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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드레 Jun 23. 2023

합방

누구의 사랑이 더 큰가.

결국 안방이 침대로 가득 차게 되었다.


첫째 아이 생후 100일 무렵 분리 수면을 했다. 완모 수유를 하며 두 시간마다 밤 수유를 해야 했지만 그 시간이라도 잘 자보자는 심산이었다. 운 좋게도 아이는 잘 적응을 했고 8개월 무렵엔  5-6시간 통잠을 자는 효도를 하기도 했다. 나는 꽤 신세대  또는 앞서가는 서양 문물을 접하고 잘 사용하는 깨어있는 엄마인양 으쓱한 어깨로 분리 수면의 성공을 겸손한 척 자랑하곤 했다.


만 세돌 무렵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임신 확인과 동시에 산전 휴직에 들어가 오롯이 첫째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아이는 베개를 들고 안방에 왔다.


 '오늘부터 엄마랑 잘래'


아이의 단호한 눈빛에 압도당했다. 9개월 뒤 동생이 생기면 누릴 수 없는 외동의 짜릿함을 맘껏 누리게 하고 싶은 마음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호기롭게 아이에게 안방 입성을 허락했다.


'그럼 아가 만나기 전까지 같이 자자'


그렇게 시작된 합방은 방이 변하고 인원이 변하여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안방에서 넷이  함께,  어떻게 라도 떼어 보고자 아이들을 어린이 방에 보내고 재우다 셋이 함께, 아이들 방에 셋이 자기 힘들어지자 아빠를 작은 방에 보내고 안방에서 셋이 함께, 아이 둘 부부 둘 나눠 자다 아빠의 코골이에 지쳐 다시 아이들 방에서 셋이 함께, 아빠 회사가 지방으로 이사 가고 나니 무서워서 셋이 함께......


첫째 아이 생후 백일 무렵의 독한 '나'는 어디에 갔단 말인가. 분리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아이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늘 내 굳은 결심을 산산조각 나게 만들었다.


'엄마가 그리워요'


출장이 잦아 한 달에 아이들과 보내는 밤이 보름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오늘은 출장 가기 전 날이라 함께, 내일은 출장 다녀왔으니 함께, 오늘은 아프니 함께, 생일이라 함께 소풍 가기 전날이니 함께, 수많은 이유들을 핑계로 우리는 합방을 했다.


2년 전 둘째 어린이가 침대를 사주면 혼자 자겠노라 선언을 했다. ( 본인의 침대가 있는 첫째 중학생은 여전히 안방 침대를 사수하고 있었다. )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가! 서둘러 침대를 구입하고 방을 아늑하게 만들었다. 방과 침대가 생긴 어린이는 혼자 자는 듯싶었다. 아주 잠깐 말이다. 재워야 했다. 매일밤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잠들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재우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러다 다시 핑곗거리가 생겼다. 아이 방이 유난히 여름에 더우니, 겨울엔 추우니, 내일은 엄마가 새벽에 출근을 해야 해서 재워주기 힘드니  그냥 같이 자자!


안방에 있는 킹사이즈 침대에서 셋이 자는 것은 점점 불가능해졌다. 제발 따로 자자 부탁을 하자 아이들은 침대 아래 이불을 깔았다. 침대에 두 명 바닥에 한 명, 또다시 한 방에서 복닥복닥 잠을 자게 되었다. 아이들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우리 집 사정을 잘 아는 심리상담가 지인에게 상담도  했다. 때가 되면 따로 잘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부모의 부재가 일상인 우리 집의 특수한 상황을 인정하라고,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자는 것이 심리적 안정을 찾는 통로이니 자연스럽게 받아주라 하셨다.


그렇게 아이들은 중3과 초6이 되었다. 매일밤 누가 침대 엄마 옆에서, 누가 바닥 이불에서 잘 지를 결정하느라 조용할 날이 없었다. 중학생은 침대에 잠든 초등학생을 안아 바닥에 내려놓기도 하고 두 명이 누워 자는 발아래 'ㅛ' 모양으로 한 명이 가로로 잠이 들 때도 있었다. 더 이상 밤마다 벌어지는 혈투를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냥 침대를 하나 더 안방에 옮기자'


평화가 찾아왔다. 기쁨에 충만한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온다. 진작 옮길 걸,


잠든 지 30분 만에 90도 회전을 하는 둘째의 발이 내 오른손에 닿았다. 발을 만지작 거리며 잠을 청한다. 첫째 아이가 남아있는 내 왼손을 슬며시 잡는다. 사실 합방을 가장 원하는 건 내가 아니었을까. 가장 외로움을 타는 것도 나였고, 핑곗거리를 만들었던 것도 내가 아니었을까. 지독한 마음의 감기에 걸렸던 시기 나를 돌봐줬던 아이들이 지금도 엄마를 지켜주고자 안방을 맴도는 건 아닐까


침대로 가득 찬 안방은 아이들의 사랑으로 더 가득 찼다.

별 빛이 충만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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