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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ug 26.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55 - 온기

2023년 7월 6일 목요일


 처음에는 힘겨웠던 6시 반 기상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아침마다 동생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것도 아무렇지 않다. 5개월 동안 하다 보니 힘들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행동부터 먼저 나온다. 모든 게 힘들다는 생각 없이 익숙해지고 있다.


 제일 다행인 건 동생이 밥을 먹을 때 반찬투정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맛을 알고 먹는지 모르고 먹는지 알 수는 없지만 주는 대로 잘 받아먹는다. 확실히 음식을 직접 씹고 삼키니깐 호전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긴 하다. 그래서인지 동생의 회복 속도에 따라 재활 프로그램도 변경될 예정이다. 아무래도 지금이 회복기라서 속도가 붙었을 때 빠르게 진행해야 했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일명 코끼리라고 불리는 전신자가운동이 추가되었다. 특별한 건 아니고 그냥 수동 자전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까지는 자동으로 돌리다가 어느 정도 다리에 근육이 붙었으니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된 것이다. 오전에 있던 경사침대가 하나 빠지고 코끼리가 추가됐는데 솔직히 시간이 애매하긴 했다. 경사 침대를 했던 시간에 코끼리를 진행하고 싶었지만 그 시간에 자리가 꽉 차서 대기를 걸어놓아야 했다.


 남은 선택지는 11시 40분에 하는 것밖에 없었는데 그 시간에 하자니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9시부터 11시 40분까지 재활을 하고 오전 재활이 끝나면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였다. 12시 5분이 되면 점심 배식을 했기에 밥을 먹이고 나면 쉴 틈도 없이 오후 재활을 하러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11시 40분에 재활을 하고 나면 12시 10분에 마치고 올라오는 시간과 기저귀를 가는 것을 고려하면 12시 25분 정도에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데 시간이 너무 촉박할 것 같아서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하다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그 시간에 재활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른다. 코끼리는 대기도 가득 차있어서 자리가 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문제는 그 기다림의 시간에는 기약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시간에 재활을 하던 환자들이 빠져야만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시간대가 애매해서 거절하려고 하니 동생이 걸렸다. 이제 막 회복 속도가 올랐을 때 열심히 재활을 받아야 하는데 내가 점심을 안 먹는 한이 있더라도 진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니 재활을 하나 얻은 대신 점심을 포기했다.


 많은 일들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동생의 밥을 챙기면서 같이 식사를 하는 건 무리였다.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서 제대로 먹기가 힘들뿐더러 동생을 챙기느라 밥 먹는 게 끊겨서 입맛이 없어졌다. 시간이 지나면 밥을 먹으면서 동생의 밥을 챙기는 것도 요령이 생기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걱정이 살짝 되긴 했지만 더 생각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지금은 나보다는 동생이 우선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쾌유를 빌고 호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함께 기뻐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우리를 챙겨주는 어른이 많았다. 수간호사 선생님은 오늘 동생과 약속한 바나나를 주고 가셨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동생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어보고 사다 준다. 말 그대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선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감사하다는 인사 밖에 없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병원에 있으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의 선의를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여기서 주변을 관찰해 보면 따뜻한 어른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 호의가 부담스러웠고 불편했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타인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까지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왔는지 반성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인 것 같다. 물론 참견과 관심은 다른 개념이니 그것을 분별하는 힘도 기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여전히 방황하면서 인생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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