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성수기
무모한 여행의 결과로 심장병이 생겼다.
농담이다.
대기 예약 상태였던 국적기 항공사의 자리는 모두 사라졌다. 두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꼭 돌아와야 했던 나는 생애 첫 ANA 항공을 탑승을 감행하게 되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충분히 심장병이 걸릴 만한 경험이었다. 승무원들은 친절했다. 그리고 주변에 앉은 일본 승객들은 차분했다. 마치 메트릭스에 나오는 레이저가 좌석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듯 동작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기내 방송문이다.
국적기의 방송문은 통보이다.
‘ 방금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졌다, 그래도 다칠 수 있으니 벨트를 매고 있어라’
ANA 항공은 이런 방송을 했다.
‘ 지금부터 트레이 테이블과 등받침을 사용할 수 있는데 다른 승객이 불편하지 않게 조심히 사용해 달라, 면세품은 모니터를 통해 주문할 수 있는데 착륙 1시간 전까지 가능하다’
테이블과 등받침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비행기가 안전 고도에 다 달아 탈출을 위한 준비는 필요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딱딱하게 벨트 사인 꺼졌다고 안내하는 것보다 유연한 느낌이었다. 또한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방송으로 공식적으로 알리고 있다는 점이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애쓰는지 알 수 있었다.
국적기의 도착 전 방송은
‘ 착륙 준비를 위해 이것저것 다 원위치 해라, 이제 면세품 판매 끝났다 ‘라고 알려준다.
ANA항공은 착륙 1시간 전에 1차 안내 방송이 나왔다.
‘착륙 1시간 남았는데 도착 25분 전부터 못 움직이니까 지금 화장실 다녀와, 그리고 아까 1시간 전이면 면세품 판매 끝난다고 했지? 지금이 그 시간이야 끝이야’
오! 화장실 가라는 안내 방송이라니, 방송이 나오자 승객들이 화장실도 가고 짐정리도 하고 착륙을 위한 본인만의 준비를 한다. 비행기 바퀴가 우르르 내려오는 시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승객이 당하는 무안함. 승무원들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 큰 소리로 샤우팅을 하게 되고 앉아 있는 모든 승객들이 듣게 되는 대사.
’ 손님 자리에 앉아 주세요, 곧 착륙합니다 ‘
순간 기내 온도가 차갑게 얼어붙는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흔히 접하게 되는 국적기의 모습이다.
기내 방송의 목적은 안내인가 통보인가
나는 안내하는 사람인가 통보하는 사람인가
심장병과 함께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성공한 여행으로 기억해 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