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평생 뚱뚱하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어
내가 시집왔을 때 시어머니는 날씬한 몸매였다
45년생 치고는 작지 않은 키에(162센티?)에 기성복 사이즈로는 55 정도를 입으셨으니 애 둘낳은 중년 여성의 체구치고는 상당히 날씬하셨다
식사는 늘 대충 하는 둥 마는 둥이고 딱히 군것질도 즐겨하지 않으셨고 매일 살 것은 없어도 재래시장을 돌거나 한두 시간 정도 동네를 걸어 다니셨으니 나름 몸매 유지를 꽤 신경 쓰셨다
치매가 점점 심해지시고도 식사량은 많이 늘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달달한 간식을 꽤나 드시게 되었다
시아버지 간식으로 사다 놓은 맛동산은 어느 틈엔가 시어머니 침대 머리맡에서 빈봉지로 발견되었고 냉장고에 넣어 둔 케이크는 한쪽 귀퉁이가 무너진 채로 찌그러져 있었고 익혀 먹어야 하는 햄 같은 것들도 가끔 입자국이 난 채로 방구석 어디선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치매가 진행되면서 평소 손도 안 대던 음식들을 맛있다고 하시는 것 보니 아마도 치매 걸리기 전엔 몸매관리 하느라 부러 그런 음식들을 찾지 않으신 듯하다
어찌 됐든 기성복 88 사이즈를 입어야 하는 지금도 당신은 날씬하다고 생각하셔서 누가 줬다고 (옷에 돈 쓰는 거 싫어하셔서 공짜라고 해야 좋아하신다) 하고 옷을 드리면 "니가 입지. 너한텐 작니?"라고 되묻을 정도로 몸매부심이 있으시다
어느날 데이케어에 모시러 간 남편이 유독 볼록해진 배를 보고 시어머니에게
"배가 왜 이리 나왔어?'라고 놀리니
"방금 막 밥을 먹어서 그래. 그래도 난 평생 뚱뚱하단 소리는 안 들었어"
"에이. 이렇게 배가 나왔는데? 운동 좀 하셔야겠어. 에어로빅 같은 거 하실래?"
"아냐. 이 정도는 배 눌러주는 거(아마도 거들을 표현하는 듯) 딱 입고 영등포 카바레 가면 금방 쏙 들어가~~"
자주는 아니었겠지만 어쩌다 한 번은 친구분들과 영등포에 땡기러 다니신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