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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담 Jun 21. 2024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니 멋지다.

"종이 접기를 잘한다고 아주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유치원 하원 시간, 모래밭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아이 친구 엄마와 사담을 나누던 중이었다. 처음 만난 사이라 서먹하게 앉아 있다 먼저 말을 건넸더니 그가 예의상 해준 칭찬의 말이었다.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5살 때 유치원 적응이 좀 힘들었던 우리 아이는 다행히 선생님과 종이접기 하는 것에 재미를 붙이더니, 6살이 되자 본격적으로 팽이나 미니카 등을 접어 친구들한테 돌리곤 했다. 그 덕택에 다른 엄마들과 말을 틀 적에는 빠짐없이 종이 접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만들기에 확실히 소질이 있는 것 같다. 4살 때 다녔던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 스티커를 정말 잘 뜯고 잘 붙인다며 칭찬해 주었다. 그때는 이걸 칭찬이라고 해주는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스티커를 떼고 붙이일이 소근육을 잘 쓰는 반증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걷지도 못하는 초꼬마 시절에 온 집안 벽지를 다 뜯어 내 신경을 긁곤 했었다.

 

 관심을 갖고 면 아직 6살인 아이의 친구들이 서로 다른 소질을 가지고 있다. 발표회에 가서 보니 어떤 아이들은 벌써 뜀틀을 넘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고, 내 아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살랑살랑 예쁘게 춤을 추는 여자아이들도 있다. 그뿐만 아니고, 아이들이 옮기는 말을 들어보면 누구는 게다리춤을 그렇게 잘 추고, 누구는 그렇게 발표를 잘하고, 누구는 벌써 나눗셈을 한다고 한다. 폭풍같이 발달하고 있는 아이들의 재능이, 살짝 과장하자면 x맨의 초능력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자기만의 분야가 있다. 그 재능이 크든 아니면 미약하든 누구나 자신만의 분야, 혹은 영역이 있는 것이다. 나의 미약한 영역은 글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닥 공부머리가 있거나 눈에 띄는 구석 있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가끔 수업시간에 이름이 불린 드문 기억들은 모두 글쓰기에 관한 것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수업시간, 한창 문장 쓰기에 관한 것을 설명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ㅇㅇ가 이런 걸 잘해."라고 내 이름을 언급하며 일기 쓰는 실력을 칭찬한 적도 있고, 선생님 지명으로 반장, 부반장과 함께 글짓기 대회에 나간 적이 더러 있었다. 중학교 3학년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내가 쓴 독후감을 잘 쓴 본보기로 읽어준 일은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대충 내가 글에 소질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독서량이 많은 성실한 아이는 아니었던 데다 중고등학교 때는 일상이 너무 바쁘고 생각할 것이 많았다. 게다가 곧 입시라는 괴물이 아이들을 짓누를 참이었다. '작문'이라고 이름 붙여진 수업시간조차 수능에 출제되는 작품을 배우거나 언어영역 자습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차츰 더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글쓰기에 다시 관심을 가진  대학에 입학하고부터였다. 나 학교 다닐 때가 워낙 취업이나 스펙관리가 치열했던 때인 데다 진학한 학교가 여대라서 다들 학점관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나마 내가 잘했던 교과가 국어였기 때문에 국문학 전공과 교양강좌 2개를 최후의 보루처럼 신청했다.

 처음에는 수업 과제로 글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 매번 칭찬만 받았던 기억 때문에 대충 잘 썼겠지 생각하곤 과제를 제출했다. 이번 시간에 제출한 과제를 그다음 시간에 첨삭과 점수를 받아 다시 돌려받는 식이었는데, A나 B, 서명 과제 상단에 적혀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받은 평가가 서명인줄도 몰랐다. 분명 A인데 강사님이 글씨를 너무 흘려 쓰신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우등생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 그 친구가 악의 없이 알려준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건 A가 아니라 서명이라고. 자기도 저 번에 한 번 받았었다고. 이럴 수가. 나는 그럼 꾸준히 서명만 받은 것이다.

 어렸을 때는 어떻게 그렇게 좋은 말만 들었을까. 이 쯤되자 합리적인 의심이 생겼다. 예민한 시기 아이들을 위한 교육지침 같은 건 아니었을까. 뭐 하나 걸리는 것 같으면 작정하고 칭찬만 는. 성적을 잘 얻으려던 계획에 실패의 기운을 감지했다. 아직 점수도 안 나왔는데 그 예감은 더욱 선명해지더니, 정말로 두 과목 모두 C를 받았다.

 드디어 소질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 같은 배신감을 절감하며, '왜 하느님은 나한테 아무런 재능도 주지 않으신 걸까'하고 좌절했다. 나의 재주 없음은 당시 뿌리 깊었던 나의 우울감을 한결 부추다. 복수할 대상을 찾다가 극단적으로 다시는 글을 쓰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삐지는 방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삐지기로 작정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중학교, 고등학교가 지나면 끝나는 줄로만 알았던 사춘기라는 시기가 대학에 입학한다고 칼로 무 자르듯 깔끔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한 사춘기의 끝자락에서 미워할 껀덕지를 찾은 나는 그 대상을 혼자 죽도록 미워하게 되었다. 그것이 성공하여 여지껏 이런 종류의 에세이는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우리 아들은 갑자기 6살 때부터 발레가 하고 싶다고 난리였다. 남자아이가 발레라니? 남편은 결사 반대했지만 나는 못 하게 하는 것도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들의 소망을 지지했다. 그렇게 6살 때부터 아들은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루는 아들의 발레 수업시간 문틈으로 지켜본 적이 있다. 색색깔의 발레스커트를 입은 여자 아이들이 선생님 지시에 따라 춤추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그 와중에 결이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아이가 보였다. 검은색 발레복을 입은 그 아이는 포인트가 되는 동작은 쿨하게 무시하고 그냥 다른 아이들을 따라 하다 바닥에 철퍼덕철퍼덕 넘어졌다. 우리 애였다. 아무래도 아이의 적성이 발레 쪽은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수업시간에 산만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 다른 아이들한테 방해가 될 것 같고, 아이도 몇 번 더 가더니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결국 그 달로 발레는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7살이 되자 아이가 또 유치원에서 하는 발레 수업을 하겠단 것이었다. 수업료도 사적으로 듣는 것에 비해 훨씬 저렴했고, 아무래도 유치원이니 문화센터보다는 훨씬 더 관리가 될 것 같았다. 그래도 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은 여전히 들었다. 저 번에 그만둔 이력도 있고, 우리 아이는 운동신경이나 리듬감과는 거리가 먼 엄마와 아빠를 귀신같이 빼닮은 몸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졸라대었다. 하루는 육아 선배 우리 언니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 얘길 했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니 멋지다."


그랬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혼자만 좋아하는 일, 재능이 애초에 없는 일은 시작조차 하면 안 된다고 하는 모진 엄마에게 응원해 주라는 조언도 이어졌다.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는 것도 재능이라면서.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나중에 꼭 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데. 나는 어렸을 때 피아노 치는 걸 참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피아노학원을 다니던 친구들이 모두 판을 떠나고 나서도 나는 혼자 꿋꿋하게 과외까지 받으며 피아노 치는 걸 즐겼다. 내가 꾸준히 치는 걸 본 동네 아줌마 한 분은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쳐서 나중에 카페 같은 데서 아르바이트하면 되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르바이트는커녕 치는 방법도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그때 열심히 했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냥 좋아했고 내가 재미있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제야 고작 7살인 자식이 이쪽 길은 아닌 것 같다며 싹을 잘라버리려 는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아들에게 새로운 검색 토슈즈를 사주었다. 열심히 해보라고 응원도 마구마구 해주었다.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면 되는 거라고. 그리고 나는 혼자 짝사랑하던 글을 이제 열심히 써보려고 한다. 상대방이 나한테 마음을 주지 않아도 그게 뭐 대순가. 내가 좋아하는 게 중요한 거지. 피아노를 치면서는 재능이 있건 없건 관심 없이 순수하게 좋아했는데, 글 쓰는 것에는 왜 그렇게 겁을 먹은 건지 모르겠다. 거절할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닌 일에 왜 그렇게 스스로 평가하고 판단하고 마음을 접었던 걸까. 그만큼 내가 글쓰기를 사랑했던 것 같다.

 재미있게 즐기면서 글을 쓸 예정이다. 쓸데없이 겁먹지도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그래도 혹시나 거절당할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은 불안해지지만, 그럴 때의 방책도 야무지게 생각해 놓았다. 예전에 C를 받았던 수업에서 교수님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글쓰기는 3다라고 했던 것.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많이 공부한다. 그럼 무조건 실력이 늘게 되어 있다. 그때는 투정만 부리다가 포기했던 글쓰기에 지금은 끈질기게 매달려 보려고 한다. 그때는 못했던 사랑을 지금부터 열심히 아낌없이 퍼줄 것이다. 주 순수하고 꾸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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