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도상에 관하여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말이다.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가 매끄럽게 돌아가려면,
우리는 서로의 살을 깎아내서라도 둥글둥글해져야 한다고들 한다.
그래야 부딪쳐도 상처가 나지 않고,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갈 수 있다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의 뭇매를 맞고 세월에 깎여도
도무지 둥글어지지 않는 내 안의 어떤 구석.
그것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지문이자 정체성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둥글지 않고는 이 사회의 바람직한 구성원이 되기 힘든 걸까?
문득 우리를 기찻길 선로 안에 깔린 무수한 자갈들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매끄러운 보도블록 대신, 기찻길 옆에 깔린 거친 자갈들 말이다.
철도 용어로 '자갈도상(Ballast)'이라 불리는 이 돌들은 하나같이 모가 나 있다.
예쁜 조약돌은커녕, 누군가 일부러 망가뜨려 놓은 것처럼 날카로운 모서리를 품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철길의 안전을 책임지는 건 매끄러운 돌이 아니라 바로 이 '모난 돌'들이라는 점이다.
철길 위로 수백 톤의 열차가 지나갈 때, 이 자갈들은 서로의 모난 모서리를 악착같이 맞물린다.
매끄러운 돌이었다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졌겠지만,
상처 입은 것처럼 날카로운 그 면들이 서로의 빈틈에 끼어들면서
거대한 진동을 흡수하는 하나의 단단한 지지대가 된다.
서로의 모서리로 서로를 붙드는 것.
그것이 자갈도상이 탈선을 막는 방식이다.
요즘은 먼지가 나지 않고 관리가 편하다는 이유로 매끈한 '콘크리트 도상'이 늘어가고 있다.
효율과 속도만이 중요한 세상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콘크리트가 정답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콘크리트는 너무 완고해서 지반이 조금만 흔들려도 스스로 깨져버린다.
유연함이 없는 강함은 예상치 못한 균열에 무너지고 마는 법이니까.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해간다.
선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꺾이고,
삶의 무게는 때로 콘크리트조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겁게 우리를 짓누른다.
그런 무분별한 변화의 속도 앞에서,
매끈하게 잘 닦인 효율만으로는 우리 삶을 지탱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각자가 다르게 망가져 모난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둥글어지려 애쓰지만,
사실 우리가 타인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은
깎여나간 자리가 아니라 여전히 남아 있는 '나만의 모서리'에서 나온다.
세상이 빠르게 선로를 바꾸고 삶이 요동칠 때,
우리가 탈선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건
각자의 상처로 삐죽해진 그 모서리들이
서로의 틈새에 절박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문명의 발전은 내가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불편함을
도무지 참을 수 없었던 사람들의 발명으로 이뤄진다.
내겐 사소했던 불편을 참지 못할 만큼 괴롭게 느꼈던 '모난 돌'이
결국 세상의 편리를 부양한다.
세상의 갖가지 편리는
참을 수 없는 분야가 각각 달랐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니 더 나은 세상이란, 반드시 서로 다른 모난 돌들이 필요하다.
나는 모난 돌이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당신들의 모난 구석에 내 모난 모서리를 끼워 넣어
이 가파른 생의 무게를 함께 견뎌낼 단 하나의 자갈이 될 것이다.
우리가 다르게 망가졌기에,
우리는 비로소 서로에게 완벽하게 고정될 수 있다고 믿으며.
오늘도 거친 삶의 궤도 위에서 서성이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억지로 둥글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당신의 그 모난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오늘을 버티게 할 가장 단단한 밸러스트가 될 것이므로.
모난 돌 화이팅!
못난 돌도 못 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