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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Dec 10.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71 - 장난스러운 주말

2023년 7월 22일 토요일


오늘은 평화로운 듯 아닌 듯한 주말이다. 재활을 하고 기껏 목욕을 다 시키고 나니 나를 맞이하는 건 동생의 응가였다. 정말 이럴 순 없다.


 목욕을 끝마치고 돌아오니 우리 자리에 옥수수와 두유가 놓여있다. 병실에 있다 보면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먹을 것들을 나눠주면서 음식이 끊임없이 생긴다. 그래서 살이 찌나 보다.


 평일보다 비교적 한가한 주말.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곳에서 저녁으로 먹을 찜닭을 포장해 병원으로 향했다. 동생에게 줄 찜닭은 잘게 잘라서 주다가 살짝 매콤하길래 더 먹이긴 불안해서 대패 삼겹살을 대신 줬더니 잘 먹는다.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이것저것 다 주고 싶은데 아직은 그럴 수가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렇게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연락이 왔다. 바로 동생의 여자친구였는데 오랜 고민을 끝으로 앞으로는 동생에게 자주 연락을 못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혹시나 동생이 나중에라도 자신을 찾는다면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동생에게 이별을 전달하려니 기분이 묘하다.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양쪽 모두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이야기해 주는 것 밖에 없었다.


  혹시나 동생이 상처받을까 봐 조심스레 전달을 해줬더니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아 보인다. 처음에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가 하더니 바로 납득하는 듯했다. 나는 동생에게 우리 둘은 올해 연애는 글러 먹었다며 탄식을 했다. 그러면서 연애와 결혼에 대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누나: “나는 34살에 결혼할 건데 너는 계획이 어떻게 돼?”

동생: ”38 “

누나: “그럼 자식은 몇 명? 언제 놓을 거야?”

동생: “38살. 둘째”

누나: “첫째는???”

동생: “계획이 없어”

누나: “(???) 둘째는 첫째가 있어야 가능한 건데 그럼 그게 계획 아닌가?”

동생: “그게 계획인가?”

누나: 그럼 부인은 뭐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동생: “금융업 “

누나: “혹시 전여친 말하는 거야?”

동생: “뭐래 “

누나: “너네 집 서랍장에 사진 있던데 거기 왜 넣어놨어? “

동생: “그건 서랍장 속 감성이야”

누나: “충전기 찾다가 쓸데없는 감성을 공유해 버렸네”


그리고 다음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누나: “밥 먹었지?”

동생: “안 먹었어”

누나: “그럼 네가 먹은 건 뭐야”

동생: “죽“

누나: “죽은 밥 아니야? “

동생: “아니야”

누나: “너 그럼 저녁 먹었어?”

동생: “어”

누나: “그럼 저녁밥 먹었네”

동생: “어 “

누나: “요즘 왜 거짓말 쳐? “

동생: “내가 그렇게 말 안 하면 안 주잖아”

누나: “뭘? 밥을?”

동생: “어”

누나: “야, 너 밥 먹었잖아”

동생: “안 먹었다고”

누나: “죽 먹었잖아”

동생: “어”

누나: “이 자식이 “


 이제는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니 사람 놀리는 말도 제법 할 줄 안다. 귀엽긴 한데 열받는 건 어쩔 수 없다. 일과를 마무리하며 동생을 재우기 위해 침대에 눕혀놓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한 마디를 던진다.


동생: “네 자리 가”

누나: “니??? 니라고 했냐??”

동생: “누나 자리 가”

누나: “너무해”


 그렇게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아직 잠이 들지 않은 동생에게 장난을 치려고 또 다가갔다.


누나: “나 또 왔어. 근데 나 집에 가고 싶은데 집으로 가면 안 될까?”

동생: “누나 헛소리하지 마”

 

 이제는 대화를 나누며 말이 되는 소린지 안 되는 소린지 파악도 잘하는 거 보니 인지가 점차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의사표현도 명확하게 하고 아주 대견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표현을 할 수 있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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