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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Jan 03. 2024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났다 1

무라카미 하루키, <사랑하는 잠자>


 사랑은 지극한 환상이다. 사랑을 한다는 건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이 실제가 아니라 환상이고, 그 환상이 어디까지 깨질 수 있는지 경험하는 행위이다. 인간이 철저하게 합리적인 존재라고 믿기 때문에 숫자와 통계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은 사치이자 비합리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모순과 결여로 가득 찬 인간의 삶을 깨닫지 못한 채 거짓된 욕망으로 포장한 이성적 사고에 잠식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랑하는 잠자』에서 사랑을 알기 전 인간은 벌레에 불과하다며 사랑과 혁명을 역설한다.


1. 사랑을 알기 전


 그레고르 잠자는 이제 막 벌레에서 인간이 되었다.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그는 인간의 생리를 몰랐다. 그저 의식주를 제공받고, 무엇보다 천적인 새들로부터 안전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자신의 처지와 생존에만 관심을 가질 줄 알던 잠자의 앞에 별안간 찾아온 열쇠 수리공 아가씨는 타인의 삶에도 눈을 뜨게 했다. 등과 허리가 굽고, 그로 인해 몸을 이따금씩 뒤틀 수밖에  없는 그녀는 여러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의 숨겨진 서사를 듣고자 하는 의지는 벌레로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내면으로부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의 변화를 느끼며 잠자는 물었다.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아주 많아요. 이 세계의 내력에 대해서, 당신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꼽추라는 이유로 수없이 괄시받던 그녀에게 잠자의 호기심은 낯설었다.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브래지어에 둘러싸인 자신의 가슴을 보며 퍽(fuck)을 생각하는 듯했지만, 이에 대한 자신의 추궁에 정중하게 사과했다. 결핍을 욕망으로 채우려 치근덕대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무지와 모자람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앞으로도 만날 수 있는지 묻는 남자에게 여자 또한 관심이 생겼다. 두 사람의 모습은 대조적이었으나 둘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일을 마치고 집을 떠나는 그녀에게 잠자는 “새들을 조심해요.”라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담백하지만 강렬하게 전달했다. 사랑이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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