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음사 <한편> 2호 '인플루언서'를 읽고 -
교복을 벗은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벤치에 앉아 일행을 기다리다가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던 현장을 우연히 지켜본 적이 있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무언가를 정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나는 태연 할래!'라며 역할을 선점했다. 다른 아이가 그럼 '나는 윤아!'라고 하자 또 다른 아이가 '키는 내가 더 큰데…'라며 조심스럽게 이의을 제기했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결국 한 아이가 유리를 맡는 걸로 원만하게 합의를 본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소녀시대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 장면이 왠지 모르게 인상에 남아 술자리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꺼내곤 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했던 역할 놀이라고는 가족놀이나 회사놀이, 아니면 이런 저런 만화의 주인공들을 자칭했던 것이 전부였는데 '실존인물'이 되는 놀이라니. 당시에 어느 조사 기관이 발표했던 초등학생 장래희망 순위 1위가 '연예인' 또는 '아이돌'이었던 것과 함께 시대가 많이 변했다 따위의 감상을 주고 받았다. 최근에는 아마 소녀시대의 자리를 유튜버 등의 크리에이터가 대신하고 있으리라. 실제로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초등학생들도 많이 있고, 그 중에는 이미 몇 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면 더 이상 놀이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될 수 있는 세상임을 새삼 깨닫는다.
연예인이든 아이돌이든 크리에이터든, 결국 이들은 어느샌가 일상에 자리잡은 단어인 '인플루언서'로 묶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선 아이들에게 '되고싶은 무언가'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그 뜻 그대로의 의미를 실감한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의 문화와 생활방식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주목을 얻게되는 과정은 물론, 어떤 영향을 누구에게 끼치고 있는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플루언서'의 범위는 한없이 넓어진다. 대신 정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때의 영향력이란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를 요구하고 있다.
사실 인플루언서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이전부터 존재해왔지만, 최근 등장하는 인플루언서들의 가장 큰 특징은 어느날 갑자기 큰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와든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이기에, 한번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하면 그 소식은 순식간에 일파만파다. 다만 이렇게 빠르게 주목이 모일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그 주목이 다른 곳으로 쉽게 옮겨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명의 인플루언서가 탄생했다는 것은 동시에 다른 한 명의 인플루언서가 퇴장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렇게 더이상 인플루언서가 아니게 된 이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보다는 얼만큼의 영향을 끼칠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조회수나 팔로워수 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향력을 손에 넣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면 지속가능한 인플루언서로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이들은 보다 높은 조회수, 보다 많은 팔로워수를 확보하기 위해서 행보를 이어나간다. 스스로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은 어느정도의 규모를 갖추고난 뒤로 미루기도 하고, 정작 그 조건을 충족하고 나서도 그것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현대 사회에서 인플루언서는 일종의 직업으로서도 기능하기 때문에, 수익 유지를 위한 선택이기도 한 이러한 경향은 결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인플루언서가 지닌 영향력의 내용이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누구나 납득할만한 합의점을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몇 인플루언서들이 시달리는 일종의 '자격논란'은 그들이 발휘하는 영향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영향을 '끼치는 자'와 '받는 자'사이의 괴리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플루언서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받고 있는 관심을 유지하면서 자신은 그럴 자격이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반대로 영향을 받는 이들 중 일부는 끊임없이 그들의 활동을 지적하고 행적을 들추어내며 인플루언서에게 답변을 요구한다. 이 미묘한 줄다리기의 결과는 주로 공허하게 끝이 나고 만다. 특정 인플루언서가 이 정도의 영향력을 가져도 되는가라는 질문은 어떤 사람이 인플루언서가 되어야 하는가란 물음으로 이어져야 마땅하지만, 일종의 심판이 이루어지고 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관심은 다시 다른 곳으로 쉽게 옮겨 가고 만다. 영향력에 대한 논란임에도, 그 과정은 끝끝내 사건으로서만 다루어질 뿐 별다른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영향력의 규모에만 집착하다보면 영향력의 유무에 관해서 간과하게 된다. 물론 대다수는 이른바 인플루언서'만큼'의 영향력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그들에 준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영향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알게모르게 영향을 받고 있듯이, 반대로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규모가 아닌 유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인플루언서라는 말이 지닌 조건은 누구나 충족하고 있다. '인플루언서'라는 단어의 실체가 모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듯 모두에게 해당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플루언서에게 요구되는 책임감이나 그에 대한 고민은 사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종종 잊어버리거나 자주 과소평가 하게 되지만, 모두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어떤 영향력을 어떻게, 어디까지 끼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결국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관점에 따라서는 한 개인이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란 굉장히 미미할 것이다. 그러나 그 미미한 축적이 큰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니는 영향력을 곰곰이 떠올릴 차례다.
2022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