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텃밭과 자급자족의 삶
시골살이 2년 차이다. 사계절을 온전히 두 번 겪었다. 첫 번째 사계절은 체류형 귀촌귀농센터의 10개월 프로그램에 따라 세팅된 공간에서 수동적 텃밭 농사의 일 년이었다. 계절과 시기에 맞는 모종과 씨앗이 배급되고 이미 많은 퇴비와 비료로 비옥해진 텃밭에 심고 달이 차면 거두었다. 센터의 대형 건조기를 이용하여 농작물의 2차 가공도 경험했다. 커닝페이퍼를 손에 꼭 쥐고 심지어 오픈북으로 치르는 시험 같은 텃밭 농사였다.
체류센터에서의 10개월이 지나고 섬진강이 잘 보이는 마을에 월셋집을 얻었다. 서울에서라면 대중교통 접근성, 문화 인프라, 앞으로의 재건축 계획 등이 고려 대상이라면 이곳에서는 무조건 텃밭 유무였다. 모든 식재료를 스스로 생산하는 자급자족의 삶은 많이 위축되어 있던 자기 효능감을 서서히 회복시켰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1년 내내 마트에서 단 한 번도 채소를 사지 않았다고 도시의 친구들에게 허세를 떨었다. 센터 동기들과는 각자 수확한 제철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포트락 파티를 가지기도 했다. 평생 텃밭 농사라곤 지어본 적 없는 우리들은 매일이 축복 같다는 오글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게 되었다. 그게 사실이니까.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은 경력과 지위가 쌓여 갈수록 스트레스도 그만큼 쌓여 갔다. 번아웃이 왔다. 아니다, 중년 여성의 갱년기일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노력과 주의를 기울일수록 무언가 점점 더 잘못되어 가는 느낌. 사람에게 더 많은 공을 들였음에도 틀어지고 상처받는 인간관계. 계산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누구보다 빠르게 계산하는 자신의 모습. 자기 환멸감과 허무주의의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세상과 연결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버거웠다. 어디까지 언제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 사람들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 나만 이런 것인지.
작년 초 늦겨울 지금의 귀촌집으로 이사 오고 텃밭 가꾸기 시즌2가 시작되었다. 센터에서만큼 결과물이 좋지 않은 건 당연했다. 활용도가 높은 토마토는 첫해보다 2배는 더 심었지만 수확하기 직전에 눈치 빠른 새들의 표적이 되어 버렸다. 시장에서 비싼 돈을 주고 모셔온 딸기 모종은 열매하나 맺지 못했다. 고추는 빨갛게 익기 전에 벌써 병이 들어 버렸다. 센터에서 아침마다 나를 힐링시킨 민트향을 기대하며 여러 허브 씨앗을 뿌려 두었지만 장대 같은 비를 한 두 번 맞고는 어디서도 싹이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트에 갈 필요가 없었다. 기대 없이 흩뿌려둔 상추와 쑥갓 씨앗은 금방 숲을 이뤘다. 오이 모종 딱 하나로 여름 내내 오이냉국과 오이 무침을 지겹게 해 먹었다. 오크라씨앗도 무럭무럭 자라 가끔 색다른 밑반찬의 식재료가 되어 주었다. 가지는 각종 나물과 찜요리로 거듭났다. 호박 모종 4개는 음식쓰레기를 영양분 삼아 늦가을까지 호박을 선사했다. 이웃들에게도 푸짐하게 나눠주고 그래도 남아서 기꺼이 닭장 속 닭의 간식이 되어 주었다.
지금 귀촌집에는 내가 돌보는 주인닭이 아홉 마리이다. 매일 아침 달걀 수거부터 계란프라이로 밥상에 오르기까지 유통시간이 10분이다. 계란을 냉장고에서 꺼낼 필요가 없는 삶. 매일 아침 계란을 수거하고 매일 닭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언제부터인가 닭장 냄새를 맡고 코를 찡그리지 않게 되었다. 알을 낳지 않으면 어디 아픈 곳 없는지 닭을 한 마리 한 마리 살핀다. 연봉이 올랐고 직위도 올랐고 자산도 늘었는데 나는 뭐가 그리 불만이었을까.
결과적으로 시즌 2 텃밭 농사도 그만하면 되었다. 곧 시즌 3가 시작되면 우리는 다시 매우 바빠질 예정이다. 가을에 수확해서 냉동실에 얼려 둔 옥수수를 데워 먹으며 시판 옥수수는 왜 이런 맛이 안 나는지, 올여름에는 세 배로 심자고 남편과 다짐한다.