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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Mar 04. 2024

서울역 그분

천사를 만나다



  인문계여고에 진학했지만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나니 할 일이 없어졌다.  진학반 친구들은 대입을 위해 혼혈을 기울일 때 나는 매일매일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연옥이는 학교에 라디오를 들고 다닌다.   무엇을 듣나 했더니 야구중계를 듣고 있었다.  그때는 프로야구는 출범하기 전이었고 고교야구가 한창 인기 있던 시절이었다.

연옥이가 멋있어 보였다.  

연옥이의 설명을 들으며 야구중계를 듣다 야구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야구사전을 찾아가며 야구용어들을 익히고 점점 야구의 매력에 빠져 야구시즌이 오기를 기다리는 야구 광팬이 되었다.  


라디오로만 야구중계를 듣다 현장에서 관전하고 싶다는 용감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사는 지방에서 서울로 가야 하는 과감한 생각인 데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서울에 가본 적이 없는 촌놈이었다.

혼자서는 자신이 없고 야구에 눈을 뜨게 해 준 연옥이에게 서울가서 현장에서 고교야구를 보자 했더니 갈 수없다고 다.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야구에는 관심이 없지만 친구들에게 서울구경 가자고 말했다.  호기심이 많은 미혜와 현희가 서울구경 가자는 말에 따라나섰다.  


우리 세 명은 용돈을 모아 치밀한 계획하에 고교야구를 보기 위해 처음 가 보는 서울,  동대문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때는 완행, 특급, 우등 열차가 있었다.  우리는 특급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동대문운동장에 도착했다.  

오전경기를 보고 점심도 먹고 오후경기까지 관람하고 서울역에 다시와서 돌아오면 된다.


현장에서 야구를 관람하니 라디오로 상상하며 듣던 거와는 정말 다르게 현실감이 느껴지고 현장에서 직접 보는 야구는 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내가 야구장에 앉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우리는 돌아갈 기차시간을 확인하고 운동장에서 나왔다.  

이때까지는 처음 간 서울에서 계획대로 목적을 잘 달성해 가고 있었다.  


우리 세 명은 동대문운동장에서 나와 서울역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한참을 가다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서울역에 내려야 하는데 서울역 반대방향의 버스를 탄 것이었다.  

아...  이를 어째...ㅠㅠ

성급히 내려 물어물어 길을 건너서 다시 버스를 갈아탔다.  우리가 타야 할 기차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부랴부랴 서울역으로 내 달렸지만 우리가 타야 할 기차는 이미 떠난 후였다.

이를 어쩐단 말인가!

우리가 타야 했던 그 기차는 특급기차로는 막차였다.

다음에 출발하는 우등기차가 있었지만 우리 수중에는 특급기차를 탈 돈만 쥐어져 있었다.


"완행기차도 있지!"

완행기차 시간표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완행기차는 찾을 길이 없다.

서울에 처음 온 촌놈이니 물어보는 수밖에...  슬슬 불안해지고 있다.

완행기차는 서울역이 아닌 용산역에서 출발한단다.

용산역에 가기 위해 서울역 밖으로 나왔다.

벌써 해는 뉘엿뉘엿 어두움이 몰려오고 있었다.  나의 마음에도 두려움이 몰려온다.


교복을 입은 명의 시골여고생이 서울역에서 헤매고 있다.  

서울에서는 젊은 여자를 술집이나 창녀촌에 판다는 소리를 어른들로부터 들어왔다.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교훈으로 서울괴담을 듣고 자란 세대라 우리 명은 쌀쌀해지는 날씨와 함께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용산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어디서 타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용산역으로 가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마침 지나가는 4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분에게 용산역 가는 길을 물었다.

이 분은 우리에게 되물었다.  이 시간에 왜 용산역에 가는지를...

우리는 완행기차를 타기 위해 용산역에 간다고 하니 이 시간에는 서울역에서 우등기차를 타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우등을 탈 돈은 없고 특급기차를 타야 하는데 막차를 놓쳐서 완행을 타려 한다고 말하며 콩당콩당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떨고 있었다.


그분의 눈에도 시골에서 온 여고생들이 낯선 서울에서 곤경에 처한 것이 보이나 보다.

돈이 얼마나 모자른지 물어보고는 선뜻 우등기차를 탈 수 있는 돈을 내주셨다.  

서울역에서 만난 분은 생면부지, 낯선 분이지만 그분의 호의를 사양할 수없었다.  부끄러움과 체면을 뒤로하고 그분이 주시는 돈을 받았다.  


"연락처를 주세요.  이 돈은 꼭 갚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안 돼요, 꼭 갚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다음에 학생들과 같은 사람을 만나면 도와주세요"

이렇게 말하고는 종종이 사라졌다.   


아~ 어째 이런 일이...


우리 세 명은 우등기차표를 사서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

어디서 인가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돕고 그분은 가버렸다.

45년 전의 일이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는 그분은 누구일까?

그때 그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서울역 그분, 천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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