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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드레 Aug 22. 2023

뜨거운 박수

아들의 이별


 나는 우리 오케스트라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만 있는 거 같아. 항상 가까웠던 사람들에게 뜨겁게 손뼉 치며 아름답게 떠나보내려고 노력했어. 그리고 이번엔 내가 박수받으며 떠나려고 했는데, 그냥 너를 위해 마지막까지 박수 쳐줄란다. 나 먼저 가면 너 갈 때 00 이한테 박수받을 텐데 그렇게는 너 못 보내. 그리고 이건 내가 보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뜨거운 박수다


                       -중학생의 편지 중 일부-


중학생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오케스트라 활동을 했다. 벌써 햇수로 7년, 중학생이 되면 그만두기로, 자율 학기제가 끝나는 1학년까지, 시험 잘 보면 한 한기 더, 이런저런 이유로 중3 지금까지 단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고 성장하였다. 이별의 경험을 포함해서 말이다.


가장 의지하던 형이 소리소문 없이 잠적했다. 문자도 톡도 전화도 받지 않았다. 잠적 전까지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였는데 이해할 수 없었다. 중학생의 연락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감당하기엔 너무 아픈 경험이었다. 축 처진 어깨로 연습을 가며 혹시 오늘은 형이 오지 않을까, 오늘은 어떤 소식을 듣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아이의 쓸쓸함이 기억난다.


그다음 해 겨울 선생님이 떠나셨다. 결혼 후 타 지역에 살게 되어 더 이상 중학생을 지도할 수 없었다. 소리조차 낼 줄 모르던 어린이를 5년 동안 가르쳐 대회에서 수상도 하고 가끔 전공자로 착각을 받을 만 큼의 실력을 만들어 주신 선생님이다. 마지막 정기 연주회를 마치고 선생님은 아이를 안고 펑펑 우셨다. 많이 의지가 되었노라고 평생 잊지

못 할 최고의 제자라고...... 그렇게 선생님은 떠나가셨다.


두 번째 선생님은 결국 바쁜 일정으로 오케스트라 지도를 그만두셨다. 선생님은 연주 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실력자셨다. 중학생 생애 처음 만나는 남자 선생님이기도 했다. 잠시 전공을 고민하게 될 만큼 중학생을 열정적으로 지도하셨다. 고등학교 가서 영 공부가 길이 아니다 싶으면 찾아오라고, 악기로 좋은 학교 보내주신다며 중학생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주시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선생님의 우선순위에서 오케스트라가 밀려나게 되었다.


이 모든 이별의 순간을 함께한 동생이 이민을 간다. 형과의 이별 후 힘들어하던 순간 서서히 가까워졌던 동생이다. 함께 가까워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만큼 단단하게 마음이 쌓였던 동생이다. 함께 악기를 배우고, 신앙을 나누고, 사춘기 초입 달달한 연애의 경험을 공유하며 아이들은 건강하게 성장해 갔다. ‘이사’가 아닌 ‘이민’이라니!

중학생은 동생과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늦은 밤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 글을 나에게 공유하며 아픔을 나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경험이 벌써 몇 번째인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나도 이별이 힘든데 중학생이 어떻게 견뎌왔고 또 견뎌낼지 마음이 아리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무책임 한 말 밖에 생각이 안 나니 더 답답할 일이다. 부디 그 공허함이 채워지고 상처가 아물어 중학생이 한 뼘 더 성장하길. 나는 또 나의 자리에서 묵묵히 응원해야겠다.


그리고 내일 아들은 오케스트라를 떠난다.

나는 중학생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건  내가 보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뜨거운 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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