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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배 May 15. 2023

스승의 날, 왜 우울해졌을까

여전히 꿈꾼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니

지난주 금요일엔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공지사항이 나왔다. 다음 주 스승의 날에 부모님이 준비하는 선물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 담긴 편지나 카드가 좋다는 내용이었다. 벌써 7년이 된 김영란법은 스승의 날을 서로 부담 없이 조용하게 보내도록 만들고 있는데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은 입장에선 마냥 좋지도 싫지도 않은 법이 아닌가 싶다. 스승의 날의 주인공인 선생님들께도 요즘의 스승의 날은 오히려 불편하고 어려운 날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스승의 날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고 자 따라서 써봐 하고 '선생님 감사해요' 글자를 보여준다. 아마도 아이는 자신에게 어린이날이 있다면 선생님께는 스승의 날이 있는 건가보다 생각하는 듯하다. 또박또박 글자를 써 내려가던 아이는 자기 글씨가 마음에 안 든다면 연거푸 새로운 종이를 달라고 한다. 인내심 한 스푼, 대견함 한 스푼 더해진 마음으로 카드 만들기를 마치고 유치원 가방 안에 삐뚤빼뚤 아이의 사랑이 담긴 카드를 넣는 것으로 스승의 날 준비를 마쳤다.


@pexels


다른 날보다 더 분주한 것 같은 월요일 등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꽃집에서 보내온 문자가 도착했다. 주문한 꽃바구니를 과사무실에 잘 배달했다는 문자. 이제는 거의 이십 년이 되어 가는 은사님께 멀리서 마음을 보냈다(꽃을 보내기 전 졸업생이 꽃을 보내는 건 괜찮은가요 검색해 본 건 안 비밀 ㅎㅎ). 언제나 제자들에게 따뜻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던 교수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연구실에 찾아가면 타주시던 믹스커피와 커피를 한 손에 들고 같이 걷던 교정의 모습도 생생하다. 교수님 역시 본인의 은사님과 함께 산책하던 일이 참 좋으셨다고 말씀하시며 대화하며 때로 조용히 걸음을 옮기던 그 순간 모두 배움의 시간이었다. 


시간을 내서 찾아뵙고 인사하고 싶지만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아직 내가 '무엇인가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10을 받고 100을 배우고 그렇게 많은 것을 받았는데 어째 나는 그중의 10도 1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마음은 감사함을 표현하기 주저하게 만들고 스스로가 더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멋진 제자의 모습을 찾아간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생각이 얼마나 어린 생각인지 또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어느새 교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교수님의 나이만큼 나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의 나는 그저 제자리걸음인 거 같아 우울해진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딱히 앞으로도 비약적인 발전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스승의 날을 생각하다가 오늘의 나를 생각하며 기분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그냥 그런 제자의 모습일지라도 나는, 우리는 지금까지 열심히 걸어왔다. 그때의 꿈과 소망만큼 자라진 못했을지라도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에, 오늘이 우리의 가장 젊은 순간이기에 여전히 앞으로 꿈꿀 수 있는 날이 남아 있기에, 그렇게 쭈꿀쭈꿀해진 마음은 툭툭 털고 일어나 본다.


내가 선생님이 아니기에 알 순 없지만 아마도 많은 선생님들이 용기 내서 연락한 제자들의 인사에 기쁘고 뿌듯한 마음을 가지시지 않을까. 갈수록 교권이 위협받는다는 요즘, 선생님을 기억하고 기억한다는 한마디가 선생님들에게 더없이 큰 선물이 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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