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마음의 일이 아니라 몸의 일
이제 우리는 감정은 우리 몸 깊숙이 각인된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더는 감정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 ‘기분에 의한 것’, ‘뇌의 작용’ 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았을 때, 혹은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치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져도 실제로 우리 몸 전체에서 느끼고, 반응하고, 표현하는 복합적인 생리 현상인 것이지요.
감정은 장기에 저장되어 트라우마처럼 작용하기도 하지만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이 울렁거리고, 가슴이 답답해질 때, 거기에는 자율신경계가 활성화되며 우리 몸의 여러 기관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해요. 말하자면, 감정은 뇌와 몸을 이어주는 자율신경계의 언어이며, 이 자율신경계 또한 감정이라는 다리를 통해 두 세계를 오갑니다.
이번 회차에는 자율신경계가 감정과 어떻게 연결되어 작용 하는지 살펴 볼게요.
자율신경계는 말 그대로 ‘스스로 작동하는’ 신경 시스템입니다. 심장 박동, 호흡, 소화, 혈압처럼 우리가 평소 신경 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유지되는 생명 유지 기능을 관장해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작동하며, 몸을 각성시키거나 진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신경계가 감정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누군가 나를 위협하는 말을 했을 때,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심박수가 빨라지고 근육이 긴장합니다. 반대로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에 부교감신경이 작동하면서 몸이 이완되고 숨이 깊어지지요.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거예요.
자율신경계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우리의 감정을 말보다 먼저 감지하고, 몸으로 표현해요. 그래서 어떤 감정은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하는 것이지요.
‘그때 그 말이 너무 아팠다’는 기억은 단순히 머리로만 저장되지 않습니다. 몸도 기억해요. 몸은 그때의 긴장감, 위축, 서늘함, 억눌림을 고스란히 저장해두고 있다가, 유사한 상황이 오면 다시 반응하지요. 바로 자율신경계가 과거의 감정 패턴을 학습하고 몸에 새긴 결과입니다.
이러한 신경계 반응은 종종 반복적인 감정 반응을 만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늘 평가받는 환경에 있던 사람은 누군가가 질문만 해도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고, 마음이 불편해질 수 있어요. 이것은 단순한 ‘성격’이나 ‘기분 탓’이 아니라, 자율신경계가 감정의 기억을 재생시키는 방식이지요.
몸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우리가 외면하고 눌러왔던 감정일수록, 몸은 더 강하게, 더 선명하게 신호를 보냅니다. 그 신호를 무시하면 어느 순간 ‘몸이 먼저 아파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감정은 흘러야 해요. 기쁨, 분노, 슬픔, 두려움 같은 감정은 단순히 ‘통제’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것들이 안전하게 흘러가도록 돕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자율신경계의 조건이에요.
억눌린 감정은 결국 자율신경계를 과도하게 긴장시키고, 만성적인 교감신경 항진 상태를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불면, 위장 장애, 공황, 우울 같은 증상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반대로 감정이 안전하게 표현되고, 수용될 때 자율신경계는 균형을 회복하고, 부교감신경이 작동하여 몸을 안정시킵니다.
그래서 때로는 “괜찮아,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라는 말 한마디가, 약보다 더 강력한 치유제가 되기도 해요. 그 한마디는 자율신경계를 자극하여 몸을 이완시키고, 감정의 다리를 다시 놓아주는 연결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감정을 느끼고, 관계 속에서 반응합니다. 흥미롭게도 자율신경계는 단지 ‘나 혼자’ 있을 때보다,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해요.
예를 들어,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따뜻한 미소를 주고받을 때, 부교감신경이 작동하면서 심박이 안정되고 근육이 이완돼요. 이것은 ‘안전한 연결’을 인식한 신경계의 반응이지요. 반대로 비난, 무시, 냉소 같은 신호를 받으면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을 작동시켜 몸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관계의 질’은 곧 ‘신경계의 안정성’과 직결돼요. 신경계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만이 아니라, 타인의 신호에도 끊임없이 반응하며 감정의 다리를 놓습니다. 이 다리가 건강하려면, 나와 너 사이의 신뢰와 공감이 함께 놓여야 해요.
감정의 다리로서 자율신경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우리는 먼저 ‘몸의 감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른 채 살아가고 있어요. 아니, 감정을 ‘느낀다’기보다 ‘생각’으로 해석하지요.
하지만 감정은 머리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느끼는 것이에요.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박, 목구멍까지 차오른 울음, 조여 오는 가슴의 답답함. 그것이 바로 감정의 언어이고, 자율신경계가 보내는 신호예요.
이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듣는 것. 그게 자율신경계와 다시 연결되는 첫걸음입니다. 명상, 숨 고르기, 가벼운 운동, 감정 일기 쓰기 등은 신경계를 진정시키고 감정 흐름을 도와주는 좋은 실천이에요.
자율신경계는 우리가 감정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그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는 ‘내면의 다리’입니다. 이 다리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자극에 반응하는 존재에서,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고 품을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게 돼요.
그리고 그 자각의 끝에는,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고요함이 있습니다. 감정이 나를 압도하지 않고, 내가 감정을 흐르게 하며, 그 흐름 속에서 중심을 지킬 수 있는 상태. 그것이 바로 진짜 나와 연결된 몸의 상태예요.
자율신경계는 뇌와 몸 사이에 놓인 다리일 뿐 아니라, 감정과 의식 사이를 이어주는 교량이기도 합니다.
이 다리를 건널 때 우리는 비로소, 몸과 마음, 생각과 느낌이 하나가 되는 통합된 존재로 나아갈 수 있어요.
감정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몸의 언어이고 신경계의 반응이며, 우리 존재의 진실한 표현이에요.
자율신경계는 그 감정의 다리를 놓는 보이지 않는 조율자예요.
그 다리를 건너는 일은,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회복하는 여정의 시작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자율신경계는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당신의 감정을 품고 다리를 놓고 있어요.
이제는 그 다리를 따라 걸어가 보세요. 그 길 끝에는 분명, 당신 자신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