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리배 Oct 03. 2023

상처 없는 명절이 어디 있으랴

"그럴 수 있지"를 열 번 중얼거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며느리

기나 긴 추석연휴가 끝나간다. '명절특집'으로 따로 발행되는 TV편성표를 펼쳐놓은 채 이리저리 리모컨을 돌려가며 명절을 지내던 어린 내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제 명절은 긴 교통체증을 견뎌야 하고 배우자와의 묘한 긴장감을 이겨내야 하는, 결혼한 지 꽤 되었는데도 여전히 무능한 며느리로 지내는듯한 스스로가 속상한 그런 며칠로 받아들여진다. '왜 쉬는 날이었는데 피곤하지?' 묻는 남편의 말에 정답이 들어있다.


sns세상 속에선 모두들 행복한 명절을 보낸다.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기도 하고 신사임당 그림이 빼곡히 그려진 돈다발을 늘어놓은 채 하트를 쭈욱 붙여놓은 사진들이 올라온다. 그네들의 사진에선 이번 추석이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하루하루가 아쉬운 시간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나는, 우리는 알고 있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이번 추석 역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마음이 상하고 누군가는 눈물 훔치며, 누구를 위한 시간인지도 모르게 그렇게 가슴 한편 생채기를 남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pexels


유난히 길었던 이번 명절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어떻게 보내야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난 설과 추석에 시가와 본가를 번갈아 가고 싶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었는데 결혼을 하고 하니 명절 아침을 당연히 시가에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괜히 서럽기도 했다. (사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번갈아 양가를 오가기도 하고, 명절 전에 부모님을 만나고 명절엔 쉬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남편이 물었다.

"명절 당일에 본가(처가)로 가고 싶지?"

나는 대답한다.

"아니, 나는 명절 아침을 우리 부모님이랑 한번 보내고 싶어!"


사실 말하면서 스스로 멋쩍어지긴 한다. 결혼 전엔 명절 아침 다 같이 밥 먹는 것에 그리 의미를 두지 않았으니 말이다. 사실 어디서 먹어도 그만인걸. 모두 가족인걸.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며느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괜히 내 안엔 명절 아침에 대한 의미가 더 커진 듯도 하다.


이번 추석은 연차를 하루 내서 시가로 내려가는 길에 우리 집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아침에 시가에 도착한 후 이틀을 자고, 다시 본가로 가는 일정을 세웠다. 명절 당일 오후엔 부모님을 보러 가고 싶었지만 내려가는 길에 잠깐이라도 뵙고 가니까 다음 날 가는 건 괜찮겠지 생각했다. 추석 당일 늦은 오후에 집으로 오신 언니들도 만나고 다음날 아침 부모님을 만나러 이제 출발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아버님이 불쑥 말씀하신다. 고모를 보러 한번 갈래?

두둥. 아 아버님은 나도 우리 부모님을 보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걸까? 마음속 유리창에 조금의 금이 가기 시작한다.


"아빠! ㅇㅇ도 부모님 뵈러 가야지. 이틀을 기다리셨는데. 우리 가야 해요."

남편이 황급히 막아보지만 아버님은 다시 말씀하신다. 이번 연휴는 길고 하루 정도 더 있어도 되지 않냐고. 내려올 때 들렸다면서. 분명 내 이야기인데 내가 아닌 남편과 시아버지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 얼어붙었다.


아버님의 생각도 이해가 가긴 한다. 하루쯤 더 있다가 갈 수도 있는 거지. 그렇지만 항상 명절 아침을 이곳에서 보내는 나와 우리 부모님을 한 번쯤은 생각해 주실 순 없나. 감출 수 없는 서운함이 몰려온다. 어제 누나들도 왔으니 ㅇㅇ도 당연히 가야지라고 남편이 말해보지만, 아버님은 어제 못 온 누나들도 있지 않냐며 하루 더 있기를 바라신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하루 더 있다가야 할 것 같아 말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다. 나는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을 모른 척하지 않고 우리 부모님께도 최선을 다하는 딸이 되고 싶다. 그렇게 착한 며느리라는 이름은 포기한다.




이번 추석은 망한 것 같다. 이틀 동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버님에게 여전히 부족한 시간이었고, 결혼하면 여자는 남자 집안의 사람이 된다는 그 시대의 생각은 쉽사리 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따뜻한 배웅 없이 서운한 표정의 아버님 모습을 뒤로하고 우리 부모님을 뵈러 길을 나섰다.


남편은 최선을 다해 나를 생각해 주었다. 그런데도 자꾸 남편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 진다. 그러나 참기로 한다. 이건 우리 둘 다 어쩔 수 없는 문제다. 내가 미처 짐작 못한 순간 남편도 우리 부모님의 어떤 순간을 분명 견뎠을 것이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 앞에서 서로를 탓하지 말자. 서로의 속상한 순간을 모른 척하지 않고 서로 미안해한다면 그냥 툭 털어내고, 아니 그냥 또 마음 한편에 묻고 그렇게 명절을 마무리해보려 한다.


상처 없는 명절이 어디 있으랴. 바꿀 수 있는 것은 투쟁하되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은 그냥 그럴 수 있지 하고 흘려보낸다. 아니 그러고 싶다. 부인할 수 없는 현타는 이곳에 글로 남겨 희석해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무리하지 말 것. 기대하지 말 것. 기대에 다 부응하려 하지 말 것. 속상한 스스로의 마음을 인정하고 그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올 것.


끝났다, 명절.

고생했다. 우리 모두.



매거진의 이전글 스승의 날, 왜 우울해졌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