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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Jan 10. 2024

관종의 시대 1

짖지 않는 개 - 오에 겐자부로,『세븐틴』


 오늘날 세계는 관종(관심종자)의 시대이다. 타인의 목소리와 서사는 사라지고, 자신의 포장된 자아만 SNS상으로 진열된다. 다양한 이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오고 가지 않자, 그 사이에서 연대나 갈등이 줄어들며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만 울려 퍼진다. 그중 1960년대 일본의 우익 청년과 2020년대 한국의 일베 유저에서 비교, 관찰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상당히 유의미한 도움이 된다. 우리 사회와 청년들은 대체 얼마큼 타락하였나.     


1. 짖지 않는 개의 알레고리 – 역사의 단절     


 오에 겐자부로의 『세븐틴』에서 주인공은 1960년대 일본 우익 청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17살인 주인공은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 마땅한 나이였으나 주위 가족과 친구들은 그를 외면했다. 자신의 열등감과 약한 자아는 자위행위로 나타났다. 점차 심해진 수치심은 그를 보호해 줄 가면을 필요로 했고, 그 가면은 황도파의 일원이 됨으로써 제공되었다. 황도파는 일본 제국의 위대한 영광을 재건하기 위해서 천황 체제로 돌아가 구세대의 군국주의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극우적 입장을 강하게 주장했다. 영광을 재현하는 데 있어 좌익 세력들은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에 불과했고, 기존 우익 세력들은 출세에만 목말라 도움이 되지 않는 기회주의 세력이었다. 이들은 척결의 대상이었다. 주인공은 마초적인 우익 청년으로 변신해 황도파의 주요 인사로 활약했고, 전과 달리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심지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열일곱은 마땅히 가족 모두의 이해와 사랑 속에서 성장하며 변화해 가야 하는 시기였으나 누구 하나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나는 이제 더 이상 타인들의 현실 세계에서 선의를 찾아내기 위해 매달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 현실 세계에 대하여, 타인들에 대하여 적의와 증오를 새롭게 다졌다. / 자신을 견고한 갑옷으로 감싸 타인의 시선을 영구히 차단해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우익’이라는 갑옷이다!     


 극우 투사가 된 그는 짖지 않는 사냥개였다(오에 겐자부로의 『기묘한 아르바이트』 참고). 일본 제국이 자행한 폭력과 억압의 역사는 철저히 망각한 채 그 시절의 영광만이 맹목적으로 숭상되어야 했다. 그의 조국은 그저 아깝게 전쟁에서 패한 피해자였다. 이에 대한 논리 정연한 주장과 근거는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나약한 자아를 감추고,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필요한 건 ‘소량의 황금 지혜’와 그것의 신념화였다. 그는 어디로 향해 짖어야 할지, 무엇을 진정으로 지켜야 하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한 채 일본 제국의 빛바랜 영광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타락한 세상에 맞선 그의 저항은 가장 타락한 방식으로 발현되었다. 짖지 않는 사냥개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소년은 자신이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슬픔과 피로에 젖은 학생들이 비를 쫄딱 맞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묵도하는 동안 나는 강간자의 오르가슴을 느끼며 황금의 환영에게 전원 학살을 맹세하는 너무나 행복한 유일한 세븐틴이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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