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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Oct 23. 2022

모든 세계는 갑자기 생겨나기도, 없어지기도 한다

문래동에서 피어난 나의 20대, 그리고...


 공간의 표정은 그 공간 안에 깃들어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꾸고는 한다. 서울 문래동의 포근한 정취는 나의 표정이 공간과 닮아가도록 변화시켰다. 그런데 그 뒤에는 씁쓸한 사실이 서려있었다...


 문래동은 안양천과 도림천을 낀 채 구로구, 양천구와 맞닿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의 한 동네이다. 2호선 문래역, 도림천역, 그리고 신도림역 등있어 교통 접근성이 좋다. 천변에서 휴식이나 여가를 보내기 좋고, 다른 생활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특히 문래 창작촌이라는 곳은 옛 철공소 단지에서 예술인들이 다양한 예술작품을 선보이고, 그 주변에는 맛집들이 즐비해 즐길 거리가 다채롭다. 그래서 그런지 주거 단지가 많이 조성되어 있어 문래동을 걷다 보면 ‘아담하고 살기 좋은 동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2019년

 4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문래역에 처음 내렸다. 용인 산골짜기의 재수 기숙학원에서 정기 휴가를 받아 나왔다. 원래는 고향인 전주로 갔을 터이지만 문래동에 형이 있기도 하고, 서울 구경도 하고 싶어 2박 3일 짧은 휴가를 서울에서 보내게 되었다. 문래동에 대한 첫인상은 ‘영등포구답지 않다’였다. 영등포구라면 무언가 거대한 빌딩이 즐비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문래동은 막상 와보니 엄청나게 발달하지도, 그렇다고 낙후되어있지도 않은 적당히 좋은 동네였다. 동네 구경을 하다가 안양천에 다다랐을 때 이 공간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드넓은 품을 가진 안양천은 입시 스트레스로 잔뜩 지쳐 있던 내 마음을 한 번에 안아주었고, 다양하고도 향기로운 꽃들은 잘 정비된 채 나를 반겼다. 용인 산골에서 정적인 풍경과 지쳐 있는 사람들을 매일 똑같이 보다가 문래동의 동적이고 다채로운 광경을 접하자 내게 새로운 세계가 갑자기 생겨난 듯했다. 하염없이 걸으며 ‘이곳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다.


 #2020년

 3월, 부모님 차를 타고 전주에서 문래동으로 짐을 옮겼다. 가까스로 대학교 정시전형에 합격한 참이었다. 마침내 문래동에서 나의 새로운 세계를 온전하게 시작하였다. 그 합격증 하나로 대학 생활이라는 세계가 갑자기 생겨난 것이었다. 문래동에서 피어난 20대의 행복은 나의 표정을 문래동의 그것처럼 포근하고 완연한 미소를 띠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세계가 영속되지는 않았다. 문래동과 학교를 오가며 전개될 줄 알았던 대학 생활은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를 만나 허무하게 무너졌다.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모든 생활이 온라인 플랫폼 상에서 이뤄지며 대학 생활의 세계는 가까스로 유지되었다. 물론 재수하며 기대했던 바는 결코 아니었다. 참 많이 실망했다.


 #그리고...

 그러다가 우연찮게 문래동에 관한 기사를 하나 보게 되었다. ‘씁쓸한 핫플레이스, 문래 창작촌’. 기사는 문래동의 젠트리피케이션 조짐에 관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문래동은 원래 철강산업이 발달한 공업단지였는데 1990년대부터 산업적 구조 변화로 하락세를 타 동네가 쇠퇴하고 있었다. 그러던 문래동에 2000년대 초부터 홍대나 대학로 등지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유입, 정착하여 철공소 장인과 자유로운 창작가의 터가 공존하는 문래 창작촌을 형성하였다. 그 결과, 문래동의 명성이 다시금 높아지고 활력이 되살아났다. 안타까운 것은 그와 비례해 임대료 등 지가가 상승했다는 점이었다. 결국, 상승하는 지가를 견디지 못해 문래동의 가난한 원주민들과 몇몇 예술인들이 동네를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대는 그러한 현실을 가속시켰다.

 나는 운이 좋아 이곳에서 거주하며 온라인으로나마 나의 세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주위에는 타인의 눈물 젖은 땀이 서려있었다. 그네들의 세계는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되어 버렸다. 아무리 모든 세계가 갑자기 붕괴되는 경향이 있다지만, 이러한 현실을 막상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테였다. 기사를 접하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과 같이 소외된 이들의 고통받는 얼굴을 제대로 떠올리고 있는 건가. 그들 앞에서 내가 코로나 시대에 대해 불평불만을 쏟아낼 수 있는 건가. 답을 쉽사리 내지 못하는 와중에 어느 칼럼에서 본 문장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이제껏 언택트해왔던 인간 소외의 현장에, 이제껏 서로의 삶을 알지 못했던 타인의 삶에 ‘콘택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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