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긴 장마 끝에 하루가 멀다 하고 35도를 넘나드는 요즘의 날씨, 거기에다 내 고향은 ‘대프리카’ ‘대집트’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분지로 형성된 지형 덕분에 매년 여름마다 최고의 기온을 자랑하는 대구라는 도시이다.
*대구+아프리카, 대구+이집트를 뜻하는 대프리카, 대집트는 세계적으로 더운 나라와 대구의 합성어로 얼마나 대구가 무더운 곳인지를 설명해 주는 신종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매년 여름을 어떻게 잘 보낼지 또 어떤 장소로 피서를 떠날지가 가장 큰 숙제인데 올해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KLM네덜란드항공 합격 소식과 함께 4년 전 세워두었던 계획 중 하나는 대학원진학이었다.
나는 항상 대학시절동안 학습적인 것 외 정말 많은 것들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자신한다.
사람에 따라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는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대학교를 정말 재미있게 다녔다는 사람은 사실 보기 드물었고 '난 참 대학교가 재미있었어'라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한결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라는 반응을 보였다.
예측하건대 아마도 ‘내돈내산’의 효과가 크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의 지원아래 입학한 20살의 첫 대학 1년은 너무 지루했고 그렇기에 나는 상상이상의 나태하고 게으른 상태의 학생이었다. 그런 상황의 대학생활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즉각 휴학을 하였고 몇 년 뒤 다시 학교로 복학했을 땐 더 이상 부모님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주 잠깐의 사회생활을 통해 그제야 학생신분으로서의 자유와 배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아주 자의적인 선택과 스스로 마련한 학비로 남은 대학생활을 다시 시작한 나는 즐겁기 그지없었다.
모든 수업이 재미있을 수는 없었겠지만 아무리 지루한 수업이라도 무엇이든 놓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게 여겨졌고 무엇보다도 그 시절 나의 삶에 지대한 선한 영향을 끼친 (계속 그러한) 아주 고마운 은사님을 만나게 해 준 곳도 학교였으며 승무원의 꿈을 이뤄낸 곳 또한 학교였기에 대학교는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는 곳이었다. 없던 꿈도 다시 생기게 하며 나를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곳, 그래서 나는 언제나 기회가 생긴다면 학교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이것 역시 현재회사(KLM)가 제공해 주는 넉넉한 한 달 정도의 유급 휴가제도가 1년에 2번 보장되었기에 가능한 아주 감사한 기회였다. 오늘도 회사에 대한 애사심을 한가득 느끼며 충성을 맘속으로 외쳐본다.
교육대학원 계절학기 수업은 총 3주, 수업일수로는 15일이다. 한 학기의 수업을 15일 안에 해결해야 하니 점심시간 1시간을 포함한 하루일정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꽉 짜여있다. 몇 달 전부터 이러한 스케줄을 알고 있었기에 엉덩이 무게의 근성을 늘릴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이따금씩 들었다. 그러나 시작을 하는 마음이 가장 어려울 뿐 지르고 나면 어떻게든 해내었던 내가 아닌가, 어찌 됐든 잘 끝내보겠다는 다짐 하나만 야무지게 가져보았다. 집중력과 머리는 그다지 좋지 않지만 다행히 학교에서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결석, 지각하지 않기와 강의실 맨 앞자리 교수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앉기였다.
앉은자리 덕분에 매일 잠과의 사투를 벌이지만 졸 수없으니 정신이 혼미해질 때마다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12년 만에 학생으로 다시 돌아왔고 규칙적인 일반직장인이 아닌 나에게 하루 8시간을 위해 조용히 집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내인생전체중 고작 15일이지 않는가,
그토록 다시 돌아오고 싶었던 캠퍼스가 아니었는가,
가장 힘들었던 일주일의 적응기가 지나고 나니 이제야 머리가 돌고 학교라는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의 혜택들에 대한 기록하기 중독이 나를 자극시킨다.
밖은 폭염으로 푹푹 찌는데 한여름의 강의실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심지어는 추워서 매일 긴 옷을 하나씩 들고 다닐 정도인데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이른 시간에 나설수록 더위와 빨리 이별할 수 있기에 침대와 한 몸이고 싶은 미련 따위는 전혀 없다. 연신 폭염과 온열증으로 인해 환자가 속출한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이지 올여름이 가장 시원하다.
간간히 졸업 후에도 은사님을 뵙기 위해 학교를 방문할 일이 많았는데 몇 년 전부터 학교의 시설이 라테는 말이야 시절과는 사뭇 달라졌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비용을 들여 스터디룸이나 도서관을 갈 필요가 없는 학생 라운지가 각 건물마다 쾌적한 환경과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언제 한번 그 시설을 꼭 이용해 봐야지 했는데 글을 쓰는 이 순간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학과장님 추천 약간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좋은 환경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만으로 좋은데 얼마인지 관계없이 기분 좋은 용돈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다 학생들을 위한 5000원 미만의 맛도 좋고 양도 푸짐한 학식과 입가심으로 마실수 있는 3000원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주하니 감회가 또 새롭다.
학교에서 주신 기분 좋은 용돈을 알뜰하게 잘 쓰고 싶다는 생각에 하루 1만 원 미만으로 15 일쓰기 계획을 세워본다. 마음이 풍요롭기에 하루 8000원의 용돈도 풍족하게 느껴진다.
아주 오랜만에 소속된 집단에서 벗어나 같은 목표를 향해있는 새로운 다른 무리 대열에 합류하였다.
나이, 소속 관계없이 나처럼 휴가를 반납해서 왔거나 방학기간을 이용해 등록하신 분들이 대다수이고 무엇보다 스스로 선택한 공부이기에 한여름의 더위 따위는 비교가 되지 않는 뜨거운 열정들이 느껴진다.
그것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종류의 자극제이며 다른 세상을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앞으로 채워갈 3년간의 새로운 도전, 대단히 여길일도 욕심낼 것도 없이 하고 싶은 것이었으니 그냥 나는 묵묵히 이 시간들을 감사히 여기며 채워갈 것이다.
-2023년 수업시간 중 불현듯 글쓰기가 마구 하고 싶었던(집중력이 부실했던) 찬란한 여름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