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코로나가 한창 창궐하던 2021년 즈음을 기억하시나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이 제한되었습니다. 콘서트, 송년회, 회의 등의 모임이 이뤄지기 힘들어지자 우리들은 그 대안을 디지털 세상에서 찾았습니다. Zoom과 같은 화상회의 어플을 통해 각자 좋아하는 술과 안주를 들고 모여서 저물어 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며 송년회를 했습니다. 내년에는 직접 얼굴 마주하며 송년회를 함께 하자고요. 이런 단순 화상회의를 넘어 아바타를 통해 함께 모여 소통하고 즐기는 경험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때 사회, 경제적으로 화두가 되었던 단어가 바로 메타버스였습니다. 로블록스, 제페토, 포트나이트 등에서 사용자들은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통해 돈을 버는 경제활동까지 함으로써 새로운 경제 모델의 대안으로도 각광받았습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미래는 메타버스에 있다”라고 선언하며 사명을 메타(Meta)로 변경하였습니다. 글로벌 대기업인 페이스북이 메타로의 사명 변경과 함께 수 십조 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함께 발표하면서 메타버스 열풍에 불을 지폈습니다. IT 시장의 명망 있는 리서치‧컨설팅 업체인 가트너가 2026년에는 세계 인구의 25%가 메타버스에서 매일 최소 1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야말로 온 세상이 새로운 메타버스 경제로 나아갈 것 같았습니다.
끝을 모를 정도로 휘몰아치던 메타버스의 광풍이 엔데믹과 함께 한순간에 사그라들었습니다. 언제 온 세상이 그렇게 메타버스, 메타버스를 외쳐댔나 싶을 정도로요. 아래 구글 트렌드 분석 결과를 보면 메타버스 검색어에 대한 시간 흐름에 따른 관심도 변화가 2023년 이후 급격히 줄어든 것이 보입니다.
이런 현상은 구글 검색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정책 연구기관의 발간물에서도 나타납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발간물 내 핵심 키워드에 대한 출현 빈도를 분석했습니다. 2021년 발간된 정책 보고서 내에 해당 단어가 나타났던 빈도수 대비 2024년 발간물에서 나타났던 빈도수가 많으면 양(+)의 값을 가지고, 2021년 대비 2024년 빈도수가 적어지면 음(-)의 값을 갖는 것입니다. 요즘 최대 화두가 되는 AI라는 단어의 증가폭이 매우 큽니다. 반면 엔데믹에 따른 감염병, 백신의 출현 빈도는 감소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메타버스의 출현 빈도도 확연히 줄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메타버스의 인기가 식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종식으로 이제는 사람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어 가상 세계에서 헤맬 필요가 없는 것이겠죠. 사람들이 팬데믹 기간 동안 메타버스를 경험하면서 만족도가 크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완벽한 가상 세계와 달리 이 당시 구현된 메타버스의 아바타는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고, 뚝뚝 끊기기 일쑤였습니다. 사용자들이 몰입해야 진정한 가상 세계에 빠져들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실망감만 느끼게 된 것이죠. 사용자들의 실망감은 메타버스에서 뭘 해야 할지를 몰라서 또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들어가 봤다가도 흥미를 느낄 킬러 콘텐츠를 발견하지 못해 소위 ‘재방문 의사 없음’으로 돌아섰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일 때는 이거라도 하자라는 심정으로 메타버스에 들어가겠으나 마음껏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니 굳이 답답하고 불편한 가상 세계에 들어갈 필요가 없게 된 것이죠.
메타버스의 열풍을 빠르게 식힌 결정적인 요인은 ChatGPT의 등장입니다. 2022년 말 ChatGPT가 등장하면서 시장의 모든 관심과 투자를 흡수했습니다. 불편하고 비싼 HMD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사람들은 웹 브라우저에서 쉽게 프롬프트를 ChatGPT에 입력하여 지브리풍의 내 얼굴을 만들 수 있습니다. 글쓰기를 시켜도 곧잘 해냅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답변을 내놓기는 합니다만 봐줄 수준입니다. 일반 사용자뿐만 아니라 IT 업계의 관심과 투자도 생성형 AI가 가져갔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2022년 1분기에 메타버스 관련 기업들은 20억 달러 가까이 투자받았습니다. 반면 2023년 1분기에는 메타버스 업체는 5억 8670만 달러를 투자받는 데 그쳤다. 하지만 생성형 AI에 대한 투자는 분위기가 정말 달랐습니다. 2022년 1분기 AI 기업 투자는 6억 1280만 달러였지만, 2023년 같은 기간에는 23억 달러로 급증했습니다. 결국 AI와 메타버스의 투자 금액이 역전되는 이른바 골든 크로스 현상이 발생했고 생성형 AI가 메타버스 열풍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죠.
그러면 메타버스는 영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메타버스의 열풍을 식힌 AI가 메타버스를 수렁에서 구해 줄 구원자가 될 것입니다. 생성형 AI가 진화하여 에이전트 AI로 발전 중입니다. 지금까지의 메타버스는 사용자가 접속해야만 의미가 생기는 정적인 3D 공간 또는 가상 부동산에 불과합니다. 에이전트 AI는 이 텅 빈 공간에 지능형 NPC(Non-Player Character), 개인 비서, 그리고 자율적인 경제 주체로 스며들어 24시간 자율적으로 활동하며 메타버스를 사용자의 행동에 실시간 반응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발생하는 동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LLM과 영구 기억 기술로 구동되는 지능형 NPC는 사용자가 플랫폼에 접속하지 않은 시간에도 자율적으로 활동하며 가상 세계의 영속성을 유지하고, 사용자와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가상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사용자와의 과거 대화와 상호작용을 기억하고 이를 바탕으로 맥락에 맞는 대화를 이어갑니다. 단순한 텍스트 응답을 넘어 사용자의 감정을 인식해 그에 맞춰 공감하거나 반응하는 등 감정을 시뮬레이션하며 사용자와 동적인 상호작용을 창출합니다. 이러한 지능형 NPC는 메타버스 세계의 실질적인 인구가 되어 사용자에게 강력한 정서적 유대감과 재방문 동기를 부여합니다. 실제 사례로 Meta는 Horizon Worlds 개발자들이 LLM 기반의 지능형 NPC를 쉽게 생성하고, 이들에게 배경 스토리와 대화 스타일을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API를 제공 중에 있습니다.
메타버스는 AI에게 3D 신체와 물리 법칙이 적용되는 3D 공간을 제공합니다. 피지컬 AI는 이 환경 안에서 다른 에이전트 및 인간과 상호작용하고, 복잡한 목표를 달성하며 진화할 수 있는 완벽한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피지컬 AI는 가상 환경 내에서 수천, 수백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운영 방안, 효율적인 물류 경로, 예측 유지보수 시점 등을 스스로 학습합니다. 학습이 완료되면 AI는 이 최적화된 솔루션을 현실 세계의 물리적 로봇과 공장 자동화 시스템에 직접 배포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즉 AI와 메타버스가 서로 공존하면서 서로의 발전을 이끌고 존재 이유를 확보합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사에서 두 번의 겨울이 있었습니다. 그 겨울을 견디고 이제 인공지능은 만개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에게 지금은 첫 번째 겨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기를 지나면 메타버스도 반등하리라 예상합니다. 실제로 12월 22일 자 기사를 보면 정부가 전국 18곳에 가상융합산업 지원센터를 지정하고 메타버스, 디지털트윈 등 가상융합산업 지역 지원을 본격화할 방침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