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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ug 14.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52 - 산책의 묘미

2023년 7월 3일 월요일


 오늘은 동생의 아침밥을 다 먹이고 나서 첫끼를 먹다 남은 치킨으로 시작했다. 사실 어제 간병인 아주머니께서 예전에 동생과 했던 약속을 지키겠다며 치킨을 사주셨다. 동생과 함께 먹으라고 사준 건데 내가 더 많이 먹은 것 같다. 아직까지는 음식을 잘 못 먹는 동생을 위해서 튀김옷을 벗겨내고 살코기를 으깨서 줬었는데 먹는 게 영 시원찮아서 많이 먹이 지를 못했다. 그렇게 남은 치킨은 내 것이 되었다.


 오후에는 산책을 꽤나 긴 시간동안 했다. 평소에 가던 길을 벗어나서 다른 길을 돌아다녀봤다. 갑갑한 병원에만 있다가 바깥을 나오니 상쾌했다. 온갖 잡념에 사로잡힐 때는 산책을 하면 도움이 된다. 주변을 살피면서 동생의 휠체어를 끌고 다녀야 했기에 그 순간만큼은 많은 생각들이 가라앉았다. 동생도 산책을 좋아한다. 어차피 자기는 편하게 앉아 있기만 하면 돼서 그런지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표정 또한 편안해 보인다. 그런 동생의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했다.


“산책하니깐 좋아?”

“어.”

“아니, 나는 힘든데 너는 좋아?”

“어. “

“혹시 나랑 바꿔 탈 생각은 없어?”

“안돼.”

“아니, 도대체 왜. 휠체어에는 내가 앉을 테니깐 네가 좀 끌어줘.”

“안돼.”

“왜 안돼? 왜 너만 타? 나도 좀 타자. 진짜 안돼?”

“안돼”


 이런 장난을 칠 때면 동생은 한심하다는 듯이 빤히 쳐다본다. 그 반응이 재밌어서 더 장난을 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다음 재활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열심히 휠체어를 끌다가 병원에 도착할 때쯤이 되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동생이 만족했으면 됐다. 물론 나한테도 마찬가지로 재밌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기특하게도 세끼 전부 남김없이  먹어서 싸울  없었다. 매번 밥시간마다 잔소리를 해야 돼서 힘들었는데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저녁에는 동생과 대화를 하면서 놀리는 낙으로 산다. 장난으로 계란을 머리에  봐도 되냐고 물었더니 가장 동생다운 반응이 나왔다.


“네 머리에 이 계란 깨도 돼?”

동생은 내 말을 듣더니 어이없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해봐.”


나는 예상을 빗겨나간 반응을 보고 황당해서 크게 웃었다. 표정이 마치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을 하는데 역시 성격은 변하지 않았구나를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계란으로 자신의 머리를 치고 도망가는 나를 붙잡아서 땅으로 내리꽂았을 수도 있다. 평소에 워낙 격한 장난을 많이 쳤던 터라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찍은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 사진에 있는 사람 누구야?”

“이유이”

“오 맞췄네. 그런데 뭐라고?”

“이유이”

“내가 이름 말고 어떻게 부르라고 했지?”

“누나.”

“그래.”


 앞으로는 누나라 부르기로 약속해 놓고 은근히 자꾸만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저렇게 다시 정정해 주면서 누나라고 부르도록 세뇌를 시키는 중이다. 거의 22년간 누나라고 부른 적이 없다가 그동안 못 들은 걸 여기서 다 듣는 듯하다. 평생 동안 불가능해 보였는데 세상을 살다 보니 동생한테 누나라는 말을 듣는 날도 오긴 한다.


 동생과 이야기를 끝내고 여자친구한테 영상통화를 걸었다. 물론 전화를 한들 말을 하지는 못한다. 그저 얼굴을 보며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다. 간혹 짧은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뿐이다. 그래도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답답하겠지만 곧 얼굴을 보며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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