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도착 직전 버스 안]
"곧 도착합니다."
이동 중 잠에 든 친구들, 버스 창밖에는 낮은 지붕의 집들과 논, 그리고 멀리 이어지는 숲이 보였다.
그 숲 뒤로 보이는 건물이 한 채 있었는데, 63 빌딩보다 높을 것 같은 건물을 보니 서울숲을 온 것 같았다.
서울숲을 갈 때면 너무 삭막한 공간을 벗어나 숨 좀 쉬라고 만들어 놓은 피난처라고 느꼈는데, 버스 안에서 본 풍경이 딱 그때와 같아서, 내가 지금 캠프라는 숲으로 도피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피가 아닌, 내적 성장을.. 그리고 쉼을 위해서'
송현 : (기지개를 펴며) 으~~ 아! 얘들아 일어나 곧 도착한대.
현서 : 와.. 색이 도시랑 완전히 다르다. 풍경이 다 푸릇푸릇해.
영인 : 그러게 공기도 다른 거 같아. 버스에서 다르다고 느낄 정도면 내렸을 때 더 상쾌하겠어.
현서 : 정말 기대된다. 학원 안 가서 더 좋아~!!
서영 : 으~~ 아. 이제 내려?
송현 : 아니 아직 그런데 곧 도착이라 내리니까 깨어있어야 해.
버스가 마침내 마을 입구에 멈추자, 그들을 감싸는 첫 바람 속엔 풀잎 향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버스 문이 '칙'소리를 내며 열리고, 네 명은 각자의 가방을 들고 흙길로 내려왔다.
햇빛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마을 입구에는 밝은 색 조끼를 입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유난히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는, 아이들을 향해 반가운 마음을 팔 길이로 표현하듯 두 팔을 활짝 펴며 걸어왔다.
인준(관리자) : 어서 와요! 여러분이 이번 '느림의 미학'캠프 참가자들이죠?
송현 : 네! 안녕하세요.
관리자는 등에 맨 가방에서 네 장의 종이를 꺼냈다.
종이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캠프 알림표였다.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게 손글씨로 쓰인 일정 위에 작은 해와 달, 나뭇잎 그림이 있었다.
인준(관리자) : 이게 여러분의 하루 반 일정이에요. 시계 대신 이 일정표로 여러분의 흐름을 느껴보세요. 종이에 적힌 건 시간 순서가 아니라, 체험할 순서입니다.
현서가 표를 천천히 펼쳤다.
현서 : 와.. 체험이 몇 개 안 되는 거 같은데, 되게 알찬 느낌이다.
영인 : 자유 안에 계획을 세운 느낌인데, 그래서 각자 관심사대로 즐길 수 있겠어. 관찰도 하고 기록도 하고.
서영 : 자유시간이 많으면 좋지. 적어진 거 다하면 내일이 너무 빨리 올 것 같은데?
송현 : 불멍이라니 밤이 너무 기대돼!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네 명의 친구들을 보며 인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준 : 그렇죠? 여러분 각자에게 집중하면서 캠프를 즐겨보세요. 빨리 걷지 않아도 돼요. 천천히, 그리고 깊게. 자, 이제 짐은 숙소에 두고 첫 프로그램 장소로 가볼까요?
푸릇한 풀 내음과 함께, 네 친구는 인준의 뒤를 따라 마을 숲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제까지 우리가 살고 있던 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진짜 '느림의 하루'가 드디어 시작되고 있다.
[숲 속 아침 산책 - 캠프 첫 프로그램]
숲 속에 짐을 두고 앞장서는 인준의 뒤를 따라 숲 속 오솔길로 들어섰다.
습기 머금은 흙냄새와 부드러운 풀잎 향,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 코끝을 간질였다.
그리고 네 친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숲을 담는다.
현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느리게 걸으며, 발 밑에 난 작은 들꽃, 이슬 맺힌 풀잎, 머리 위로 지나가는 새 그림자 하나까지 천천히 눈에 담았다. 스케치북을 가져오지 않아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핸드폰 사진으로 대신했다.
영인은 산책로 한편에 놓인 '숲 속 동물 흔적 알림이' 팻말을 읽고, 곧바로 메모장을 꺼내 뭔가를 적는다.
"이 발자국.. 고라니겠지? 온돌아 습도가 이 정도면, 곤충도 꽤 있겠는데."
서영은 경로와 시간을 가늠하며 걷는다.
초반에는 다소 경직된 표정이지만, 풀숲 사이로 작은 다람쥐가 휙 지나가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자연의 움직임들을 보며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송현은 그런 친구들을 뒤에서 바라보며 뒤처지는 친구들은 없는지 하나하나 살피며 모두에게 말을 걸었다.
"영인아, 다음 저 안내판은 뭐라고 쓰여있어?"
"현서야, 스케치북 안 들고 와서 안타깝겠다. 다음에 사진 보고 그리게 되면 그림 보여줘!! 너무 궁금해"
"서영아, 발 조심해! 여기 미끄럽다"
숲은 바람 소리, 새소리,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했다.
조금씩 아이들의 말소리도 줄어들고, 대신 숨소리오 발자국 소리만 깊어졌다.
인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인준 : 이 숲길은 천천히 걸을수록 더 많은 걸 볼 수 있어요. 오늘만큼은 속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인준의 말을 들은 네 친구들은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온몸으로 자연을 받아들였다.
누구는 노트를 펼치고, 누구는 하늘을 울려다보고, 서로 말없이 같은 순간을 공유했다.
그리고 아무 말하지 않아도 같은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느낌을 받아서 신기하다고 모두 속을 생각했다.
같은 경험만으로 서로에게 공감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이 시간들이 네 친구들에게는 불안한 감정만 주었던 지난날의 대화들보다 감정적으로 유익하고 안전한 시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부드러운 흙이 있는 곳은 신발도 벗어던지고 걸어보고, 친구들과 오랜만에 아가방도 그려서 즐긴다.
어릴 때는 유연하고 신체중심도 잘 잡아서 잘했던 거 같은데, 앉아만 있어서 그런지 몸이 많이 굳은 거 같다.
평상시 운동 좀 할 걸 후회도 잠시 했지만, 오랜만에 즐겨서 그런지 네 친구들은 웃음이 떠나가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즐겼다. 손과 발이 항상 흙투성이었던 어린 시절에 녹아들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