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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Dec 24. 2023

불확실이 자아내는 레퀴엠(Requiem) 4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4. 불확실이 자아내는 레퀴엠     


 모든 세계는 갑자기 붕괴하는 경향이 있고, 인간은 그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하루키는 인생이 여러 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는 수십 년간 ‘너’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게 결국 사랑의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속에서 탈피하고자 마음먹는다. 힘들더라도 ‘너’가 없는 도시 벽 너머의 세계를 꿋꿋이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어떤 세계를 선택하든 자신의 결정과 의지를 믿을 때 스스로 빛난다는 걸 깨닫는다. 한편, 도시의 삶을 선택한 소년이 꿈 읽는 자가 되도록 돕는다. 소년이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다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고 나무라지 않는다. 고야스 씨가 자신과 소년에게 보여준 포용의 자세를 그대로 이어받는다. 소년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소년의 세계를 지켜봐 준다.

    

 위태롭게 방황하는 이들의 성장은 하루키 세계관이 보여주는 가장 궁극의 구원이다. 등장인물들은 선형의 궤적은 아니더라도 흔들리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 함께 삽입되는 비틀즈 음악과 재즈는 몽환적이면서 달콤하다. 살아있지만 여전히 죽어있는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으로 들린다. 그들이 깨어나길 바라지만, 깨어나지 않더라도 괜찮다며 보듬는 이 사랑의 노래는 슬프고도 아름답다. 나 역시 망해가는 세상 속에서 너무나 표류하기에 하루키가 연주하는 선율이 자줏빛 비가 되어 내 마음속에 내린다. 물어뜯긴 귓불은 조금씩 치유된다. 그러자 벽은 더 이상 두 세계(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파열음을 일으키는 금단의 구역이 아니다. 나에게 맞춰 언제든 변화해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불확실의 영역이 된다. 그 불확실함은 부정형이 아니라 긍정형으로 기능하여 나의 존재를 뿌리 깊이 붙들어 매는 빛으로 반짝인다.   

  

내 의식과 내 마음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었다. 내 마음은 어떤 때는 봄날의 들판에서 뛰노는 어린 토끼이고, 또 어떤 때는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가 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마음을 제어하지 못한다. 그렇다, 마음이란 붙잡기 힘들고, 붙잡기 힘든 것이 마음이다. / 나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망설임은 없다. 아마도. 나는 눈을 감고 몸속의 힘을 한데 모아, 단숨에 촛불을 불어껐다. 어둠이 내렸다. 무엇보다 깊고, 어디까지나 부드러운 어둠이었다. (754, 761쪽)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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