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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Sep 26.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64 - 좌충우돌 합천 여행

2023년 7월 15일 토요일


 오늘은 합천으로 여행 가는 날이다. 이른 아침부터 눈을 뜨니 운전을 하기로 했던 친구 한 명이 호우주의보가 떴는데 빠지와 글램핑이 가능하냐고 물어왔다. 혹시나 싶어서 어제 숙소에 연락해서 근방에 산사태 위험이 없는지 확인 전화를 해봤는데 아무 이상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그래도 불안한지 강이 범람하고 있다며 빠지를 가는 건 위험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바깥 날씨를 보니 바람만 거세게 불고 있을 뿐 비는 내리지 않았다.


 우선 운영을 하는지 전화를 해보고 출발하자는 다른 친구들의 말에 운전을 하기로 했던 친구는 글램핑만 하려고 폭우를 뚫고 합천까지 가는 건 부담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새 차를 뽑은 지 얼마 안 돼서 적응이 안 됐다고 덧붙였다. 어제까지 아무 말도 안 하던 친구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짜증이 올라왔다. 평소에도 운전을 할 때 예민해지는 친구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어제 새 차가 긁혔으니 이 상태로는 여행을 못 가겠다는 뜻이었다.

 

 짧은 사이에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운전하기가 무서워서 그런 거면 내가 하겠다고 하니 친구는 몇 초간 말이 없더니 그러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알겠다고 말한 후에 전화를 끊고 준비를 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하게 지금 상태로는 운전을 못하겠다고 말했으면 당황은 하겠지만 짜증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친구가 안전을 운운하는 것은 운전하기 싫다는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평소에도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친구였으면 모르겠는데 다른 때에는 목숨이 두 개인 것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위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태도를 바꾸니 당연하게도 그 의도를 단박에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계획이 살짝 변경되었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또다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제 경찰서에 사고를 접수했더니 진술서를 쓰러 오라는 연락을 받아서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이었다. 나도 진술서를 써봤기에 얼마 안 걸린다는 것을 알아서 별대수롭지 않게 그럼 경찰서 잠시 들러서 쓰고 출발하면 되는 거냐고 물으니 친구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자신은 오후에 가려고 했다며 진술서를 쓸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것도 민폐일 것 같다면서 오늘 여행 가는 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순간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이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마치 데자뷔와 같은 기분이랄까. 이 장면을 꿈에서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감정의 동요 없이 무미건조하게 여러 대안을 제시했을 때 친구는 이미 여행을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기에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늘어놓았다. 계속 늘어만 가는 변명을 듣고 있자니 기분만 망치고 시간이 아까워서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 같으니 전화를 끊자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원래는 친구들의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3대로 이동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인원이 5명으로 축소되어 자동차 2대로 출발하기로 정했다. 어쩌다 보니 나까지 운전을 할 필요가 없어져서 친구 차를 타고 합천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변수에 불만은 있었지만 겨우 그런 걸로 기분을 망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하늘이 도왔는지 가는 내내 비가 소나기처럼 내리다가 그치다가를 반복했다. 심지어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햇볕까지 떴다.


 다른 차로 이동하는 친구들과는 휴게소에서 만나 계획을 다시 세웠다. 일단 빠지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 안 가는 걸로 하고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그런데 참 운이 좋게도 합천에 도착하니 하늘은 흐렸지만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첫끼로 선택한 양식도 맛이 상당히 좋아서 모두들 만족해했다. 우리는 글램핑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을 한다며 화기애애하게 점심을 먹고 나왔다, 갑자기 좋아진 날씨를 보고 혹시나 싶어서 워터파크에 연락을 해보니 운영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친구들은 우선 카페를 들렀다가 워터파크를 가보자고 했다. 합천의 어느 조그마한 시내를 걷다가 임대를 내놓은 인생 네 컷 부스를 발견하고는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작동이 너무나 느려서 고장이 난 줄만 알았던 기계는 힘겹게 여러 장의 사진을 뱉어냈고 우리는 이상하게 인화된 사진을 보면서 왜 임대를 내놓았는지 납득했다. 카페에 가서는 또다시 변동된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정해진 계획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여행이다. 그런데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행히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지라 계획이 틀어지면 틀어진 대로 놀았다.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는 게 카페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산을 놓고 왔다는 것이 기억났다.


 그런데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나만 우산을 놓고 온 것이 아니었다. 다른 친구도 우산을 놓고 왔다며 동생이 잃어버리면 죽는다는 협박을 뒤로하고 빌려온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도 바로 기억이 나서 천만다행이지 하마터면 우산과 친구를 둘 다 잃을 뻔했다. 우산을 무사히 되찾고 빠지로 향하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굵진 않아서 노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빠지에 도착하니 날씨가 흐려서 사람이 많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뒤엎어졌다. 이미 오전에 물놀이를 끝내고 나가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워터파크 안을 보니 사람들로 넘쳐났다. 전국적으로 호우주의보가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놀러 온 걸 보면 확실히 우리처럼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놀이기구는 3종을 선택할 수 있었고 워터 빌리지는 무제한으로 이용이 가능했다. 그런데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노는 것보다 기구를 타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친구들끼리 이럴 줄 알았다면 카페를 가지 않고 바로 왔을 거라면서 잠시 후회의 시간을 가졌지만 그래도 영업종료 전까지 인기가 많은 기구들로만 골라서 탈 수 있었다. 틈틈이 워터 빌리지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트램펄린에서 뛰어놀면서 오랜만에 활기차게 몸을 움직였다. 뮬론 오후에 도착해서 3시간 정도밖에 놀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말이다.  


 물놀이를 마치고 나서는 숙소로 바로 향했다. 워터파크 안에서는 물로만 씻는 게 가능하다고 해서 우선 숙소에 도착하자마 짐을 대충 놔두고 다 같이 샤워부터 했다. 그리고 바로 저녁을 먹기 위해서 바비큐에 필요한 재료를 가지러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더니 씻은 게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또다시 비에 젖어 버렸다. 우산을 써도 비를 피할 수가 없을 정도로 거세게 내리더니 저녁을 다 먹을 때쯤에는 또 비가 그쳤다.


 오늘 하루동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갑자기 비가 많이 내리는 바람에 친구의 슬리퍼가 벗겨졌는데 하필 조그마한 인공 연못에 빠져 버리는 바람에 기다란 막대기를 구해서 건져 내야 했고, 친구에게 장난을 친다고 화장실 옆에 숨어 있다가 놀라게 했는데 다른 사람이라서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친구들과 모여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면서 변수는 많았지만 그래도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면서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7명이 오기로 했던 여행이 갑자기 5명이 되고 전국이 호의주의보가 떴지만 날씨 운이 좋아서 수상레저와 글램핑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비록 우산을 잃어버릴 뻔하고, 놀이기구를 타다가 친구 하나가 날아가고, 잘못 골라온 보드카까지 모든 게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정말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 친구들이라며 서로 애정 어린 장난을 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여행의 밤을 무사히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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