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외로움)
혹자는 고독과 친해지라고 한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며, 고상한 고독의 감정은 인생에 꼭 필요하다고 한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은 귀중하다. 혼자 있음으로 인해 자신과의 대화에 몰입할 수 있고, 자신의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자신과의 시간이 부족하고 남들의 의견과 감정들로 부산스럽기만 하면 일상이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따라서 고독하게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필요할 수 있다. 또한 원치않게 고독해지는 경우도 있다. 내 상황이 고독스러울 수 밖에 없다면 차라리 고독을 즐기며 이겨내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고독이 정말 좋기만 한 것일까? 홀로 있는 것에 익숙해지고 고독에 취하면서 생기는 새로운 부작용은 무엇일까? ‘고독을 즐겨라.’, ‘고독한 사람이 성공한다.’ 등 이런 슬로건을 보면 고독이라는 감정이 참 고상하게 느껴진다. 홀로 있음을 즐길 줄 알고 외로움을 이겨내는 자신이 뿌듯하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정말 왜 고독하고 있는가?
정말 혼자와의 시간이 의도적으로 필요해서 독거하는가? 아니면 혼자와의 시간이 감정적으로 편해서 독거하는가?
여러 부담스러운 문제들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혼자 고립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아닌가?
충분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데도 계속 혼자 있는다. 충분히 생각이 많은데도 계속 생각한다. 우리는 때때로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필요하지만, 계속해서 자기 자신하고만 대화한다면 나의 인간관계 방식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는 정말 무엇을 위해 고독해지려고 하는지 말이다.
1. 고독은 무조건 옳은가?
인간(人間, 사람 인, 사이 간)
인간의 뜻을 한자로 풀이하면 사람 사이에 있는 존재다. 사람 속에 있는 사람이어야 인간답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특성이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기보다 무리로 존재하고,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산다.
한 여성과, 한 남성이 사랑해서 자식이 태어나고 가족을 이룬다. 그런 가족들이 모여 집단이 되고 사회를 만든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홀로 할 수 없고 최소 두 명 이상의 존재가 얽혀야만 탄생하고 함께 해야 멸망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이 어떻게 감정을 느끼는지, 그런 과학적인 근거는 모르겠다. 하지만 함께 해야만 탄생할 수 있고, 함께 있고자 하는 욕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함께할 때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한 그런 감정을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그 사랑의 마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혼자 있을 때 나를 돌아볼 수 있어.”라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필요하다. 그런데 때때로 혼자 있는 것은 괜찮지만 계속 혼자라면 위험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나를 봤으면 이젠 남도 보며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 생각이라는 내부세계는 나 혼자 존재하지만 현실이라는 외부세계는 여러 사람들과 같이 존재한다. 우리가 실재하는 현실은 여러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계속 혼자있게 되면 자기 자신만의 생각에 빠지게 된다. 타인과의 대화보다 자신과의 대화에만 익숙해지면 아집스러워질 수 있다.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연히 혼자니까 괜찮다. 여러 부담스러운 관계로부터 회피하고 혼자 있으니 더 괜찮다. 여러 부담스러운 사회관계로 고통받는 것보다 외로움으로 고통받는 것이 차라리 더 나으니까 혼자 있는다.
2. 자주적 고독과 수용적 고독
얻고 싶고, 의도하는 바가 있어서 주체적으로 고독을 취하는가? 아니면 부담스러운 문제를 피하기 위해 원치 않는 고독을 수용하고 순응해버리는 것인가?
왜 결혼을 안 하는가? 정말 혼자 있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고독이 좋아 결혼을 안 한다면 그것은 의도적으로 내가 고독을 취하는 것이다. 자주적 고독이다. 그런데 결혼을 할 때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이 부담스러워서 혼자 살기를 선택하는 것은 수용적 고독이다. 차라리 조금 외로운 것이 결혼으로 생기는 여러 문제들 보다 낫기 때문에 혼자 있는다. 고독을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제보다 외로움으로 아픈 것이 낫기 때문에 고독이 싫어도 차라리 고독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이 껄끄러워지는 때가 있다. 취업을 못하고 자리를 못 잡고 있으면 지인들, 친구들에게 연락하기가 민망하다. 내 좋지 않은 안부를 전하는 것이 껄끄럽기 때문이다. 명절에 친척들과의 만남이 꺼려지고 자리를 피하게 된다.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하다. 그냥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
이렇게 사람들과의 관계에 노출될 때 불편함을 느끼면 자신의 마음이 다치는 것을 지키기 위해 회피하게 된다. 누구나 불편한 것을 좋아하진 않기 때문이다. 이 행위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자신을 지키기 위해 원하는 환경을 선택하고 유리한 입지를 만드는 행동방식은 자연스럽고 적절하다.
그런데 이런 행동방식의 문제는 회피하며 속효적으로 얻는 편안함, 안락함에 취해 모든 부담스러운 문제들을 이겨내지 못 하고 도망치는 방식에 중독되는 것이다. 처지나 상황을 개선하고 극복하기 보다 그냥 포기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여러 부담들로부터 도망쳐 혼자 고립되는 방식, 이런 행동방식이 습관화가 돼서 조금의 부담스러움도 이겨내지 못하고 홀로 도망치게 된다. ‘혼자 있으면 편하다.’ 사실 이 명제는 당연한 말인 것이다.
그저 도망가기 위한 고독인가, 실로 필요한 고독인가? 현재 내 인간관계는 어떠한가? 나의 사회성은 어떠한가? 나의 외로움의 근원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있고 내 인생에는 어느 정도의 유대감이 있는가? 내가 원하는 대인관계는 무엇인가?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현재 내 상태는 어떠한가?
여러 문제들이 부담스러워 외로움 느끼고 홀로 고독하는 것으로 합의해 버린 것은 아닌가? 나는 외로움 같은 건 모른다며 내 욕구를 억누르고 잠재우며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애도 부질없고 , 결혼도 부질없고, 시답잖은 친구들도 부질없다. 그저 혼자가 편하다. 당연하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어려운 일을 피해서 혼자 있으니 당연히 편하다. 외로움만 참으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관계에는 당연히 어려움이 따른다. 대립하고 충돌하고 다툰다.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지 않으면 자식과 다툴 일도 없다. 부모가 없으면 부모와 다툴 일도 없다. 친구가 없으면 친구랑 싸울 일도 없다.
그런데 그런 대상과의, 그런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사랑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대인관계 문제는 나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개인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문제다. 그런데 어떤 관계든 항상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이겨내는 방법을 배우고 더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혼자 고립되면 갈등은 피하겠지만 사랑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함께 교류하며 갈등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방식을 배우면 갈등도 해결하고 사랑도 할 수 있다.
나는 정말 무엇을 위해 고독해지려고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나는 내 인생에서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