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한일 우호의 상징, 이수현의 이야기가 난 기사를 읽고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24년 전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퇴근길 플랫폼이 붐비던 그날, 일본인 취객이 선로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열차가 빠르게 다가오는 위급한 상황에서 두 남자가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한 사람은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27), 다른 한 사람은 일본인 세키네 시로. 그들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열차는 멈추지 못했고, 세 사람 모두 생을 마감했다.
아들의 주검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간 이수현의 어머니, 신윤찬(75) 씨는 첫마디로 “우리 수현이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충격으로 훼손된 얼굴을 확인하는 것은 차마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일본 사람들 또한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죄송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윤찬 씨와 남편 이성대 씨는 이듬해 아들의 이름으로 1억 원을 일본 사회에 기부하며 “일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는 뜻을 전했다. 적대감으로 얼룩진 한일 관계 속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인들의 자발적인 기부가 이어졌고, ‘LSH아시아장학회’가 설립되었다. 23년이 지난 지금까지 장학회는 한국과 동남아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아들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말, 신윤찬 씨는 일본 정부로부터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훈장 ‘욱 일쌍광장’을 받았다. 생전 남편 또한 같은 훈장을 받은 바 있어 부부가 동일한 공로로 각각 훈장을 받은 사례로 기록됐다.
“수현이는 단순히 우리 아들이 아니고 이제는 한일 우호의 상징입니다. 이런 비극은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수현이처럼 두 나라를 잇는 ‘다리’가 계속되길 희망합니다.” 신 씨는 슬픔 속에서도 아들이 꿈꿨던 한일 간 화합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사고 당시 신오쿠보역에서 시작된 일본인들의 위로는 계속 이어졌다. 한 일본인은 ‘すまん(스만)’이라는 글귀를 새긴 목각 공예품을 보내며 미안함을 전했고, 수많은 일본인이 눈물을 흘리며 “왜 한국인이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느냐”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신 씨는 이들의 진심 어린 위로를 받아들이며 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길 바랐다.
매년 1월 26일, 신 씨는 일본 신오쿠보역을 찾아 추모 행사를 이어간다. 그의 거실에는 일본인들이 보내준 편지 수천 통, 관련 기사와 책, 장식품 등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한 일본인이 선물한 장식품에는 “あなたを忘れない(너를 잊지 않을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아들의 희생을 넘어선 사랑과 헌신은 오늘날까지 한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의 비극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국경을 넘어선 우정과 화합의 상징이 된 지금, 우리는 이수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센노카제(千の風·천의 바람)’라는 시를 읽으며,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저는 빛이 되어서, 새가 되어서/ 당신 창가에 있어요.’
수헌 군 어머니 존경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