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시간에도 밖은 어둠이 깊게 내려앉아 있다. 온전한 겨울 한가운데 있는 것만 같다. 남편 아침밥을 챙겨주려면 지금 일어나야 하는데, 뺨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에 애꿎은 이불만 끌어당긴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핸드폰 알람 시간을 5분 뒤로 미루고, 다시 잠을 청해 본다. 출근하려는 남편을 붙잡아 간신히 우유 한잔을 건넸다. 이불 밖으로 한 걸음 나가는 것도 귀찮아하는 나약한 마음과 종일 밖에서 일하는 남편에 대해 미안함을 추운 날씨 탓으로 돌려본다.
날씨 핑계로 집에서만 지내다, 남편 회사 후배의 제안으로 청송에 있는 소류지로 빙어낚시를 하러 가게 되었다. 소류지는 경작지에 공급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작은 저수시설이다. 춥지는 않을까? 얼음은 깨지지 않을까? 그래도 한번 가볼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나와는 달리, 우리 빙어낚시 갈까?라는 내 말에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나 연신 게다리 춤을 춘다. 처음 해보는 얼음낚시에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실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기에 두려움이 더 컸다.
빙어낚시 장소인 소류지로 향하는 언덕에 눈이 조금 쌓여있었다. 희끗희끗한 흰머리 같은 눈이지만, 1년 만에 보는 눈에 나도 아이들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가파른 언덕을 10여 분 걸어 올라가니,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와는 달리 소류지 위에는 아직 눈이 빼곡히 덮여 있었다. 도시에서는 눈이 와도 금방 녹아 없어지거나, 그 본연의 색이 금세 바래는데 아무도 다니지 않는 소류지에 내린 눈은 케이크 위에 얹힌 생크림처럼 매끄럽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발자국 없는 눈 덮인 얼음 위로 뛰어들었다. 그 덕에 나도 얼음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할 틈도 없이 소류지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생각할 틈이 없으니, 움직임이 평소보다 가벼웠다. 평소 생각이 많아 놓치는 일들이 많았다. 걱정이 많은 나는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큰 둘째 아이 따라다니는 일이 힘에 부친다. 어떤 일이든 오래 고민할수록 해낼 수 있다는 희망보다는 실패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더 커졌던 것 같다.
23살 4년째 다니던 대학교 졸업을 1학기 남기고 계획에도 없던 휴학을 했다. 학과 공부만 열심히 하면 취업도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졸업하고 나서도 백수라는 꼬리표가 붙을까 두려웠고, 어려운 형편에 대학교까지 보내주신 부모님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휴학하고서는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남들이 다하는 영어를 공부했고, 영어 공부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공시생이 되었다. 운이 좋게도 첫 시험에 덜컥 합격하게 되었다. 7급 공무원을 목표로 공부했었는데,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에 미련이 남지 않았다. 그 해 예정되어있었던 7급 공무원 채용 시험은 보러 가지 않았다. 그 일은 내게 후회로 남아있는 일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다. 공무원 시험 합격은 남들보다 빨랐지만, 7급 승진까지 10여 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1년 동안 했었지만, 그 기간을 고려하더라도 남들보다 진급이 훨씬 늦은 편이었다. 안정감이 주는 편안함에 취해있었기에 도전이 줄 수 있는 나아감도 가질 수 없었다. 7급 공무원 채용 시험을 쳤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반드시 합격했을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지금처럼 인생의 후회로 남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지 못한 한 걸음의 뜻을 10년이란 세월로 사무치게 알게 되었다.
문득 요즘 나가고 있는 독서회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선생님은 운전면허가 있지만, 운전은 못 한다고 했다.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고 남편과 도로 연수할 때 자동차 사고가 크게 났고,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자동차를 폐차했다고 했다. 그 사고로 운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운전이 무섭다고 말했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 두려워만 하지 말고 다시 시도해 봤더라면 어땠을까?라는 후회를 버스 탈 때 마다한다는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시도하지 않았던 일들은 실패했던 일들보다 더 큰 후회로 남는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러나 글은 내가 쓰고 싶다고 저절로 쓰이지는 않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만 품고 살아오다 책방 바이 허니 밴드에서 글쓰기 교실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게 되었다. 글을 써보지도 않은 내가 글쓰기 교실에 등록했다 망신만 당하는 게 아닐까 두려웠고, 이제껏 하지 않은 일을 새롭게 시작하려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냉철한 이성과는 달리 가슴속에 계속 맴돌았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주저 없이 도전해야 후회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10년이란 세월로 깨달았기에, 이번에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초보자도 가능하다는 말에, 수강 신청 댓글로 글쓰기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한 걸음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는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걸어질 것이다. 그때 글쓰기 강의를 신청하지 않았더라면 인생의 두 번째 후회로 남을 만큼 지금 글쓰기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평온함이 주는 안정감에 취해 도전하는 것을 꺼렸다.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며 도전하지 않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40년을 살아오며 평온한 안정감은 여러 후회를 남겼고, 그 후회들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일은 망설이지 말고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져다줬다.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망설이지 말고 해야 한다.
남편 후배가 아이들과 내게 손수 굼벵이 미끼를 끼운 낚싯대를 건네준다. 낚시를 좋아해 망설임이 없는 큰아이와는 달리 낚시 경험이 없는 여덟 살 둘째는 눈썰매가 더 재밌다며, 낚시는 하지 않는다. 벌써 둘째 아이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아는 게 아닐까라는 걱정에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진다. 큰아이가 몇 마리 잡아 올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둘째 아이도 해보고 싶다며 삼촌에게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말한다. 잠시 후 딸아이도 눈먼 빙어 몇 마리를 건져 올리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빙어낚시를 해보지 않았더라면 느껴보지 못했을 즐거움이었다.
눈이 소복 쌓인 소류지 위 작은 텐트 안은 따뜻한 웃음이 넘쳐난다. 망설였지만, 오길 잘했다. 무지의 세계였던 빙어낚시가 앎으로, 또 다른 시작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