feb 21. 2024

뒤늦은 연애를 하며 깨달은 것들

타인과 더불어 지낸다는 것

연애란 것이 마냥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알고 보니 굉장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 경제적, 시간적, 체력적 그리고 특히나 무엇보다도 감정적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게 소비된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연애를 하지 못했던 이유가 내가 눈이 높아서, 혼절순결이라서,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서, 가 아니라 상대방을 맞추고 이해하고 타협하는 기술과 힘이 부족해서, 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가까운 사람들과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드는 요즘, 타인과 더불어 지내는 일이 점점 힘든 것 같다고 느낀다. 약간의 친밀감만 있는 이들에게는 조금 안 맞거나 불편하다 싶음 적당한 거리를 두면 되는데, 절친한 이까지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잠시 거리를 두어도 괜찮은 관계와 달리 가까운 이들에게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참 관계, 사람을 대하는 일에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이구나’라고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라도 늘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닌데. 생각해 보면 그때그때 성숙하게 잘 표현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참고 넘어가며 지내왔다. 어쩌면 갈등이 생겼을 경우 그것을 처리하고 해결하는 게 미숙해서 그저 피해버린 것도 같다. 서로를 배려하며 또 갈등을 해결하는 연습이 내 삶에 거의 없었지 않았나 싶다.

예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는데 요즘은 이런 불편감을 많이 느낀다는 사실 또한 매우 당혹스럽다. 나이가 들면서 가치관과 생각이 확고해져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늦은 나이지만 지금이라도 연애를 통해 그런 모습을 단련하고 싶다.

이제는 ‘나’의 행복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시대상은 나의 성질과 무척 잘 맞다. 그냥 내 일, 내 삶만 꾸려도 칭찬받고 장려받는 세상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점점 결혼을 하지 않고 그저 나의 만족을 위해서 살아간다. 서른이라는 시점에 와 있는 지금, 나 또한 삼십여 년간 그렇게 살아왔다.

연애는 유토피아가 아니구나. 누군가와 진지한 교제를 시작하고 나서 알았다. 연애와 결혼. (어느 정도의) 희생과 배려가 있어야 유지 가능하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이 행복과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구나. 지독히 행복하지만 지독히 힘들 수도 있는 거구나. 이걸 서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니 부끄럽기도 하다.

나와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 요즘 많은 생각이 든다.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며 외롭지만 어쩌면 편하게 살았다면, 또 다른 행복을 위해선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사실 내게 편하고 익숙한 건 전자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나는 홀로 있을 때 무진장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을 동경해 왔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의 고통을 잘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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