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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Nov 05.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68 - 허를 찌르는 대화

2023년 7월 19일 수요일


일어나자마자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텀블러에 물을 받으러 탕비실로 향했다.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서는 정수기 앞에 겨우 서있는데  탕비실에 있는 아주머니들은 아주 힘이 넘친다. 이른 아침부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좋은 아침’이라고 외치며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그러다 간병인 아주머니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좋은 하루”

“아침부터 기운이 좋아 보이네.”

“간병이 쉽지는 않지만 이왕 하는 거 즐겨야지 뭐 어쩌겠어.”


 병원 생활을 안 해본 사람들은 알 수 없겠지만 환자들이 있다고 해서 이곳이 마냥 우울하기만 공간은 아니다. 그 속에서도 희로애락이 녹아져 있다. 아침부터 탕비실은 사람들의 웃음으로 끊이질 않는다. 모두들 힘든 상황은 매한가지인데 밝은 에너지가 넘친다. 이왕 하는 거 즐겨야지 뭐 어쩌겠냐는 아주머니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여기 있다 보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을 일찌감치 겪어본 어른들의 지혜를 전수받을 수 있다는 점은 참 좋은 것 같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그 말을 들으니 나 또한 오늘 하루도 잘 헤쳐나 가보자는 열정이 솟아났다.


 동생은 요즘 말이 부쩍 늘었다. 아직 발음이 어눌하고 목소리가 작긴 하지만 대화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간혹 가다 허를 찌르는 대답을 할 때가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말을 어찌나 잘하던지 말문이 턱 막힐 정도였다.


 아침 회진을 돌 때 의사가 동생이 예전에도 마른 편이었냐고 물어봐서 평균이라고 대답했다. 예전 사진을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보여줬더니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의 반응이 뜨겁다. 아주 훤칠하다면서 잘생겼다고 말해주니 동생이 씩 하고 웃는다. 선생님들은 동생이 웃는 모습을 보고는 칭찬해 주니 얼굴이 밝아졌다며 즐거워했다. 사진 하나로 시끌벅적해진 회진 시간이 지나가고 동생한테도 사진을 보여주면서 물었다.


“네 옛날 모습 어때?”

“잘생겼다.”


 동생은 자기의 사진을 보더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잘생겼다고 말한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이번에는 내 사진을 보여주며 어떻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한다.


“튼실하다.”

“뭐어? 튼실???”


 튼실하다는 말을 듣고 내가 격한 반응을 보이니 동생은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즐거워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놀리는 걸 보면 장난기는 여전하다. 말을 하는 걸 보면 인지도 많이 돌아온 게 느껴질 정도다. 우리끼리 때린다라는 말을 ‘뚜까뚜까‘라고 쓰는데 때린다는 뜻이 어떤 건지도 정확하게 안다.

 

“너 말 안 들으면 뚜까뚜까 한다.”

“안돼.”

“뚜까뚜까 하면 어떻게 돼?”

”아파. “


 맞으면 아픈 게 당연한 말이긴 한데 동생이 너무나 해맑은 표정을 지으면서 저렇게 말하니 웃음이 터졌다. 물론 아픈 애를 쥐어박을 수는 없지만 동생이 사고를 쳐서 딱밤을 주고 싶은 순간이 올 때 저 말을 들으면 귀여워서 화가 풀린다. 예전에는 얄미운 짓만 골라해서 동생이 귀엽게 보이는 날이 올 줄 몰랐는데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  


 점심시간에는 청국장이 나왔는데 동생한테 먹을 거냐 물으니 거절을 한다. 평소에는 잘 먹으면서 이번에는 안 먹는 게 의아해서 다시 물었다.

“청국장 왜 안 먹어?”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

“내 맘이야”


 이제는 의사표현도 확실하다. 자꾸만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해서 놀라우면서도 웃겼다. 그리고 간혹 엉뚱한 행동도 하기 시작한다. 밥을 먹다 말고 간장병을 집어 들더니 입으로 갖다 댄다.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엄마한테 들었던 터라 놀랍지는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말을 해주면서 혹여나 동생의 인지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을 하였다. 나는 간장을 마시려는 동생을 보며 말을 했다.


“뭐 하는 거야? 그걸 마시려고 하면 어떡해.”


동생은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슬그머니 간장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난 두 번은 말리지 않는다. 네가 짠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지. 마음대로 해.”


결국 동생은 간장을 마시더니 한 마디를 내뱉었다.

“짜.”

“그럼 간장이 짜지 달겠냐?”


 내가 태평하게 대답을 하니 동생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분명 말렸다. 왜 불만 있어?”


 이 말을 그랬더니 동생은 새삼 억울한 얼굴을 하며 따진다.

“한번 더 안 말리고”


 저 당당하고도 귀여운 동생의 뻔뻔함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리고 다음에 간장을 또 먹겠냐는 질문에 안 그러겠다는 대답까지 받아냈다. 오늘 유독 허를 찌르는 대화들이 오고 갔는데 쭉 적어 보자면 이런 내용들이었다.


나: “이 우파루파처럼 생긴 게“

동생: ”말 다했냐? “

나: (당황)“응?”

동생: “말 다했냐고”  


나: “요즘 말대꾸한다. 하면 돼 안돼? “

동생: ”돼 “

나: “왜”

동생: “만만하니깐”


나: “잠 와?”

동생: “어”

나: “피곤해?”

동생: “어 “

나: “왜?”

동생: “그런 거... 귀찮은 거 많이 해서”

나: “귀찮은 게 재활이야?”

동생: “어”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생: “양말 벗겨줘.”

나: “네가 왕이냐?”

동생: “아니.”

나: “그럼?”

동생: “왕자.”

나: (기대)“그럼 나는 공주야?”

동생: “아니. “

나: “왜.”

동생: “말이 돼? “


나: “우리 사자성어 형식으로 속담 맞추기 해볼래?”

동생:?

나: “콩콩팥팥”

동생: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나: “가고오고”

동생: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나:(진짜 놀람)“어떻게 알았어?”

동생: “네가 하는 게 뻔해.”

나: “똥개겨개”

동생: “없는 거 지어 낼래?”

나: “ 아니 진짜 있는 거라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억울하네.”


이 정도 대화 흐름이면 인지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동생이랑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말솜씨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표현이 명확해서 신기했다. 동생의 말문이 트인 순간부터 우리는 이렇게 장난을 치면서 노는 중이다. 아주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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