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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Jan 03. 2024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났다 2

무라카미 하루키, <사랑하는 잠자>


2. 사랑을 알고 난 후


 사실 두 사람의 사랑은 망해가는 세상 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작품의 배경인 1968년 체코 프라하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진행하는 시위대와 이를 진압하려는 소련군 사이의 유혈 충돌이 일어났다. 탱크가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질렀고, 수많은 사람이 반정부세력으로 몰려 잡혀갔다. 그 도시에서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잠자가 인간으로 변했을 때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방문은 잠겨있었다. 수리공 그녀는 소련군에 잡혀갈지도 모르는 아버지와 오빠들을 대신해 위험을 무릅쓰고 의뢰인 집으로 수리를 나왔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둘은 사랑의 싹을 나눴다. 굳게 닫힌 방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면서도 방문 자물쇠를 겁 없이 열어댔다. 무지한 남자와 소외된 여자는 서로의 결핍에 대해 질문하며 자물쇠로 상징되는 세상의 금기에 정면으로 맞섰다.


세계 자체가 이렇게 무너져 가는 판에 고장 난 자물쇠 같은 걸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또 착실히 고치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해 보면 참 이상야릇하다니까요. 하지만 뭐,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그런 게 정답일 수 있어요.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 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


 사회로부터 가해지는 금기의 양식에 마취되지 않고 그 환상의 실체를 맞닥뜨리는 것, 그게 사랑이다. 혼자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나의 없음이 다른 이의 없음과 만나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체험하게 될 때 애틋함이 생긴다. 그 애틋함은 스스로를 보듬는 도구가 된다. 결국 인간이 생존의 본능을 넘어 갈구하는 것은 인정과 관심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혁명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으로, 지배 세력의 교묘하고 교활한 언어를 분해하고 맞서 싸우는 것이다. 제도의 억압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한편으로 허무한 것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내면의 무지와 장애에 시달린 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랑을 나누고 혁명을 이뤄낼 때,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할 만한 사람을 미워하는 방법을 깨친다. 그제야 인간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1968년 이후 유럽대륙과 동북아시아의 서로 다른 역사는 사랑과 혁명의 학습 여부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른바 ‘68혁명’은 구시대의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체제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으로써 유럽 전역에 돌풍을 일으켰다. 프랑스에서는 영화감독과 철학자들이 그 선봉에 섰고,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주류를 이뤘으며, 영국에서는 브리티시 팝을 통해 개혁을 노래했다. 프라하의 봄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었다. 그 결과,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풍토는 지금까지도 유럽을 상징하는 특징이 되었다.


 반면 1970년대 이후 동북아시아 3국은 매우 다른 길을 걸어갔다. 이들은 사회체제를 변혁시키지 못하고 지배 기제에  순응했다. 한국에서는 4.19혁명으로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생각한 순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정권이 30여 년간 사회를 지배했다. 국가의 폭력은 대를 이어 대물림 되었고, 삶의 기저에 암암리에 자리 잡았다. 중국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끓어오르는 열기를 공산당 정부가 천안문 광장에서 탱크로 여지없이 밀어버렸다. 일당독재 체제는 빈틈없이 견고해졌고, 시민들의 입은 사방에서 틀어 막혔다. 일본에서는 역사를 망각한 보수 정권의 폭주에 진보 세력이 게릴라전을 펼치다가 전멸하였고, 전쟁 전의 역사와 영영 단절되었다. 이전 세대의 역사에 무지한 채 자라난 개인들은 비어버린 자아를 형성했고, 반성하지 않는 정권을 방관했다. 시민들의 꿈을 가로막으려는 세 국가에서 사랑이 다뤄지는 방식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유럽과 달리 폐쇄적이고 은밀했다.


*3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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