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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ug 21.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53 - 소소한 순간

2023년 7월 4일 화요일


 동생이 미음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변에서 얼굴이 좋아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아침마다 회진을 도는 담당의도 동생을 보더니 표정이 밝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하곤란식을 해도 될지 걱정이 많았었는데 콧줄을 뺐던 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마치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음속에 있던 우려와는 다르게 동생은 이제 밥도 남김없이 싹싹 비워낸다. 후식으로는 마카롱까지 먹기도 한다. 솔직히 병원에서는 미음을 내어줘서 어쩔 수 없이 먹이긴 하지만 동생은 이미 후식으로 빵부터 음료수, 과자까지 가리지 않고 먹고 있었다. 동생이 초코파이를 먹다가 간호사에게 몇 번 걸려서 부스러기가 있는 음식은 먹이면 안 될 것 같다는 주의를 듣긴 했으나 평소에 잘 먹는 걸 봤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평소 동생을 예뻐하는 수간호사 선생님이 다가와서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다. 동생은 짧은 고민 끝에 바나나라고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수간호사 선생님은 시간이 될 때 바나나를 사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몇 분 후에 생각지도 못한 바나나가 생겼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간병인 아주머니가 바나나를 나눠준 것이다. 이렇듯 병원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굻어 죽을 일은 없을 정도로 먹을 것이 많이 생긴다.


 눈앞에 놓인 바나나를 바라보다가 동생에게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먹고 싶은 걸 말하기만 해도 이렇게 바로 먹을 수 있으니 언제든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였다. 매일 같이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보면 참치회라고 대답을 해서 난감하긴 하지만 말이다. 아직까지는 날음식을 먹는 건 무리라서 다른 걸 말해달라고 하면 먹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한다. 마음 같아서는 참치회를 먹이고 싶지만 당장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음식 이야기는 뒤로하고 동생한테 장난스럽게 3년 전 내 사진을 보여주며 어떻냐고 물었다.

“이거 24살에 찍은 증명사진인데 어때?”


 과연 동생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스물네 살...... 같아.....”


 너무나도 성의 없는 답변에 웃겨서 다시 한번 물었다.

“아니 뭐 예쁘다, 젊다 이런 것도 아니고 스물네 살 같다는 뭐야. 그냥 스물네 살처럼 생긴 거야?”

“어.”


 여기서 다시 한번 느끼지만 동생의 본래 성격과 인지에는 아무런 변화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저녁에는 동생과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통화를 했다. 간단하게 동생의 안부 인사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뭘 하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서로 나누며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있던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도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답답했던 감정이 조금이나마 환기가 되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나도 모르게 불안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이해해 주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다. 비록 병원에 있느라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주변에서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들이 나에게 도움을 주는 만큼 나 또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마음이 편안해지는 상대방과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몰라서 그런지 2시간 동안 떠들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런 시간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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