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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ug 23.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54 - 숟가락질

2023년 7월 5일 수요일


 동생이 미음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오전에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식사 시간이 1시간에서 30분으로 단축되면서 재활을 가기 전에 여유롭게 준비할 시간이 있다. 동생의 아침밥을 다 먹이고 나니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골똘히 고민을 하며 동생에게 물었다.


“경오야, 나 어떻게 돈을 벌까? 20대에 1억을 어떻게 벌지.”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동생이 대답했다.

“유튜브”


 너무나도 현실적이면서 어이없는 답변에 웃음이 터졌다. 아무런 콘텐츠도 없이 무작정 유튜버를 시작하랴는 거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확신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번 고민을 해보겠다고 말하며 넘어갔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동생의 말이 많이 늘었다며 칭찬이 끊이질 않는데 말이 느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아마 나한테 우스갯소리를 자주 해서 그런 듯하다.


오늘의 날씨는 아침에 흐렸다가 오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맑아졌다. 오전에  재활을 가기 전 잠시 바깥공기를 쐬고 본격적인 산책은 오후에 한다. 그래서 하루에도 순식간에 변하는 날씨를 실감하게 된다. 이번에는 평소에 다니던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가보았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항상 어딘가에 쫓기 듯 바쁜 발걸음이 아니면 무기력해져서 느린 발걸음으로 거리를 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날씨를 마음껏 느끼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걷는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불안도 두려움도 없고 평온하다. 물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이 요동치기는 하지만 전보다는 훨씬 안정적으로 변했다.  

 

 동생이 눈에 띄게 변화를 보이는 모습도 마음이 편해지는 데에 한몫을 했다. 음식을 먹는 걸 보면 나아지고 있다는 게 보인다. 이제는 액체류도 꽤나 잘 마시는 것 같다. 물론 아직은 점도 증진제를 물에 타서 줘야 하기는 하지만 국물은 증진제를 타지 않고 조금씩 먹이는 연습을 시킨다. 밥을 먹고 나서는 마카롱과 카스테라를 후식으로 줬더니 역시나 잘 먹는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면 입에 음식이 있는데도 자꾸만 넣는다는 것이다. 한꺼번에 입에 넣고 급하게 먹지 말라고 타이르는데도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한번 습관으로 형성이 되면 고치기가 어려우니 처음부터 교육을 잘 시켜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밥 먹을 때는 웬만하면 직접 숟가락질을 하도록 시킨다. 항상 옆에 붙어서 손과 발이 되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하게끔 한다. 물론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하다. 질질 흘리기도 하고 먹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을 때도 있다. 점심에는 시간이 촉박해서 먹여줄 수밖에 없지만 비교적 다른 시간보다 여유로운 저녁에는 본인이 숟가락질을 하게 한다.


밥을 먹기 전에는 항상 비빔 간장과 참기름을 섞어주는데 오늘은 동생에게 시켜보았다. 그랬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숟가락에 잘 따른다. 이제는 먹을 때 흘리는 것도 점점 줄어들고 괜찮아지고 있다. 그러면 잘했다고 칭찬을 아낌없이 해준다.


 물론 게으름을 피우며 스스로 숟가락질을 안 할 때면 잔소리를 하게 된다. 할 수 없는 건 내가 대신해주겠지만 할 수 있는 것까지 대신해줄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밥을 떠먹여 주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본인이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남들의 속도에 맞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빠르거나 늦다고 불평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를 찾으려면 스스로 행동해야 한다. 아니면 평생을 남들의 속도에 따라서 살아가야 할 테니 말이다. 동생한테도 늘 이야기를 하는데 알아 들었을지는 모르겠다.


 동생의 밥을 다 먹이고 뒤늦게 저녁을 챙겨 먹었다. 햇반이랑 고등어를 먹고 있으니 동생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래서 먹고 싶은지 물어봤더니 고개를 젓는다. 현재 미음을 먹고 있는 동생에게도 거부당한 나의 저녁식사였다. 비주얼에 비해서 생각보다 맛있는 나의 말에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이다. 미음을 먹는 자에게 그런 동정을 받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는 동생의 머리를 깎이고 감겼다. 머리카락은 어찌나 잘 길던지 또 한 번 시원하게 밀었다. 동생은 짧게 깎는 걸 원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상황에 머리까지 길면 감담이 안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동생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깨끗하게 다 씻고 나서 침대에 앉혀 놓았더니 자꾸만 단추를 푼다. 왜 자꾸만 단추를 푸냐고 물어보니 별 다른 대답이 없다. 덥냐고 물어보니 그것도 아니란다. 그래서 자꾸만 볼 것도 없는 배를 왜 보여주냐고 장난을 쳤다.


“복근도 없으면서 왜 자꾸만 배를 보여주냐? 내 눈도 생각을 해줄래? 도대체 그 몸은 뭐냐?”


 이렇게 말했더니 돌아오는 동생의 한 마디

“나는 슬림”


 정말 말로 지지 않는 동생 덕분에 하루가 즐겁다. 대화를 할 때마다 어떤 답이 나올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재미있다. 특히나 말을 했을 때 상태가 멀쩡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말대꾸든 뭐든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것에 만족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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