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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Jan 03. 2024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났다 3

무라카미 하루키, <사랑하는 잠자>


3.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학습하지 않는 개인과 사회의 말로가 그 반대의 경우에 비해 얼마나 다른지 당신은 보았을  테다. 나 역시 사랑과 혁명에 무지했다. 인간의 삶이 논리적 과정을 따라 일직선으로 성장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저 내 일을 착실히 해 나가며 한층 커가고, 타인에게 호감을 살 만한 모습을 보이는 게 올바른 삶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은 인생이 다면적인 모순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인간은 선형적으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사랑을 나누며 사랑하지  않을 때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행동을 했고, 환상의 극치를 경험했다. 그러다가 상실을 경험하자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순백하고 정형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마음가짐은 사실 사회적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자 내 안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나 역시 진흙탕물이 되어 삶의 밑바닥까지 흘러 내려갈 수 있음을 자각했다. 결국 나의 학습되지 않은 마음이 이별을 불러왔다는 것을 깨닫자, 인생의 허무함마저 느꼈다. 사랑의 환상을 경험한 후에 그 이전의 삶은 무의미해졌다.


 그러나 삶이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고 그 속에서 허우적대며 한탄할 수만은 없다. 결핍과 상실을 느끼면서도 또다시 사랑을 토대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문학을 읽는다. 그 속에서 나를 둘러싼 사회 시스템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배우고, 사랑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그렇게 문학의 숙주가 되어간다. 작가가 생산한 바이러스가 내 안의 읽는다는 의식에 기생체로 밀려 들어오고, 의식 내부에서 바이러스의 영토화가 발생해 새로이 기호가 배치된다. 그  기호를 내 언어로 써내는 것이 의식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변이하는 방식이다. 이때 문학의 언어는 예민한 조건에서 활성화되는 바이러스와 같다. 온도와 습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문학의 언어는 활동을 멈춘다. 문학이 일깨우는 사랑과 혁명의 가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예민함을 유지해야 한다. 예민함은 나만의 깊은 사유에서 비롯되고, 깊은 사유는 문학을 읽고 쓰는 고독한 과정에서 시작된다.


 그럼에도 그대는 책을 읽지 않고, 삶을 배우지 않으려 하는가. 사랑과 혁명의 운명을 외면할 텐가. 이 세계는 당신의 학습을 기다리고 있다. 문학의 고독을 느끼는 순간, 그대는 벌레의 껍질을 탈피할 수 있다.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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