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동여맨 편지
나는 필름사진을 "어제를 동여맨 편지"라고 생각한다. 찍어 두고 잊은 듯 살다 때가 되어 현상하게 되면 그 당시 셔터를 눌렀던 장면의 감동이 나에게 다시 전해져 오면서 잊고 살던 좋았던 순간이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온다.
"묘지" "납골당" "추모공원"
기념적인 추모공간이 아닌 일반 사람들의 묘지가 관광지가 되고, 추모 이외의 목적을 가진 방문객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난 홋카이도 여행 시 그 공간을 나의 방문 리스트에 맨 처음으로 넣었고, 소중한 필름사진 롤 중에서 7장 이상을 기꺼이 할애하였다.
이곳은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 [안도다다오]가 설계한 [부처의 정원]이다.
부처의 정원은 관광객으로는 꼭 방문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방문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도시에서도 한시간 남짓 떨어져 있고, 대중교통도 여의치 않으며, 운전을 하더라도 산속으로 굽이굽이 들어가야 하는데, 거기에 추모공원에 도착하더라도 그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 불상을 찾아 상당히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성가심을 뚫고 방문하여 현실과 하늘이 모호한 느낌을 받는 공간에서 생과 사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정신이 맑아지는 경험을 하고나면, 수고스럽게 방문했다는 사실은 가볍게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라벤더가 맞이하는 직선으로 곧게 뻗은 매끄러운 길을 걷는다. 야트막한 언덕 위로 빼꼼 드러낸 부처의 머리를 등대삼아 가는 이 여정에는 망설임이 있을 수 없다. 방향을 틀 필요도 없이, 오로지 한 지점만을 바라보고 가는 경험은 정말 오랜만에 하게 된 것 같다.
걸으며 잡생각이 사라지는, 공간에 대한 사유가 깊어지는 길이다.
쭉 뻗은 길을 따라 하늘을 담은 수공간에 다다르면 사람이 가는 길은 양쪽으로 나뉘고 직선의 길 끝에 연결된 것은 물위에 떠 있는 꽃이 연결하는 시각적 길이다. 살아있는 이는 더이상 이 직선의 올곧은 방향으로 부처를 향해 다가갈 수 없다. 무게를 가진 살아있는 이는 갈 수 없는, 무게가 없는 것만이 지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중간의 하늘을 담은 수공간의 가장자리를 돌아서 부처가 있는 공간으로 연결되는데, 수공간을 반바퀴 돌며 기존의 내가 걸어오던 길, 존재하던 세계에서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긴 터널을 지나면 우리를 바라보지 않던 부처님은 어느새 우리를 내려다 보고 맞이한다.
멀리서 봤을 땐 언덕에 뭍혀 있었지만 다가가서 보면 보면 땅에서 솟아나 있었다.
부드러운 라벤더 언덕 사이에 숨어있었는데 가까이 가면 어느새 웅장한 모습을 하며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멀리서 부처를 발견하면서부터 가까이 접근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 곳은 추모의 마음을 가지고 방문하는 이들의 마음을 전 공간의 시퀀스에 걸쳐 어루만져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을 바라보는 공간에서 나와 이제 보랏빛 라벤더가 한창 피어나고 있는 "부처의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은 따로 표를 구매하면 안내해 주시는 분께서 들어갈 수 있도록 바리케이트를 열어주신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언덕길이지만 라벤더 사이를 빙글빙글 돌면서 점점 더 부처의 머리 쪽으로 다가가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산책의 루트이다.
중턱에 다다라 바라본 언덕에 머리만 빼꼼 내미는 부처의 모습은 극적이다.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본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7월 초라 라벤더가 만개한 모습은 아니지만 보랏빛 이불을 덮은 언덕 사이로 머리를 빼꼼 드러낸 불상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는 산책로에는 사람은 많이 없었지만 라벤더를 찾아온 벌들로 이미 길은 만원이었다.
산책로의 출구는 부처의 공간 초입으로 연결된다. 출구 부근의 라벤더는 이미 한창 만개해 있었다. 빽빽하게 만개한 라벤더를 보니 나중에 언덕까지 만개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모습일 것 같았다.
이와 비슷한 언어의 공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드물다. 삶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이 줄어든 현대에 지어진 종교 건물 중 이렇게 과감한 시도를 한 곳은 특히 드문 것 같다.
Naive한 시도와 공간에 극도로 몰입한 구성은 죽은 이들을 찾아 온 현실세계의 사람들에게 초현실적인 공간에 대한 맛보기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부처의 언덕에 대한 더 많은 내용은 https://yosoysoy.tistory.com/13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