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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일근 May 18. 2022

딸을 위하여

가장 가까운 소비자,  가족


그날 밤 아빠가 IT사업부장이 되었다고 하니 대학교 다니는 딸이 LG 노트북은 너무 무겁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제발 가벼운 노트북 좀 만들어 달라고 아내까지 가세했다.  딸은 일원동 집에서 학교가 있는 신촌까지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통학해야 했는데 무거운 LG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것이 죽을 맛인 것 같았다. 대학생들은 PC로 수업과 과제를 수행하기 때문에 노트북은 필수품이다.  매일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특히 여학생들에게는 성능보다 무게가 중요했다.


당시 PC제조업체들은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다.  애플조차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대부분의 회사가 성능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이제 와서 보면 경량화는 휴대용 PC인 노트북에게 소비자가 바라는 당연한 요구사항인데 그 당시엔 무게의 중요성이 뒤로 밀려나 있었다.  답은 간단한 곳에 있었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소비자의 욕구는 언제나 단순하고 알기 쉬운 것인데 기업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라고 부르짖지만 고객의 요구를 많이 놓치곤 한다.


딸을 위하는 마음 - 그램의 시작


그날 저녁 나는 딸을 위한 가벼운 노트북을 만들어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램이 내 머리 속에서 태동한 순간이다.  그램이 성공한 뒤 딸과 아내는 그램은 자기들이 만든 제품이라고 농담처럼 얘기하곤 한다.  그날 이후 노트북의 무게를 줄이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회의실 테이블 위에는 항상 전자저울이 놓여있을 정도였다.


2012년 스타벅스 등 카페에 가보면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애플과 삼성의 노트북을 펴 놓고 있었다.  LG노트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같은 이동단말기는 브랜드를 알리기에 매우 좋은 제품이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비전 있는 회사라 할 수 있다.  LG가 TV와 가전에선 잘나가고 있었지만 이런 대형가전은 집에서 붙박이로 사용되기 때문에 브랜드 인지도 향상 면에선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당시 대학생들은 애플과 삼성을 선호했다.  두 브랜드가 너무 공고해서 LG가 들어갈 자리 란 없었다.  스타벅스 매장에는 늘 애플 노트북이 있었고,  예쁘고 세련되게 라이팅 된 사과 로고는 브랜드 홍보를 극대화시켰다.  그야말로 여기도 애플, 저기도 애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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